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 Nov 15. 2018

혼자 영화 보기

(feat. 완벽한 타인)

  나는 종종 혼영(혼자 영화보기)을 하는데, 우리 엄마는 이걸 이해하기 시작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난 일상의 거의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는데 우리 엄마는 혼자면 심심하다는 생각 때문에 내가 서점 왔어, 영화 보러 왔어, 카페 왔어하면 지겹지도 않은지 매번 같은 질문을 했다.


"혼자?"

"응"

"혼자 무슨 재미로?"


  그럼 난 '혼자도 재밌어'하고 말았다. 굳이 말하자면 혼자일 때는 재밌다기보단 둘 이상일 때 겪는 팽팽한 감정선이 없으니 고요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혼자 하는 일 중에 영화 보러 가는 일은 날이 조금 추워진 뒤로, 내가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 뒤로는 혼영이 뜸해졌었는데 요 며칠은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렇다고 크게 보고 싶은 영화는 없었다. 그냥 영화관에 가서 고소하고 달콤한 팝콘 향이나 좀 맡다가, 명도 낮은 조명이 있는 영화관의 분위기 속에 있으며 영화를 보고 싶었다. 아무 영화나 상관없었으니까 현재 상영작 중에 예고를 봐서 조금 낯익은 영화를 골라 보기로 했다. 마침 문화의 날도 다가오고 있었다.


  잘 됐다 싶어서 그날만 보고 있었는데, 바쁘게 흐르는 시간에 정신도 못 차리고 바보같이 10월 문화의 날 찬스를 놓쳐버렸다. 혼영을 미뤄야 하나 생각했다. 요즘 영화값은 정말이지 말도 못 하게 비싸다. 가격을 보면 그냥 구매 가격이 좀 떨어졌을 때 스토어에서 다운로드해서 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왠지 그날 고른 영화는 스크린으로 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 이천 원이라는 거금을 꼬박꼬박 모아 온 포인트로 치르고 영화표를 예매했다. 생각보다 좋은 자리를 얻진 못했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추운 날씨였다. 낮에 외출할 때 입었던 어중간한 코트를 벗어던지고 어두컴컴한 거리를 위해 패딩을 꺼내 입고 나섰다. 영화관은 가까워서 들고 갈 짐도 딱히 없었다. 새삼 좋은 위치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나는 홀로 밤에 취하고 팝콘 냄새에 취하고 조명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영화 상영을 기다렸다. 영화를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 심심한 것 같기도 했지만 편하니까 만족했다. 올 해만 몇 번이나 보았던 광고가 끝난 뒤 서서히 조명이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완벽한 타인]. 나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싱숭생숭해졌다. 유해진 분 고유의 개그감에 아주 크게 웃은 부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상당히 먹먹했다. 그리고는 끝내 마음이 텅 비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영이었으니 당연히 주변엔 온통 타인이었다. 애써 구분 짓지 않아도 완벽한 타인 가운데서 나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집까지 가는 길에는 시선은 아무 데나 놓고 머릿속에서 혼잣말로 떠들었다. '나조차도 나를 속이는데 타인이 나를 속이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을까', '석호(조진웅 분) 같은 남편을 만날 수 있을까', '투명한 관계가 있기는 할까', '그 부분 연출은 좀 억지스럽긴 했지', '게임을 제안한 사람이 가장 타격이 적다니 비현실적이야' 같은 말들. 시끄럽게 홀로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집이었다.


  각자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며 시끌벅적하지만 끝내 쓸쓸하다가 다소 불편한 다행감을 주는 영화였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이런 문구를 띄우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사람은 누구나 세 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하나.

개인의 하나.

그리고 비밀의 하나.



  감명받았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한참을 떠올리고 곱씹었다. 꽤 오래 놓쳤던 것을 깨달은 기분이었다. 타인에게도 솔직하겠다며 세 개의 삶을 다 보여주려 애썼던 내가 바보 같았고, 타인이 나에게 사적인 하나 혹은 비밀의 하나를 보여주지 않았음에 서운해했던 과거의 나를 질책했다. 아주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타인과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처럼 굴었던 나에게도 바보 같았다고 말해주었다.


  마음이 가벼웠다. 영화를 보고 하루 밤을 채웠던 감상을 금세 잊어버리고 말겠지만 과하게 정서적이어서 상처 받는 일은 조금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며칠 후에 나는 그게 오만한 각오였다는 걸 깨달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조금 취득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시간이 된다면, 영화를 한 번 더 볼까 생각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픔을 다스리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