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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Nov 22. 2018

지켜보는 성장

  외가댁에 가면 난 항상 혼자였다. 밑으로 줄줄이 동생들이 있어도 나는 혼자 동떨어져있었다. 외갓집에서 나를 기준으로 위로는 어른들, 아래로는 최소 5살부터 많게는 10살 어린 동생들이 있었다. 나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상태에 있었다.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감성적이었던 나는 외로웠다. 그래서 가끔은 모나게 굴었다. 어른들은 내 나이 또래 아이가 난리를 떨면 그 상태를 단순하게 '사춘기'로 정의하고 말았다. 어쩌면 사춘기라 모나게 굴었던 것도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나는 어릴 때부터 종종 외로웠다.


  그러다가 사촌동생들이 자라고, 나와 같은 '성인'의 영역으로 하나 둘 넘어오니 마음이 한결 좋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 외로웠다. 여전히 외갓집 내의 큰 집합은 둘 뿐이었다. 나는 두 집합의 교집합도 아닌 언저리 어디쯤에 있었다. 어디든 속해보려고 계속 서성이다가 이제는 그냥 동생들이 성장하는 것과 어른들끼리 티격태격하고 하하호호 웃는 걸 구경하기로 했다.


  지켜보다보니 사촌동생 두 명이 성인이 되었고, 이제 두 명 더 '(외가댁 한정) 내 영역'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애들이 성인이 되면 함께 술이나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도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모두 사는 지역이 다른 것도 문제였고 몸담은 분야가 다르다는 점도 한 몫했다. 여덟 명 각자가 어찌나 바쁜지 일 년에 두 번, 명절에 얼굴을 마주하기도 힘들었다. 근황만 겨우 알 수 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여덟 명의 동생 중 셋이 법적으로 어른임을 증명받았다. 둘은 법적 성인 증명을 앞두고 있고, 하나는 입시전쟁 대비를 하고 있으며, 하나는 내가 생각하는 착한 아이의 정석대로 성장하며 또 입시전쟁에 대비하고 있고, 하나는 고작 세 살이라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는 걸 주 업무로 삼으며 지내고 있다.


  연령대도 제각각인 아이들이 모두 어른의 범주로 들어오게 되면 나는 40대가 되어있을 것이다. 언젠가 한 번 다들 한 자리에 모아놓고, 혹은 일대일이라도 좋으니 내 앞에 앉혀놓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뭐냐 묻고 싶다. 그리고는 최선을 다해 격려해주고 싶다. 하지만 나도 아직 조숙한 티를 벗지 못한 '어른이'라 내 앞가림을 해나가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얼굴 볼 때마다 격하게 묻고 싶은 그 질문들은 그저 버킷리스트 한 구석에 자리 잡고서 때를 기다리고있다.


  어른이 된 셋은 각자의 길에서 제법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언제 저만큼 커서 앞가림을 하고 있나 신기할 따름이다. 언니가 하는 건 모조리 따라하려는 꼬꼬마와 공룡만 좋아하는 꼬꼬마와 만화를 그렇게 좋아하던 꼬꼬마였는데 이제는 사회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니.


  매번 신기해하던 중 하루는 동생 하나가 음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왜인지 모르게 내가 두근거렸다. 그리고는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한 기분이었다. 괜히 긴장하며 음악을 들었는데, 듣는 동안 말로 다 못할 감격과 함께 다른 동생들의 모습들이 스쳐갔다.


  꿈을 꾸던 꼬꼬마 아이들이 꿈을 목표로 만들고 목표로 나아갈 줄 아는 어른들이 되어 있었다. 나에겐 여전히 어린아이들이지만, 동생들의 성장을 먼발치서 지켜보고 있자니 감개무량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구 하나라도 자신들의 노력과 고생을 알아주면 좋지 않을까', '내가 동생들의 무리에 속해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집합의 언저리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하고.


  꾸준히 응원의 말만 해주고 싶었는데, 간혹 나는 이 아이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심리와 생각을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하곤 한다. '나도 너희가 걸어온 길을 미리 걸어봤으니 너희가 느꼈을 고통쯤은 내가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 때가 있고, 가끔 그 생각은 언어가 되어 내 입 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말인데도 그렇다. 처음 겪어보는 일들에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얼마나 힘들지를 알아주려다가 그만 선을 넘고 마는 것이다. 나의 그런 면을 발견할 때면 쥐구멍에 숨고 싶을 지경에 이른다.


  다시 정신과 생각을 가다듬고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던 말과 알아주고 싶던 마음을 정리한다. 적당한 상황이 된다면 편지를 쓴다거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는데 나의 아이들은 '요즘'아이들이라 좀 늙은 이 같은 내 감성들이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해서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만 글을 전하려 노력 중이다.


  나는 아끼고 사랑해마지않는 동생들을 위해 동생들이 남에게도 들었을 잔소리는 조금 줄여보고, 감성의 정도를 조금 낮춰 담백하게 격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처럼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나도, 내가 지켜보는 삶들도 조금은 힘든 성장기를 지나 보내고, 언젠간 북적거리며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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