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책임

by 글 쓰는 나그네

"안티고네는 늘 '행복할 권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권리'를 택합니다. 눈먼 아비와 천하를 떠돌며 그녀는 어떤 세상을 본 것일까요? 테베로 돌아온 후 '살아남을 권리'를 택한 동생 이스메네와 달리, 안티고네는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그 무엇을 고민했습니다." - 정여울 <행복할 권리> p.55 -



안티고네가 지키고자 했던 고민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족애와 인간애가 무너진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입니다. 현실적 선택을 한 동생의 결단이 지극이 정상적입니다. 죽음 앞에 그 누구도 당당히 맞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쉽지 않은 결정을 안티고네는 선택했습니다. 허허벌판에 버려진 오빠를 두고 자신의 안위를 챙기는 '행복할 권리'를 택하기보다, '함께할 권리'를 택했습니다. 그 권리가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 정여울 작가의 표현처럼 '더 나은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었습니다. 악법과 같은 잘못된 관습은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에서 개선됩니다. 앞선 자들이 본(本)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삶의 궤적은 이야기의 연속입니다. 어떤 삶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삶의 결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한 때 '더 나은 이야기 만들기'가 한 해의 방향이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좋은 사람을 만들고 그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는 더 나은 사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첫걸음이 시발점이 되어 함께 연대해 나간다면, 더 나은 세상은 도래한다고 생각됩니다. 안티고네가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우리에게 던진 질문, '더 나은 삶이 무엇인가?'의 해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저에게 안티고네의 상황을 대입해 보았습니다. 내가 만약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기 싫습니다. 선택에 부여된 책임의 깊이를 알기에, 선택하지 않고 선택받으며 살고 싶어 졌습니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적합한 선택을 해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선택이라는 이름의 결정을 하고 나면 그에 따른 다양한 잡음에 시달리는데 지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차선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모두 만족하는 최선은 거의 없습니다. 나의 생각과 다른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한 흔적들이 너무 많습니다.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제 이상은 깃대 없는 깃발이요 소리 없는 메아리에 그칠 뿐입니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에 책임이 따릅니다. 그 책임을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하려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누군가가 대신 선택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요다 이즘(Yodaism)'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요다는 스타워즈 캐릭터 중 주인공 제다이의 정신적 스승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요다 이즘은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강한 존재에 의존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정의됩니다. 누구든지 이 선택의 딜레마에서 자유하기를 원합니다. 선택할 자유보다는 상황에 적합한 선택을 누군가 해 주면 얼마나 편할까?라는 생각까지 이어질 때, 회피하려는 마음까지 들게 됩니다.


저에게 다시 행복할 권리, 함께할 권리, 살아남을 권리 중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저는 '살아남을 권리'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비겁하고 나약한 선택이지만, 가족이라는 빨대가 꽂혀있는(박범신의 <소금>에서 가장(家長)을 표현한 단어) 현실에서 살아남아야 할 의무를 떨치기가 너무 힘듭니다. 나 혼자가 아니다. 우선은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이 가장의 숙명이다. 받아들여라.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삶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찻잔 속의 태풍',
'우물 안의 개구리'에 그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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