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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Jun 05. 2021

평가

 한적한 토요일입니다. 늦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늦잠을 자는 것 마저도 한심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평가에서 자유로워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인생의 대부분을 평가에 얽매여 살아온 것 같습니다. 제 우울의 출처도 대부분 평가에 대한 부담감에 있습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누군가 저에게 끊임없이 무어라 나무라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칭찬에 매달려왔던 아이가 평가에 목메는, 몸만 큰 어른으로 커버렸습니다. 평가에 마음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지금보다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롭던 때, 편지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말자고.


 그날의 편지글을 받아본 당신께는 참 죄송할 따름입니다. 저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에 결국 성공하지 못했거든요. 여전히 보이지 않는 평가들 사이에 묻혀 홀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느슨해지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조금 열심히 살더라도 눈 앞에 즉각적인 결과가 주어지지 않으면 헛된 일을 한 것이라고 자책하고는 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완벽주의자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그 속에는 완벽을 추구하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조금 듣기 좋게 표현하자면 더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울감에 젖어있을 때 제가 생각하는 저는 그저 게으른 사람일 뿐입니다. 과거에 무엇을 해냈었는지, 지금 무엇을 해내고 있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면서 지냅니다.


 지난주, 정신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 이런 점을 이야기했더니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괴롭히지 말아요."

 그래서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게 마음대로 안되니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차마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지는 못하고 하하, 하고 웃으며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말이 영 효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 말을 들은 뒤로 자주 '사람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고 나는 내 기준에 맞춰 살면 된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문제는 제 기준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제가 할 일이 생겼네요. 저만의 기준을 만드는 것. 다른 것보다 저만의 기준을 세우는 일에 정진해야겠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좌절하겠지만 자주 개인적인 기준에 대해 복기하며 힘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겠지요? 29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불가능에 연연하지 않고 방향을 틀어 불가능보다는 더 나은 길로 나아가보겠습니다. 당신께 주절주절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들이 정리되어 좋은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읽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직 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저는 내일 또 편지하겠습니다.


21. 06. 05. 흙.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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