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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Dec 28. 2019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김원영은 골형성 부전증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다. 지체장애자 1급이지만 변호사로 우리 사회에서 병들고 뒤틀린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전하고 변론한다. 변론이라고 하지만 법률적인 논증에 기대지 않는다. 다만, 이 세상에 잘못된 삶은 없다는 것을 사회가 수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장애를 갖고 태어나면 '손해'라고 느끼게 되는 사회가 아니라, 존엄과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에서 그들도 세상의 정당한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격(失格), 사전적 의미로 잃을 '실'자에 격식 '격'자 격식에 맞지 않거나 기준 미달을 뜻한다. 또는 불합격이나 자격상실이라고도 한다. 누가 이들을 기준 미달이라고 부르는가? 세상은 다수의 룰이 기준이 된다. 그 다수에 속하지 않으면 함량 미달이 되거나 격식에 맞지 않다며 '실격'이라는 노란 딱지를 붙이고 있다. 그리고 차별 아닌 차별을 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은 우리와 달라. 같은 속도로 함께 뛸 수 없잖아. 그러니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니들만의 마이너리그에서 뛰어. 그게 훨씬 편하잖아. 우리가 적당한 범위 내에서 도와줄게. 손 내밀어 줄 때 잘 받으며 살아. 단 절대로 튀지 말고. 우리의 방식에 맞춰서 행동할 때 도와줄 수 있는 거야. 알겠지'  
  
마이너리그의 설움을 딛고 메이저리그의 꿈을 향해 도전하지만, 사회라는 시스템은 장애를 안고 있는 이들을 위한 도전에는 한계선을 그어놓고 있다. '딱 여기까지야'라는 말이 법의 테두리 안에도 교육의 테두리 안에도 그리고 삶의 테두리 안에도 심겨 있다. 그래서 그 선을 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저자는 이런 현실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삶을 살아내는 힘, 존엄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변화시킬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처음보다 뒤로 갈수록 읽기가 버거워졌다. 나와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저자와 실격당한 이들(?)과의 벽이 느껴져서일까? 읽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읽는 속도도 이해의 범주도 그리고 공감력도 조금씩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적인 전개로 인해 처음의 몰입감이 분산되었다. 그러면서 내 안에 불편함이 존재했다. 메이저리그의 삶을 살고 싶은 내게 마이너리그의 이야기를 오래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와 다른 세상이 아닌 나와 같은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나 보다. 이런 생각이 내 속에 들어차 있는 것 자체에 불편해졌다. 그래서 더 무거운 발걸음으로 읽어간 것 같다.  
  
장애인이 사회와 접하며 살아가는데 느끼는 감정은 어떨까? 정상인의 범주 안에서 살아가면 그것 또한 기득권일까? 내겐 1.8초의 사이클로 밀어야 하는 휠체어는 필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길은 1.8초의 간격으로 움직이는 힘이 필요하다. 소외되고 누군가에게 비난받는 삶은 자존감을 땅바닥에 두고 사는 삶이다. 혼자 힘으로 버겁다고 느낄 때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다.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는 세상,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세상,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는 세상...... 그런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책을 읽고 그 책을 나누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는 '실격당한 자'는 아닐까?
기준 미달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다만 부족한 인생에 사람 인자(人) 하나만 제대로 세워두고 갔으면 좋겠다. 사람 인의 모습을 보면 알게 된다. 사람은 사회에서 한 발로 오래 서 있을 수 없듯, 두 발로 함께 서는 세상 그런 세상이 실격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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