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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Nov 16. 2018

울보 24살

  학원을 그만두고 한 달 정도 공백기가 있었다. 1년은 먹고 놀 작정으로 고향집으로 내려갔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었고 백수생활 한달차부터는 말로 할 수 없이 괴로웠다. 앞으로 무얼 해야 할 지 감도 잡지 못했던 상태라 더 그랬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내 자존감은 하루하루 콩처럼 맷돌에 갈려갔다.


  결국 구직어플을 깔았고 신문을 뒤지다가 4개월 정도 유치원 방과후 활동을 돕는 방문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하는 일이 생겼지만 마음이 마구 편치는 않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시작했다기 보다는 사회에 던져진 뒤 처음 배운 일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던 부분이 컸고, 뭐라도 해야만 자괴감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전한 일이기 때문이다.


  3개월 수습기간동안 새로운 분야의 멘탈이 탈탈 털렸고, 나는 더 비쩍 말라갔다. 일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여전히 집에청소를 한다거나 밥을 해놓는 일은 내 몫이었다. 돈도 안되고 그렇다고 보람이 컸던 것도 아니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세미 백수' 느낌이었다. 그날은 청소를 하고 김치볶음밥이나 해 먹으려던 참이었다.


  난 개인적으로 아빠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참 좋아했는데 그 맛을 내려면 설탕을 꽤 많이 넣어야했다. 그래서 김치를 실컷 썰어두고 설탕을 꺼내 드는데.

.

   내 손엔 병의 뚜껑만 들려있었고 설탕이 담긴 병은 부엌 바닥에 있었다. 부엌 바닥이 하얬다. 염전만큼 하얬다. 절망적이었다. 매번 반도 안되채워져있던 설탕 병이 그날은 또 꽉 차있었다. 한숨을 쉬면서 설탕만큼 가루가 된 멘탈과 설탕을 함께 쓸어 담고, 버리고, 닦았다.


  얼마나 오래 씨름을 했던지 김치는 그새 도마위에서 더 익은 것 같았다. 이제 정말 밥이나 먹어야지, 오늘 쏟을 기력은 다 쏟았다 하면서 프라이팬을 꺼내고 일류식당 주방장에 빙의하려던 찰나. 나는 프라이팬을 굳이 씻고 다시 계란후라이를 하는 수고로움을 덜기위해 밥을 볶기 전에 계란후라이를 먼저 해두자 싶었다.


  냉장고를 열고 계란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후두둑

  냉장고 안에서 뭔가 많은 것들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뜬금없이 문에 달린 계란보관칸이 주저 앉아있었다. 평소에 한 두알 있던 칸에 그날은 계란 한 판이 가득 담겨 있었다. 30알의 계란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 내 멘탈도 산산조각이 났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가루같은 멘탈을 겨우 응축해 쥐고 있었는데 몽땅 부서져 허공에 날아가 버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란 한 판의 가격이 얼마였었나 생각하다가, 계란 값이 많이 올랐는데 하고 생각하다가, 엄마에게 미안해져서 또 엉엉 울어버렸다. 엄마에게 당장 전화를 해서 고해성사를 했다. 계란 한 판을 다 깨먹었다고.


  울면서 전화하는 일이 없던 큰 딸이 엉엉 울며 전화를 하니 적잖이 놀랐을거다. 그러다 계란을 깨먹어서 운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을거다. 그래도 저토록 섧게 우는데 우습다고 마냥 웃지도 못하고 엄마는 그저 괜찮다고만 했다. 엄마는 밥 챙겨먹고 있으라고, 금방 집에 가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게 무려 24살의 내 모습이였다.


  엄마는 그날 저녁 약속이 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계란 30개를 치우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엄마였다. 손에는 급하게 사온 도시락 두 개가 들려있었다. 그 순간 내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참 초라했다. 24살이나 먹고서 설탕 쏟고 계란 엎었다고 질질 짜다니. 부끄럽기도 한데 아직 서글픔이 가시지 않아서 끊임없이 훌쩍거렸다. 엄마는 대충 치웠으면 어서 밥이나 먹자고 했다. 말없이 계란을 담은 봉지를 씽크대 위에 올려두고 엄마와 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엄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은 하고 왔냐, 오늘 엄마는 회사에서 바빠서 죽는 줄 알았다 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기운은 빠졌지만 열심히 대꾸했다. 그러다 엄마가 계란 한 판을 다 깨먹었냐고 했다. 나는 또 힘없이 '응' 했다. 엄마는 그제야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깜짝놀랐잖아! 그게 뭐라고 그렇게 울어."

  "몰라... 너무 서러웠는데 설탕도 한 병을 다 쏟아서 겨우 치웠더니 계란이 뜬금없이 거기서 떨어지잖아."


  엄마는 맘놓고 웃었다. 나도 빨개진 눈으로 덩달아 웃었다. 여전히 훌쩍거리면서. 서럽던 마음은 많이 가셨었다. '고작 계란 한 판 깨먹고 우는 24살짜리' 딸을 위해 한달음에 달려와 준 엄마가 너무 고마웠다. 고마운 것은 무수했지만 그 날은 그게 특히 고마웠다.

  정식 백수 기간 한 달과 세미 백수 기간 네 달간 나는 철저히 외로웠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울었고, 사소한 것에 나락으로 떨어졌고, 티끌만한 것에 힘들었다. 하마터면 최악의 최악으로 남을 뻔 했던 5개월은 하루와 다른 며칠로 겨우 살아남아 아직 내 기억 안에서 삭제되지 않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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