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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Sep 04. 2017

사랑에 빠진 탁상 캘린더!

그에게 빠져 든다

[나는 언제나 혼자다]

하얀 백지위에 수놓은 숫자들의 조합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날은 빨간색으로 어떤 날은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큼 내 존재의 가치도 점점 줄어든다. 하루살이 인생처럼 딱 일 년 살이의 삶이다. 그중에서도 벌써 여덟 번째 장을 넘겼으니 끝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 끝 이후의 삶은 나도 모른다. 아마도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선배들의 모습처럼 어렴풋한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그 두려움이 마음을 바쁘게 만든다. 시간이 없다는 조바심이 나를 억누르고 있다. 그래서 무엇인가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진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내 모습을 되돌아보니 그저 막막할 뿐이다.


[경쟁에서 밀리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이라는 놈에게 밀리고 있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좋아하는 분들은 아직까지 아껴주지만 디지털 세계와의 접목은 나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앱과 다국적 기업인 구글, 네이버 등의 캘린더 앱들이 나의 경쟁자들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다. 한 자리에 고정적으로 머물려 있는 내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몇 개월 삶이 남지 않은 내가 말이다. 탁상 캘린더의 명예가 내 어깨에 달려 있는 듯 착각하고 있다.


[그의 약속]

빼곡히 쓰인 흔적들에는 설렘과 기쁨이 있다. 빈 공허함보다는 그래도 무엇인가로 채워지는 삶이 나를 더 들뜨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독한 고독함을 느껴 본 이들만이 안다. 그 고독함이 약속들로 채워질 때 그의 약속이 나의 약속이 되는 것이다. 가끔은 설렌다. 그의 펜에서 미세한 떨림을 느낄 때... 평소와 다른 펜 끝의 강력한 힘과 느릿한 손동작에서 그의 마음을 읽게 된다. 그가 떨릴 때 내 마음도 미세한 떨림이 있음을 나는 느낀다.


[그에게 빠져 든다]

가끔씩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 눈동자에 빠져들면 그의 사랑에 시샘을 느끼게 된다. 8개월간 함께 하며 정도 들었지만 그의 따스한 마음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모두들 나를 생명이 없는 존재로 인식하지만 따스함도 느끼고 애틋함도 느낄 수 있다. 말을 해야 알고 움직임이 보여야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사랑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존재이고 관계이지만 매일 그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앞으로 4개월의 시한부 삶을 살게 되겠지만, 그 짧은 시간도 감사할 뿐이다. 무덤덤한 내 인생에 생명의 불씨를 심겨 준 그를 만나게 됨에 말이다.

  

[나의 뒷모습]

[나의 뒷모습]

세상은 항상 앞모습만을 중요하게 여긴다. 앞모습이 이성적이라면 뒷모습은 감성적이다. 앞모습의 선명함에 비해 뒷모습은 따스하다. 사람들은 눈에 띄는 것만 보지 그 이면에 감춰진 내면의 아름다움에는 무지하다. 그래서 빈칸이 빼곡히 채워져도 허전함을 메울 수 없는 것이다. 그 허전함을 앞이 아닌 숨겨진 뒷모습의 따스함에서 찾게 된다면 결핍이 아닌 마음의 풍요를 느끼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내 앞모습 뿐만 아니라
감춰진 뒷모습까지도
사랑받기를 바라며...



<표지 이미지 출처 : 범아 인쇄 http://buma.tistory.com/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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