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바로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다"
-<영화 시월애>에서 은주의 대사-
아침 회의 때마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하나?라는 고민 아닌 고민을 한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딱딱하다. 회의 전, 공통의 주제나 그날의 가십거리를 미리 찾는다. 어렵게 찾아낸 가십거리가 무반응으로 냉랭해지면 이때는 방법이 없다. 회사 소식이나 업무로 화제를 돌린다. 회사 이야기나 업무로 전환하면 어색함은 옅어진다. 적은 인원이지만 서로의 관심분야가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분위기를 띄울 화젯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로 묶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글도 이와 같다. 매일 글감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무슨 글을 쓰지? 책상에 앉으면 그냥 멍해진다. 평소 '멍 때리기' 대회를 동경했지만 이 멍은 다르다. 주먹으로 한 방 얻어맞아서 생긴 멍이다. 앉아 있지만 무언가에 한 방 맞은 듯 아프다. 글 속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지우고, 펜의 힘으로 밀고 가보지만 글이 아니라 낙서로 그친다. 내 글씨를 못 알아볼 만큼 갈지자의 횡보를 이어가다 시간은 흐르고 무언가의 힘에 눌려 조바심만 생긴다. 사유의 자유를 점점 잃어가다 이젠 남의 손을 잡고 있다. 결국엔 내 색채를 잃고 들러리의 글을 쓰고, 내 글을 빼앗겼다고 한탄한다.
어린아이들은 수 천 번을 넘어지면서 걷는 데 도사가 되었다. 도사는 아니더라도 사유의 바다에 풍덩 빠져 헤엄치고 싶다. 그 바다의 깊은 곳에서 건져 낸 글로 도배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에 기댄다. 다른 누군가의 흔적을 빌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말을 훔치면서 모방하고 필사한다. 이런 과정이 훈련의 과정이라는 위안을 삼으면서. 언젠가는 펜이 밀고 가고 글이 끌고 가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며.
우리의 일상은 이야기의 연속이다. 그 이야기를 말로 글로 절묘하게 표현하는 스토리텔러나 작가들이 존경받는 시대다. 이들의 장점은 글감을 찾아내는 능력과 표현력에 있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선을 벗어난 어투와 글투가 청중과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이들은 감추거나 숨기지 않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기침과 가난과 사랑처럼'
사는 게 가끔은 힘겹다. 나 자신을 드러내기가 두려울 때가 있다. 이럴 때, 말을 숨기고 자신을 숨기지만, 글까지는 숨기지 못한다. 숨길 수 없는 글, 감출 수 없는 글.
내 안에 깊은 옹달샘이 있다. 아직 찾지 못하고 맛보지는 못했지만 감출 수 없을 것이다. 그 옹달샘을 찾는 여정이 지금 글쓰기에서 출발한다. 다시 시작하고 다시 출발해 보자.^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