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200년경, 전쟁이 터졌다. 10만여 명의 그리스인들은 연합군을 구성해 1186척의 배를 타고 트로이 해안으로 진격했다. 10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용사들에 의해 무용담이 전해 졌지만, 400여 년이 흘러 마침내 기원전 9세기경에 전설의 완결 편이 나타났다. 호메로스라고 불리는 '작가(시인)'가 나타나 전쟁의 가장 극적인 부분을 엮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썼다. 서구인들의 문화의 중심축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 두 작품의 세상 안에서 탄생하고 지속되고 또다시 갱신되고 있다.
l 다양한 해석
그러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트로이 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첫 번째, 트로이의 왕자인 페리스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를 찾아갔다가 그의 아내 헬레네를 유혹해 함께 도주하자,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가 아가멤논과 그리스 연합군을 구성하여 트로이를 공격했고 전쟁이 터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원인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해석이 등장한다.두 번째, 투퀴디데스의 기록은 호메로스의 현란한 과장으로 그 시대 해적질을 하던 무리들을 신화적 스토리텔링으로 과장했다고 전한다.전쟁이 10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도 사실은 그리스인들이 소아시아에서 10년 동안 간헐적으로 저지른 일련의 해적활동을 확대 해석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부정한 치부를 은폐하려고 신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화는 승리자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기에. 결국 누구의 입장에서 보는가에 따라 역사는 새롭게 해석된다. 역사는 그래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창조물이 될 수도 있다. 정여울의 <공부할 권리>에서는 신화적인 요소를 가미한 또 다른 세 번째 해석이 등장한다. 여인들의 싸움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아폴로 산꼭대기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세 여인이 있었다. 제우스의 부인 헤라, 그의 딸 아테나와 아프로디테다. 어느 날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를 놓고 싸움이 붙었다. 평소 여성의 속성을 잘 알고 있던 제우스는 현명하게도 이 논쟁에 말려들기를 꺼렸다. 대신에 그들에게 미적 안목이 높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를 추전 했다. 물론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치열한 로비가 있었다. 헤라는 재산을, 아테나는 도시를,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주겠노라 약속했다. 파리스는 아름다운 여성 쪽으로 결정했다. 아프로디테가 미의 여신이 된 데엔 이런 흑막이 있었다. 이제는 가장 아름다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를 유혹하게 하여 함께 도주하도록 도와준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 함대를 이끌고 트로이로 진격한다.
l 아이네이스
트로이 전쟁에서 패한 그들의 후손들이 먼 훗날 그리스를 정복한 뒤에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보고 분노하고 질시하며 모방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새로운 고전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것이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이다. <아이네이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패배한 후 폐허가 된 도시를 빠져나온 '아이네아스'가 초자연적인 안내를 받아 서양에서 영광스러운 운명을 지닐 새로운 터를 찾아내고, 그곳에 라비니움(로마의 모체가 된 도시)이라는 도시를 건설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12권에 담고 있는 책이다
l 역사를 배우는 이유
이렇게 기록된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는 야사를 포함해서 다양한 해석이 필요하다. 현세의 사람들이 역사를 배우는 주된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역사는 진보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꿈은 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진단하고 토론하고 평가해서 후배들이 잘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줘야 하는 데 있다.
전쟁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왜 전쟁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명분은 과거나 지금이나 아주 중요하다. 승리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어떻게 후세에 기록될까 두려워한다. 현세에서는 승리했지만 먼 미래에도 승리자의 이름으로 남겨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역사 왜곡에 치중하고 있는 소인배들이 즐비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것을 지켜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 또한 편협된 사고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역사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매개로 역사적 진실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해석되고 일반화된 사실을 기반으로 뿌리를 튼튼히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다양성을 잃어버린다면 그 시절 직접 보지 않은 우리는 누군가의 기록에만 의지해서 역사를 스스로 왜곡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