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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Jun 06. 2020

여행의 이유

작가 : 김영하


l 여행은 왜 갈까? l


인류에게 주어진 유산 가운데 하나가 끊임없이 이유를 찾는다는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행동하고 움직이는데 필요한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적당한 논리가 필요하다. 다른 누구에게 전하는 목적도 있지만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항상 이유 찾기를 원한다. 김영하 작가는 이런 인류의 보편적인 의문을 자신의 여행담을 통해 담담하게 드러냈다. 아마도 책을 쓰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것이다.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또 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그것을 분명한 어조의 글로 표현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여행의 이유는 다양하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Come Back Home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리셋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뭐가 되었던 여행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은 있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쉽게 풀면 어둠이 빛이 없는 것이라면, 여행은 일상이 없는 것이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매일 아침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그런 설렘이 여행의 묘미이다. 떠나면 알게 된다. 내가 사는 그곳의 소중함을.


이 책은  '야간비행'이라는 독서모임의 주제도서로 선정되었다. 토론을 통해 회원들과 함께 여행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나누는 귀한 시간이었다. 어떤 분은 자전거 여행을, 또 다른 분은 청년들을 위한 한국철도공사 여행상품인 '내일로'를 통해 일주일간 기차여행을 한 이야기 ('내일로 패스'를 구매하면 일주일간 KTX를 제외한 해당 열차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청년 29세까지만 허용됨),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해방과 자유의 이야기 그리고 요즘 내가 빠져있는 차박에 대한 이야기 등...  책이 없어도 될 정도의 뜨거운 열정을 갖게 만드는 단어가 여행이었다.


l 일상에 갇힌 삶의 탈출구 l


우리는 정해진 사회 시스템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간다. 그 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가끔은 구속되어 있다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 안에서 벗어나고 싶고 탈출하고 싶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그늘에 갇혀 있기보다 정해져 있지 않은 새로운 세상, 준비되지 않은 뜻밖의 환경에 대한 동경이 있다. 여행도 정해진 기준에 의해 움직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정하기에 따라 환경은 달라진다. 생각하지 못한 길을 가게 되고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며 소통하고 어울리게 되고 낯선 환경의 공간에서 잠을 청하게도 된다. 앞서 저자가 말한 여행의 이유 중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게 만든다. 현실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지나간 문제나 다가올 두려움은 잊히고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야만 여행을 통해 생존하거나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은 의외로 단순하다. 작은 문제를 두고 엄청나게 고민하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크거나 시급한 문제를 던져주면 거기에만 몰입하게 된다. 벌레에 물려 가렵다가도 상처가 나면 벌레에 물린 가려움은 잊게 되는 것과 같다.


가끔 책을 읽다 보면 머릿속에만 가둬 둔 단어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내가 이것을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저자가 제기한 문장을 보며 알게 된다. 이유를 모른 채 덮어둔 것이었는데 책을 읽다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풀릴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유레카를 외치며 책 속으로 뛰어들어가게 된다. 내가 모르는 나를 알게 해 주는 기능이 책 속에 있기에 책을 덮고 살지 못하나 보다. 이 책에서도 숨겨둔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멀미'에 대한 글이다.


"멀미란 눈으로 보는 것과 몸이 느끼는 것이 다를 때 오는 불일치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도, 즉 자동차나 비행기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어지러움을 느낀다면 뇌는 이것을 비상한 상태, 즉 독버섯이나 독초를 먹었다고 판단하고 소화기관에 있는 음식물을 토해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전자는 멀미를 겪지 않는다. 차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뇌가 그에 맞춰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멀미는 뇌의 예측과 눈앞의 현실이 다를 때 일어난다고도 할 수 있다."



예측이 어긋날 때 충격을 받듯, 멀미도 발생한다. 현실의 붕괴를 뇌가 먼저 인지하고 반응한다.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통해 전체 몸을 보호하려는 작용이다. 나는 고향이 거제도의 작은 어촌마을이다. 그래서 부산을 가려면 배를 타고 약 3시간 가까이 가야 했다. 파도가 일고 바람이 불 때면 배의 출렁임에 편성해서 몸의 내장기관도 함께 출렁거렸다. 배를 자주 타서 면역이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심한 파도에는 장사 없다고 토하기도 했었다. 아마도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있었기에 멀미에 대한 궁금증이 돌부리처럼 내면 깊숙이 박혀  있었던 것 같다. 책은 이런 숨겨진 돌부리를 찾고 끄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숨겨진 돌부리를 찾는 것도 있다. 내 안 깊숙이 박혀 있는 내 목소리를 이런 과정을 통해서 다시 듣게 되는 것이 좋다. 그 목소리를 찾게 될 때면 그늘진 마음에 따사로운 햇살이 드는 느낌이다.  


나에게 여행의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거야"



다양한 이유가 있기에 나중에 또 바뀌겠지만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이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만든다. 돌아오지 않고 계속 여행한다면 방랑자가 되는 것이다. 방랑자라는 단어보다 노마드가 더 어울리겠다. 노마드의 삶, 어디든지 자유롭게 떠나는 유목민의 삶, 특정한 가치와 삶 그리고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 인간형의 모습인 노마드는 나에게는 너무 멀다. 아직은 그까지 가고 싶지 않다. 돌아올 수 있어야 떠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말한다.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은 뇌에서 고통을 느끼는 영역을 활성화하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현금은 돈을 빼앗긴다는 느낌이 들고 카드는 잠깐 나갔다고 다시 되돌아온다.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더라도 되돌아오는 카드가 고통을 덜하게 만든다고 한다. 한자의 조삼모사와 같은 이치다.


김정운 교수는 천재와 또라이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해석했다. 천재와 또라이는 둘 다 머리가 좋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도 감지한다. 그래서 그들은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다. 그런데 차이점은 천재는 아무리 멀리 가도 되돌아온다는 사실이고 또라이는 돌아오지 않고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산다는 점이다. 천재는 돌아오는 자, 또라이는 돌아오지 않는 자로 정의해도 괜찮을 듯하다.


여행의 이유는 이 이외도 다양할 것이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여행의 의미도 목적도 방향도 달라진다. 단지 김영하 작가라는 닉네임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제목이 붙었다는 점에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아홉 개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까지 담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행에 대한 자신만의 이유를 한 가지씩 생각해보게 만드는 점은 유익했다. 또한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작가는 소설로 유명해졌고(영화로 상영도 됨) 알쓸신잡을 통해 대중에게 더 다가갔지만 가끔은 수필(다른 수필집도 있음)등 다른 삶의 이야기들로 독자들과 만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여행은 왜 갈까요?"

  
무작정 떠나는 삶보다 한 번씩은 내면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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