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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Dec 07. 2019

한정희와 나

소설 서평

<한정희와 나>  
  
책 표지에 눈길이 쏠린다. 소녀의 몸에 가시 돋친 선인장의 얼굴이 붙어있다. 소설가인 화자의 눈으로 바라본 정희에 대한 모습이다. 책을 읽기 전 먼저 낙인을 찍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녀는 따가운 가시 같은 아이라고. 겉모습은 수줍게 공손하지만 속 마음은 가시 같이 날카롭다고.
  
소설은 직업이 작가인 화자를 통해 전개된다. 정희가 자신의 집으로 오게 된 사연을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민주화 시대로 대변되는 격동의 시기, 장인어른은 임금체불과 함께 실직자가 되었다. 그 부당함에 대한 정당한 항변이 폭력사태로 확대되어 구속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화자의 아내가 어린 시절 엄마의 친구 집인 마석에 거하게 되면서 혈연이 아닌 또 다른 가족의 관계가 형성된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간 자리를 대신해서 마석 엄마, 아빠는 재경이라는 오빠를 입양했다. 그 오빠의 딸이 정희다. 한정희. 정희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 얹혀살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소설은 담고 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의문점이 생겼다. 왜? 제목을 굳이 '한정희'라고 지었을까? 소설 속에는 성을 찾아볼 수 없다. 정희라는 따뜻한 이름이 등장하지만, 제목에 성이 붙어면서 이름이 차가워졌다. 한정희와 나 사이에는 무언가의 벽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 강조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너는 얹혀사는 객이야. 혈연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내 가족이 아니라 다만 한시적으로 스쳐가는 객일 뿐이다. 거리감을 두면서 정희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화자의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정희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한다. 안쓰러움이 첫 마음이었다면 애정과 친근감이 두 번째 마음이었고 학교 폭력을 계기로 반성할 줄 모르는 행동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세 번째 마음이었다. 사람은 겉모습과 내면의 속 사람이 항상 같을 수 없다. 포장된 외면의 얼굴이 있고 본능에 충실한 내면의 모습이 있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다른 가정에 얹혀사는 소녀의 내면은 더 복잡할 것이다. 그런 내면의 아픔을 소설 속에서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화자의 입장에서만 재단하고 선을 긋는 일방적인 부분이 있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의 모습일 수도 있고 자신의 불행한 가족사에 대한 방어적 기제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   
  
얹혀사는 삶은 쉽지 않다. 나 또한 어린 시절 누나 집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7년 정도였다. 혈연이 기반이 된 관계였지만 내 집은 아니었다. 누나가 엄마처럼 느껴지고 살갑게 대해 줬지만 눈치 밥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삶을 대비해 봤을 때, 화자의 입장이 아니라 정희의 입장에 서게 된다. 아픔은 공감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런 공감이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가지기는 어렵다. 불현듯 마음속 말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어린 게 염치도 없이......"  
  
소설 마지막에, 좀처럼 글을 잘 쓸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사람일까?라는 의문을 정희를 떠나보낸 후 생각하게 되었다. '한 소녀의 아픔을 어루만지지 못하면서 늘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타당한가, 위선적이니 않나?' 라며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다. 누군가 자신에게 손을 내민다면 그 손을 덥석 잡아줄 용기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반문한다.   
  
누군가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타자에 대한 절대적 환대는 허상과 함께 실망과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마음의 상처는 마음으로 어루만져야 한다. 그래야 치유된다. 한 번의 실패가 있었다면 다시 한번 손을 내미는 것에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용기의 또 다른 이름은, 다시 손을 내미는 것이다.   
  
소설은 마음의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삶에는 정답도 해답도 없고 상처 받고 또 시간이 지나면 아무는 과정이 있다는 여운만 남겼다.   
  
'한정희와 나'가 아니라 '정희와 나'였으면 소설의 전개도 달라졌을까? 소설은 끝났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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