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짐

by 글 쓰는 나그네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 촉감 앞에서 우리는 어떤 공포로부터, 어떤 설움으로부터, 어떤 아픔으로부터 진정되곤 한다." -김소연, <마음사전>에서-




손에서 느끼는 마음은 따듯함입니다. 어머니가 손으로 문질려 주시던 따듯한 약손의 체취가 그립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배앓이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배를 어루만집니다. 아이가 아플 때도 '아빠 손은 약손'하며 교감을 나눈 적이 많았습니다. 이런 교감을 통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요즘은 스킨십이라는 외래어로 무분별하게 사용되지만, 그 스킨십이란 단어에는 형식적이고 업무적인 성격이 짙어 보입니다. 무언가의 목적을 가지고 하는 행위로 느껴집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이 시대의 시대상도 반영이 되어 관계 맺기의 유용한 도구로 스킨십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킨십에는 무언가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부족한 것을 김소연 시인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손으로 만지다
시인은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이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어루만진다는 단어가 너무 좋습니다. 그 어루만짐에는 위로와 애정의 표현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해. 정말 고마워'
'당신 정말 고생했어. 조금만 더 노력해봐.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더 빛나게 되는 날이 올 거야!'

위로와 희망의 말이 어루만짐이라는 행위와 함께 합니다. 이 어루만짐이 희망고문이 될 지라도, 내 마음을 위로하고 알아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이 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루만지는 행위 자체만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어루만짐도 조심해야 하는 행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타 지역에서 고3 아이들에게 '무엇을 선택할래?'라는 주제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몇몇의 아이들과 포옹을 하려다 진행자의 만류로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중고등부 아이들을 자주 포옹해 준 적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접촉하려 했었는데 제 의도와는 다르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멈췄습니다. 어루만짐의 범위는 넓습니다. 손에게만 주어진 권한은 아닙니다. 손으로 어루만지는 것보다 가슴으로 어루만지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손은 은은한 따스함을 간직하고 있다면, 가슴은 뜨거운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그 뜨거운 사랑을 가슴으로 전할 수 없는 세상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글로 만지다
어루만짐에는 또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글쓰기 즉, 글로 만나는 것입니다. 글은 말로 하는 위로의 범주를 넘어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아픔을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말의 힘보다 글의 힘이 더 강합니다. 한 번에 전달되는 강력한 힘은 말의 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깊은 심연의 바다를 출렁이게 할 수 있는 힘은 글의 힘에서 비롯됩니다. 깊은 웅덩이, 심연의 바다를 흔들려면 '울림'이 필요합니다. 그 울림에는 글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글쓰기도 반복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행위가 반복되어야 합니다. 글쓰기도 이와 같습니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나누(배설)는 행위를 통해야만 삶의 울림이 더 깊어집니다. 글로 어루만지고 글로 위로받고 글로 따스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글의 장점은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점입니다. 수백 년 전의 위인들이 현재의 우리를 어루만지고 새까만 후배의 글로 위로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녀의 손편지에 감동의 눈물이 맺힐 때도 많습니다. 글은 위로의 힘뿐만이 아니라 감동의 눈물도 흘리게 만듭니다.

마음으로 만지다
손에서 느끼는 촉감만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촉감이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촉감으로 대표되는 산업이 4차 산업입니다. 4차 산업의 핵심이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기계를 연결시키고, 가상과 현실의 세계를 연결시킵니다. 이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데 더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연결의 핵심은 사람이니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고 사람이 사람을 어루만지며 사람이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할 때, 제대로 된 연결의 의미를 찾을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풍요 속에서도 빈곤한 계층은 존재합니다. 가진 것은 없어도 자존감은 있어야 하고,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은 꾸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따듯한 어루만짐이 필요합니다. 그 따듯한 어루만짐의 공동체가 되어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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