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내 안의 어두운 면(Self-shadow)
죽고 싶었다.
더 이상 내려갈 나락이 없는 것 같았으니까.
꿈이던 직업을 3년 넘게 준비하던 중, 엄마가 암에 걸리셨다.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가 사회악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아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한심한 인간이라 손가락질할까 봐,
안 되는 일을 붙잡고 있는 미련한 인간으로 비칠까 봐 무서웠다.
어느새 몸과 마음은 망가졌고, 버틸 힘이 부족했다.
하지만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며 느꼈다. 자살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자살을 실현할 정도면 그 힘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자살’은 거꾸로 하면 ‘살자’이듯,
결국 살고 싶다는 ‘SOS 신호’임을 깨달았다.
너무 잘 살고 싶어서 안간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자꾸 인생이 풀리지 않고 악재가 겹치니 망가진 인생을 마주할 자신도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슬퍼할 가족을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 과학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너희가 인생을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있을 거야. 근데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야.
힘듦의 깊이만큼 그걸 이겨내면 언젠가 반드시 그만큼의 행복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자살하지는 마.”
인간은 불행한 사건을 더 강하게 기억하고, 그 기억이 오래 남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위험과 불리한 상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 여러 복합적인 사정으로 인해 오히려 서로의 짐을 함께 짊어질 여유조차 없을 때가 찾아온다.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가족 각자의 건강 문제와 다양한 이유로 인해, 가족의 고통을 돌볼 겨를이 없던 때였다.
평소 남들에게 힘든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은 엄마의 병간호와 수험 생활에 답답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내 상황을 털어놓았다. 일종의 하소연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글을 지우기 위해 다시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놀라운 경험을 했다.
“죽지 않아 줘서 고맙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 주셔서, 그 자체로 정말 고맙고 대견합니다.
지금의 고생이 언젠가 ‘그땐 그랬지’ 하며 담담히 돌아볼 추억이 될 날이 올 거예요.
세상이 험하고 팍팍하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수국님처럼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에게는 결국 좋은 일이 찾아옵니다. 오늘도 정말 수고하셨어요.”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이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그 익명의 위로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인생은 희로애락이지만, 필자가 느끼기에 ‘희’보다 ‘애’가 더 크게 다가온다.
필자는 이제부터 불행한 일을 자연재해에 비유하려 한다.
자연재해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한 번 발생하면 복구하기 어렵고, 복구를 마친 뒤에도 그 잔재는 몇 년간 남아 있다.
불행한 일도 마찬가지다. 불행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며 하늘을 원망하고 싶겠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게는 그런 푸념만 늘어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빠르게 원상 복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시련과 힘듦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양가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이만큼 성장했구나.”
“다음에 더 큰 시련이 닥치면 어떻게 극복하지?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인생을 하나의 게임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각 라운드의 괴물을 무찌르며, 끝판왕 괴물을 깨기 위해 레벨업을 하는 중이다.
라운드가 올라갈수록 난이도는 어려워지겠지만,
계속 부활해서 결국 승자는 내가 될 것이라
오늘도 최면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