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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Jan 26. 2019

경계

아파트 안 벤치에 앉았다.

필로티 구조의 1층이라 햇살과 바람이 오고 간다. 이 곳 바닥엔 선명한 선이 그어져 있다. 햇볕과 그늘 사이를 구분 짓는 어둠과 밝음의 선이다. 그 선이 경계가 되었다. 따스한 햇살과 차가운 바람이 경계를 사이로 마주한다. 햇살은 밀물처럼 바람은 썰물처럼 만나 따뜻한 차가움을 만든다. 겉은 밝게 포장된 햇살로 속은 옹골차게 시린 어둠의 두 마음이 공존한다. 나의 마음이다. 곧 나의 자화상이다.

나는 햇살이 비치는 끝자락에 서 있다. 이 끝자락은 선으로 이어진 경계이다. 여기에 서 있으면 선택이 가능하다. 희망과 절망, 차도와 인도, 군자와 소인배 그리고 삶과 죽음 등 무수히 많은 경계의 선들이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넘어설 것이냐? 우회할 것이냐? 아니면 넘지 말 것이냐?.. 매번 결정의 순간이 닥쳐오면 두렵다. 그래서 결정을 거부하고 싶다. 적당한 선에서 물 흐르듯이 선택되고 결정되기를 바란다. 거기에는 책임도, 선택의 혼란도 없다.


그래서일까?

이 시대는 회색 인간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것 같다. 양다리를 걸쳐 소위 '중도'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포장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수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양쪽의 좋고 나쁨을 알고 있어 치우침 없는 중용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경계가 그물망 일 수도 있다. 그물망을 들고 왼쪽으로 던질 것이냐? 오른쪽으로 던질 것이냐? 아니면 때를 보고 기다릴 것이냐? 선택을 해야 하기에 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가끔은 가치가 올라간다. 내 편 네 편 구분 짓기 좋아하는 무리의 특성이 이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소위 정치의 이야기이고 우리네 삶의 이야기이다.


사람과의 소통에도 늘 경계가 있다. 나에게 좋은 사람, 싫은 사람, 그냥 어중간한 사람. 소통은 관계에서 형성된다. 새로운 일을 하려면 이들의 마음을 훔치던지 아니면 몸이라도 따르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존 사고의 틀에 메여있는 이들에게 경계는 벽이다. 경계의 벽을 넘어서는 행위는 금해야 할 덕목처럼 심겨 있다. 이대로가 좋다. 나서거나 뛰어나면 모난돌이 정을 맞듯 또 다른 경계의 대상이 되고 만다. 중도나 중간만 가는 것이 최선이다. 짧고 굵은 삶이 아니라 가늘고 긴 삶이 직장인들의 지향점이 된 지 오래다.


청년의 꿈은 이미 옛날이야기다. 가족으로 둘러싸인 무거운 짐과 세상 풍파에 시달린 쓰린 경험이 경계를 확실히 선택할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중간만 가라!

입사 초기 선배에게 들은 유일한 충고를 다시 가슴에 새기게 되는 현실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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