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너는 어떤 뿌리를 만들고 있니?
아들이 돌아왔다.
2박 3일간의 중3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수학여행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흥분하며 전할 텐데, "다녀왔어요." 이 한마디뿐이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며 마음 준비를 했던 아내와 나는 그냥 멋쩍었다. `무슨 일이지? 다툼이 있었나?` 이 정도의 의문만 간직한 채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마음을 접었는데 그 순간 방문이 열렸다. `뭔가 이야기하려나 보다`라는 짧은 생각의 스침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아들은 밖으로 휑하니 나갔다. 내일 축구시합 전략 수립을 위해 친구들과 회의해야 한다면서……. `몹쓸 것!`
아들은 이번 수학여행을 통해 어떤 경험을 했을까? 익숙한 삶의 틀을 깨는 일탈의 행위가 있었을까? 아니면 그냥 눈과 입의 즐거움만 만끽했을까?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은 많다. 단체라는 테두리 안에서 배우는 공동체에 대한 인식과 각양각색의 다양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통한 일탈의 행위 그리고 내 안에서 외치는 다양한 목소리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2박 3일의 일정은 너무 짧다. 새로움을 추구하기 보다 익숙함에 더 물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익숙함을 끊어야 새로운 문이 열린다. 익숙함을 버리는 일을 힘겨운 과정이다. 내 몸의 일부분으로 체화된 것을 스스로 내치는 데 아픔과 힘겨움은 당연하다. 그 당연함을 넘어서지 못하면 새로운 세상에 눈뜨지 못한다. 새로운 오솔길이 아니라 익숙한 큰 대로만 쫓다가 인생은 끝난다. 그래서 잘 버려야 한다. 모질게 끊어내야 하고 때로는 타협해야 한다. 타협은 자신과의 타협이기보다 한 걸음 더 진보하기 위한 타협이어야 한다.
젊음은 다양한 시도를 하는 시기이다. 그 다양함을 통해 지식의 확장, 관계의 확장, 새로운 시야의 확장을 통해 세상과 부딪힌다. 그러면서 삶의 `진폭`도 커진다. 나이 들면 삶의 진폭이 점점 좁아진다. 새로움은 두려움으로 변해가고 그 두려움은 발걸음을 느리게 만든다. 도전하고 싸우는 데 힘도 부치지만 가진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욕구를 떨치기가 싶지 않다. 그래서 말뿐이지 새로운 길을 향해 도전하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이 어려운 기득권을 내려놓고, 익숙함을 끊었다고 끝나지 않는다. 끊었으면 그다음은 매듭짓기를 잘해야 한다. 인생은 매듭을 하나씩 짓는 과정이다. 긴 줄일지 짧은 줄일지 모르지만 미끄러지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면 하나씩 매듭을 지어 마무리해야 한다. 쉼표보다 마침표가 필요하다. 끊고 맺고 이어가야 한다. 때로는 매듭을 불로 지져 더는 풀리지 못하게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 없다. 매듭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듭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면 또 그 매듭과 결별해야 한다. 다시 끊고 또 다른 매듭을 찾아가는 길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길이다.
그 길에서 흔들림은 당연한 이치다. 흔들리면서 중심 잡기가 필요한데 중심을 잡으려면 하체의 힘이 중요하다. 하체가 버텨주지 못하면 작은 고난에도 뿌리째 뽑히고 만다. 버티며 견디는 힘은 하체를 지탱하는 뿌리에서 나온다. 뿌리는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보면 유추할 수 있다.
대나무 중 최고로 치는 모죽은 씨를 뿌린 후 5년 동안 물을 주고 가꾸어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어느 날 손가락만 죽순이 자라나고 주 성장기가 되면 하루에 80㎝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러면 모죽은 5년 동안 왜 자라지 않았을까? 학자들이 땅을 파보니 대나무의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10M가 넘도록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5년 동안 숨을 죽이고 뿌리를 내리며 견디는 삶을 산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낼 때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신을 펼치는 것이 모죽의 삶이다.
아들! 너의 삶도 모죽과 같이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시기이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것만 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싫은 일도 견디며 즐길 길을 찾아야 한다. 자라지 않는 모죽은 얼마나 주위의 시선이 따가웠을까? 물도 주고 영양분도 부어주고 햇빛도 제공했지만, 성장이 멈춘 모습에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런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큰 대나무가 되었듯 가끔은 부모의 따가운 시선도 이겨 낼 든든한 뿌리를 만들어 가라.
"저는 지금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지금 저의 모습을 보고 잘한다 못 한다 말하지 말아 주세요. 뿌리가 뻗어 준비되면 누구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냥 제 방식대로 잘하도록 기다려 주세요."
아들이 이렇게 얘기한다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