항상 음지에서 양지로 나가고 싶은 나의 소망이다. 척박한 환경과 힘겨운 노동 그리고 천대받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절규이다.
"당신의 소중한 발을 책임져 드립니다!"
신뢰와 믿음을 주는 슬로건이다. 하지만 정작 나에겐 물어보지도 않고 지네들끼리 마음대로 결정했다. 내가 죽고 네가 살면 된다는 것인가? 나는 동의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많이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려는 그들의 일방적 주장이 여기에 녹아들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안전화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일 뿐이다. 발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것에는 분명히 동의한다. 하지만 위험하고 더러운 일에 비해서 대우는 형편없다는 것이 문제이다.쓰고 나면 버려지는 소모품일 뿐이지만 그 기간 동안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내적으로는 부드러움으로 감싸고 외적으로는 거칠고 척박함을 이겨내면서 말이다. 내가 다치는 일이 있더라도 그의 발을 보호하려고 한다. 때로는 병들고 불량한 녀석들도 있지만, 힘들고 위험한 만큼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때 묻었지만 든든한 안전화]
[나는 노예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존중받지 못한다면,
"당신의 발 이전에 나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이기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너는 그렇게 태어난 거야! 그런 소명의식도 없이 네가 무슨 안전화냐?"라고 질책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더럽고 힘들고 거친 곳에서 더욱 빛나는 것이 나의 일임은 맞다. 하지만 내가 목숨 바쳐 충성해야 될 존재인지는 확실치가 않다. 그만큼 나를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쌓이고 믿음이 쌓이는 것이다. "돈 주고 사 왔으니 너는 나의 노예일 뿐이다"라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고 결정되는 세상에 가깝지만 가장 기본적인 도덕이라는 잣대가 있다. 그 도덕이 사람에게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이 있던 미물이던 사용되는 모든 것들에는 소중함의 가치를 부여해야만 한다. 그것이 만들어지고 생성되는 과정에서의 아픔과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안다면 말이다.
시장논리가 도덕 논리로 되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결국 '도덕적으로 거래'해야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_마이클 샌델]
도덕적 거래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양심적인 사용을 원한다. 존재의 가치를 부여해주는 것이 노예의 삶이냐 파트너의 삶이냐를 결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난 절대 노예이고 싶지 않다. 파트너로서 내 역할과 책임에 강한 소명감을 갖고 일하고 싶을 뿐이다. 노예가 아닌 파트너로 인정해 줄 때 믿음과 신뢰가 시작되는 것이다.
[ 발의 푸념 ]
매일 발과 교감하다 보니 그들의 고충도 많이 듣게 된다. 맨 아래에서 빛도 없이 궂은일만 도맡아 하고 있는 그들을 볼 때면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게 된다. 온몸의 무게를 지탱하며 더위와 추위뿐 아니라 찌든 냄새와도 동고동락하며 묵묵히 섬기는 그들를 볼 때면 존경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의 일에 층실하고 있다.
[그들은 나와 다르다]
존중이라는 단어가 그들에게는 있다. 필요할 때만 쓰고 버려지는 노예가 아니라 파트너로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프면 같이 아파하고 힘들면 같이 힘들어한다. 평생을 같이 해야 할 동반자적 관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고보면 태어나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결정되어 버리는 세상이다. 그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것 또한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고 운명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인다. 다만 소중하게 사용해 달라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