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배(텍스트의 배고픔)

백혈병 단상 (59 번째)

by 글 쓰는 나그네

59.


허기진 야수처럼 태블릿으로 달려들었다. '텍배(텍스트의 배고픔)'에 눈앞이 쾡하지만 여전히 태블릿 창은 영양실조 걸린 걸인 같다. 먹을 음식은 없고 빈 그릇만 요란하다. 빈 그릇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내 몸은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수분과 영양소를 채우지만, 내 영혼은 토해 낸 글자들이 반듯하게 줄지어 도열할 때 더 배부름을 느낀다. 그 배부름의 정점에 이른 포만감을 느끼고 싶다. 그런데 손가락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꾹꾹 눌러 이 안에 응어리 찬 단어들로 빈 공간을 채워야 그 그늘 아래에서 쉼의 자유를 누릴 텐데. 글은 언제나 내 안에서 맴돌다 사그라진다. 불꽃을 태워야 하는데 불씨조차 붙일 수 없다. 답답하고 허기진다.


"I'm still hungry".


나 또한 배고프다. 이 허기짐을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를 써내는 것뿐이다. 토해내고 뱉어내 하얀색 창이 쓰레기 집하장이 되어도 좋다. 우선은 막힌 수로를 여는 게 중요하다. 막힌 곳은 뚫어야 작은 물줄기를 통해 목마름의 갈증이라도 해소할 수 있을 텐데,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 말이 글이 되지 못하는 비애를 품고 있다. '말과 글이 왜 이렇게 멀어 보이는지. 녹음이라도 해서 받아 적어야 하나?' 박근혜 정부 때 희화화되었던 그 단어, '적자생존'이 지금 내겐 가장 어울린다. 적어야 살아남을 수 있듯 적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머릿속에, 가슴 언저리에 맴도는 길 잃은 어린양이 수로를 타고 새하얀 들판에서 맘껏 뛰어놀기를 바랄 뿐. 그들의 놀이터에 찍힌 발자국과 토해 낸 배설물이 글이 되고 언어가 되어 텍배의 허기짐을 해소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배고픔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적는 것뿐.
적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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