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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Nov 23. 2018

초딩은 힘들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초등 입시학원에 취직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가르치는 일이 주 업무였다. 9개월 남짓 근무했었지만 살로 느끼는 아이들의 현실은 생각보다 내가 감당하고 그저 무시해버리기엔 버거웠다. 진작부터 현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일상부터 치열하다는 걸 짐작은 했지만, 몸으로 느낀 그 고됨은 상상을 초월했다. 처음 학원에서 아이들 개개인의 일상을 들을 땐, 내가 너무 촌에서 자랐나? 혹은 내가 공부를 너무 안 하면서 초등학교를 다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던 꼬꼬마 시절에 비해 지금은 더 치열해진 경쟁적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가니까, 부모도 거기에 맞춰 아이들을 혹사시킬 수밖에 없는 점은 이해한다―기 보다는 하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다른 애들이 다 이만큼 한다니까 우리 애는 흐름에 따라가지 못할 봐 불안해서 무언가를 시킨다는 입장이 다수이다.


  나는 아이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고 실천하게 하는지 알겠으나 고작 초등학교 시험에서 한 문제 틀려서 올백을 못 맞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못살게 구는 게 옳은 방향인가 싶다. 우리 한 번 시계를 저기 끝쯤으로 돌려 꼬꼬마 시절을 돌이켜 보자. 앞으로의 진학에 있어서 초등학교 시험 올백이 큰 메리트가 있나? 그게 당장 중학교 진학에 있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고작 한 문제 틀렸다고 아이의 인생이 큰 방향으로 틀어지지는 않는다.


  내가 겪은 부모들은 5점짜리 한 문제에 연연했다. 마치 그 한 문제 때문에 중대한 승진 시험에 낙방한 것처럼. 학원에 전화해서 따지고, 아이를 혼내고, 문제집을 들이대고, 인터넷 강의까지 수강시켰다. 정작 본인들은 지난 1년간 해보지 않았을 양의 공부일 테다.


  지금 초등학생들은 공부도 잘해야 하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야 한다. 저렇게 시험기간에 머리가 아프도록 혹사당하고 나면 이젠 몸이 혹사당한다. 짤막한 손가락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피아노를 쳐야 하고, 수영을 배우고 인라인도 배워야 한다. 좋아하지 않아도 배워야 한다.


  과하다. 정말. 그 나이에 펭귄같이 작은 몸으로 감당하기엔 부모가 강제로 들이민 업이 과하다. 도대체 얼마나 훌륭한 인재로 키우려고 아이를 그다지도 혹사를 시킬까. 지금 소수―일지 다수일지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좋은 환경을 제공해줬으니 너는 잠자코 따르라고.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건 분명 그 아이의 미래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적당히 짐을 덜어주어야 진짜 좋은 환경이 아닌가.


  내가 가르쳤던 고작 7살에서 9살 먹은 애기들이, 나도 지겨울 것 같은 생활에 찌든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조그만 몸으로 뛰어놀 시간에 학원에 틀어박힌다. 그 생활이 적어도 19살까지 지속될 테다.


  아이들은 이미 힘들다. 태어나 숨도 쉬어야 하고 걸어야 하고 뛰어야 하고 느껴야 한다. 짧은 전성기가 지나고 나면 이 세상에서 이제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하고, 시련을 겪어야 하고, 따로 손쓰지 않아도 자기만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 돈을 벌어야 한다. 감정노동과 체력적 노동을 8살 학교 입학부터 시킬 필요는 없지 않나.


  내가 부모가 아니고, 부모인 입장이 아니며 아직은 자식의 입장이기 때문에 이 나라 부모님들께 어떻게 해달라 강력히 촉구할 수는 없다. 주제넘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린다면, 텅 빈 놀이터와 해맑고 발랄하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골목과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자기 몸 만한 가방을 들춰업고 집으로 들어오는 작은 아이를 잘 살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언가 작은 생각이라도 좋으니 깨닫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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