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삶이 건축이라면, 너는 무엇을 건축하고 싶니?
딸이 돌아왔다.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출발한 2박 3일간의 부산여행에서 돌아왔다. 해운대, 광안리, 자갈치, 깡통시장, 감천문화마을, 서면……. 등 부산 곳곳을 둘러봤다고 한다. 절친과 둘만의 여행 그리고 새로운 도전. 스스로가 계획하고 집을 떠난 첫 여행이었다. 새로운 풍경과 생소한 환경 그리고 맛난 먹거리를 통해 눈으로 익히고 맛으로 느끼고 돌아왔다. 잠깐 친구와의 갈등도 있었다지만 피곤한 몸에 추억이라는 이름표 하나가 더 붙었다. 삶은 이렇게 이름표 하나씩 붙여가는 것이다. 그 이름표가 쌓여서 경험되고 추억이 되어 아픈 상처에 새 살을 돋게 만드는 후시딘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고3이라는 힘겨운 과정을 부산여행을 통해 치유하고 새 힘을 얻게 되었기를 기대한다.
헬렌 켈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생은 볼 수 있되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눈으로 보는 세상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상, 생각의 범위를 벗어난 또 다른 세상을 만났기를 바란다. 보이는 것만 쫓다 보면 `문턱 증후군`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문턱만 넘어서면 뭔가 인생이 달라질 것 같은데, 단순히 보기만 해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눈에 들어온 것을 가슴에 담아야 한다.
따듯한 열망을 담고,
불의에 맞설 용기를 담고,
꿈을 향한 비전을 담아
힘차게 도전할 때
문턱 증후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인생은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만은 아니다. 대나무에 마디가 있는 이유는 끊어가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마디는 한 해의 모진 고난을 이겨낸 대나무에 주어진 선물이고, 성장을 멈추고 기다리면서 힘을 모은 결과물이다. 그래서 울퉁불퉁한 마디로 대나무가 휘지 않고 곧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도 이렇게 단계마다 끊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딸도 끊어가는 삶이 필요했던 것 같다. 대학생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맞서기 위한 몸풀기이고 준비과정이다. 우리 인생도 살아있는 한 계속 이어진다. 이어짐의 내면은 불안하다. 한 계단 넘어설 때마다 불안한 이어짐이 계속된다. 아직 덜 여물고 덜 성숙한 자아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난다. 이해의 충돌과 자아의 충돌로 사람과 세상에 맞서게 된다. 익숙한 자신의 세계를 벗어던져야 참된 자신만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이어가려 애쓰지 말고 대나무 마디처럼 멈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멈춤을 통해 단칼에 끊어 낼 힘을 길러야 한다.
황무지에 나무 한 그루 심는다면
끊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에서 자라난다. 똑같은 삶의 방식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용기도 낯선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 자라난다. 오늘 아침이 어제의 아침과 다르듯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나는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고 심어 주어야 한다. 황무지에 나무 한 그루 심었다면 언젠가는 그 나무 한 그루를 통해 숲이 되고 밀림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무를 통해 잡초가 자라고 벌레가 모이고 토양에 양분이 생성되어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들게 된다. 황무지가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과정은 누군가 심은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된다. 그 나무를 심는 과정은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서 출발한다. 그 용기로 지겨운 삶, 이전의 삶과는 단절할 끊어 낼 힘을 키우는 것이다.
『하버드 인생특강』에서 마이클 샌들 교수는 말한다. “삶을 바꿀 방법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을 바꿀 수는 있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노력을 통해 미래를 바꿀 수는 있다. `불만이 불만을 고통이 고통을 낳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난다면 인생은 더욱 새로워질 것이다.”
세상을 바꿀 호기를 꿈꾸는 시절이 청년기의 삶이다. 그런 삶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중학생, 고등학생 때부터 뭐 먹고 살지 걱정하며 살고 있다. 어떤 직장을 구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 것인가에 채널이 맞춰져 있다. 이런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 어떻게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을 바꿀 호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자신을 바꾸는 용기는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을 바꾸고 매일 새로워진다면, 세상은 바꾸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은 건축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피라미드, 피사의 사탑, 오페라 하우스처럼 신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건축물로 삶이 새로워질 수 있다. 대나무 마디처럼 소소하지만 하나하나 매듭 잘 짓다 보면 그 건축물의 주인공이 네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 인생 건축물의 주인공이 되어 보지 않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