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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Apr 02. 2016

민들레 홑씨 되어

봄 볕이 따사롭다.

이 곳은 콘크리트가 울타리가 되어 서늘한 바람을 막아주고 바로 옆 철쭉이 든든하게 지켜주는 곳이다. 샛노란 꽃잎들 속에 새하얀 내 모습이 더 돋보이고 있지만 이것도 잠깐이다. 민들레 홑씨 되어 바람결에 멀리멀리 날아가 새로운 곳에서 다시 꽃 피워야만 하는 것이 엄연한 내 숙명인 줄 알지만, 지금은 더 돋보이고 싶고 더 뽐내고 싶을 뿐이다.

[ 화단에 꽃피운 민들레 ]

다른 친구들은 훌쩍 커버린 내 키를 보고 한 없이 부러워한다. 늘씬한 몸매에 긴 다리 그리고 백옥 같은 새하얀 내 모습이 눈꽃 속에서 빛나는 보석처럼 보이나 보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특별하게 인정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 부러움과 시기가 나에겐 큰 부담감으로 다가선다.

긴 시간이 아니라 잠깐의 시간밖에 부여받지 못한 나로서는 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을 뿐이다. 내 키가 유독 큰 이유는 멋있게 생겨서가 아니라, 바람결에 멀리 날아가서 널리 꽃 피우기 위해서이다. 홑씨가 여기저기 부딪쳐서 날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 것을 이 친구들은 모를 것이다. 그냥 보이는 모습으로만 판단하는 친구들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들의 단순함이 부럽기도 하다.


홑씨들이 지금은 하나의 가족처 함께 똘똘 뭉쳐 있지만 각자의 삶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다. 어떤 이는 자갈밭에, 어떤 이는 모래밭에 또 어떤 이는 포근한 흙 밭에서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삶이 민들레 홑씨 되어 날아갈 내 삶인 것에 안타까움도 서글픈 마음도 없다. 다만 새로운 곳에서 낯선 이들을 만나는 것보단, 오래된 친구가 있다는 것이 그립고 부럽다는 것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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