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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Jun 04. 2021

스물 아홉, 여름

 조금 늦은 시간에 편지를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습니다. 비가 그치더니 제법 쌀쌀한 밤이 찾아왔네요. 이러다 곧 한여름이 찾아오겠지요.


 당신께서는 여름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살이 에는 추위에 몸을 움츠리는 겨울보다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단장할 수 있는 여름을 좋아합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보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여름 장마철을 좋아해요. 따가운 햇볕에 살이 타는지도 모르고 놀다 다리에 화상을 입어 피부과를 가는 일도 더러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름을 좋아합니다. 화려한 봄이 가고 찾아온 청량함이 좋습니다. 어쩌면 제 나이가 여름에 접어들 쯤이라 더욱 여름을 사랑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품어둔 씨앗을 싹 틔우는 10대와 20대를 지나 30대로 접어드는 시기. 친구들은 서른에 다다랐지만, 저는 빠른 년생을 따지던 때에 태어난지라 친구들과 1년 늦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른인 척하면서 스물아홉인 척도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스물아홉을 계절로 따지면 늦봄쯤 되었을까요. 여름을 앞두고 있는 기분입니다. 봄이 마음을 간지럽히는 힘이 있다면, 여름은 힘차게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름은 봄에 힘껏 꽃을 피워낸 뒤에 가지는 쉼이자 또 다른 계절로 넘어가기 위한 힘찬 발돋움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여름의 나이에 접어들면 제법 멋있는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습니다. 문제도 척척 해결하고, 감정에 의연하며 당당함에 어깨를 펴고 다니면서 미래로 가는 길목에서도 바람을 타고 순항하며 살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몸만 어른인 어린 사람에 머물러 있습니다. 마음도 단단해지지가 않더군요. 어른은 어떻게 될 수 있는 걸까요?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타적인 사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문제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사람. 이야기하고 보니 어른은 만능이어야 하는군요.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고 있던 어른은 어른의 참뜻이 아닌 모양입니다. 이럴 때는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하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후한 기준인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만, 그렇게 따져도 저는 어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몸은 다 자랐지만 아직도 닥친 문제에 휘둘리고 있고, 타인의 도움에 목말라하고 있으니까요. 책임을 진다는 것은 참 무거운 일입니다. 햇볕에 살갗을 데어도 스스로 치료하러 다녀야 하고, 휴가를 가던 중에 짐을 잃어버려도 스스로 책임지고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해요. 간단한 일이지만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일은 몸도 마음도 분명 무겁습니다. 그럼에도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은 어떤 마음에서 일까요.


 전에 이야기했듯이 저는 좋은 마지막을 위해 좋은 일상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은 좋은 계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인 듯합니다. 설령 짊어져야 할 것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나가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어릴 적 위인전을 읽고 독후감상문에 적어내던 상투적인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좋은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작은 꿈들 중에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렇게 되고 싶어요. 잘 해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정말 여름입니다. 제 인생에도 여름이 찾아오고 있어요. 누구보다 행복하게 스물아홉의 해를 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활기차게 여름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인생을 가꾸고 싶은 마음입니다. 변덕스러운 마음에 적응하기가 힘들지만 이렇게 힘이 나는 날은 웅크렸던 몸을 조금 펴고, 고개를 들어 세상의 공기를 맡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문득 당신의 여름이 궁금해집니다. 당신께서 지금 어떤 계절을 살고 계시던 봄과 여름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을과 겨울은 잔잔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밤낮의 온도차가 큰 날씨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밤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저는 내일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21. 06. 04. 금.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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