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바람의 소리가 구석구석 들린다. 귀가 밝아지기 때문이 아니라 바람이 맑아지기 때문이다. 『라면을 끓이며 』-김훈-
여행 산문집은 대체로 쉽게 읽힌다. 그 쉬운 글들이 문자로만 해석되어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삶의 흔적도 흘려보내야 한다. 그 흔적이 머무르는 곳에서 쉼표와 느낌표를 찾게 만든다. 바람이 전해준 짧은 한 구절 '당신이 좋다'는 의미를 음미하면서 말이다.
여행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안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글이 생성되고 그 과정에서 깨어지고 넘어진 삶의 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존경하는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며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사람의 등은 꺼칠꺼칠한 등껍질로만 거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가야 할 이정표가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도 결국은 삶의 길을 제대로 찾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이다. 내 안의 내비게이션이 여행을 통해 잠시 돌아가라고 지시한다. 지친 삶의 휴게소,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는 그늘막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부부라는 이름은, 혼자가 둘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가 되라는 선언과 같다. 가정은 쉼터이기도 하고 그늘막이 되기도 하고 에너지 충전소가 되기도 한다. 우리 부부의 길에도 다양한 바람이 불어왔었다. 죽음에 대한 아픔도 겪었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 투쟁의 경험, 길을 잃은 나그네처럼 방황하기도 했었다. 이 모든 삶은 여행과 유사한 것 같다.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는 미지의 여행에서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삶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삶의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것처럼.
이런 과정을 통해 신혼초 달달했던 '사랑애'가 삶의 전쟁을 치르며 '전우애'로 다시 끈끈한 '부부애'로 더 깊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혼초 가장 힘들게 다투었던 일은 '가족의 범위'에 대한 문제였다. 아내가 생각하는 가족과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같으면서 달랐다. 한 번씩 내뱉는 가족이라는 말에 차가운 냉기와 따듯한 온기가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왜 그럴까?라는 혼자 이해 못할 고민도 했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은 누구야?"
"당연히, 우리 부부와 우리 아이가 가족이야!"
"..."
"그러면 거제도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들은 가족이야? 아니야?"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는 우리, 여기에 함께 사는 식구야!"
"그게 말이 돼? 나를 태어나게 하고 함께 자란 형제가 한 가족이지. 어떻게 가족이 아니야?"
"아냐. 나는 당신에게 첫 번째이고 싶어. 부모, 형제가 먼저 되는 거는 싫어!"
이해 못하면서도 이해가 되는 말이다. 남자의 생각과 여자의 생각이 확연히 다르지만 근본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면 똑같다. 단지, 누구를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아내의 반응이 틀려진다는 것 빼고는.
나의 질문과 아내의 답변을 듣고 한 동안 냉전이 이어졌다. 더 이상 추궁하듯 묻지도 않았고 아내도 더 이상 본가에 대한 말을 자제했다. 가족의 범위에 대한 논쟁은 그 이후에도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이해해가는 과정이 되었다. 상대의 아픈 곳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살짝 비껴가는 노하우도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달달한 사랑애가 전우애로 옮겨져 갔다. 지금은 가족의 범위에 대한 논쟁 자체가 없다. 또 질문하면 다른 논쟁으로 전개될지 모르지만 전우애를 넘어 부부애로 다져진 삶의 지혜가 이것쯤이야라며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부부애는 용광로와 같다. 살아오면서 다투는 무수한 삶의 재료들을 고로에 넣고 고열로 녹여 새로운 물질로 융합시킨다. 또한 중간중간 불순물도 제거하는 과정도 거친다. 우리 부부도 각자의 삶이, 둘이었다 하나가 되는 과정이 고로에서 녹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잘 녹고 잘 섞여서 '부부애'라는 이름의 단단한 철이 되고 있지 않을까! 그 단단한 부부애라는 강철로 막힌 벽을 뚫고 새로운 길을 함께 열어 가도록 더 노력할게!
가을바람은 귀가 밝아져서가 아니라 바람이 맑아져서 잘 들리는 것처럼,당신의 심장에서 들리는 맑은 소리가 내 심장에 전해지도록 가슴을 열어두고 살게.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그 바람에 당신이 실려 오는 것처럼.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