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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Nov 02. 2018

자기소개

  나에 대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를 모르는 사람 말고. 나를 대충 아는 사람 말고.

  나를 알고 있지만 전부는 모르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서 나를 항상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자세하고 꼼꼼하게 알아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나를 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부담스러울 만큼. 나도 내가 자랑스럽긴 하다.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끄럽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때론 부끄럽다.


  엄마는 나를 투명하게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불투명하게 좋은 점만 본다면 괜찮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올해 추석, 경주로 여행 가는 차 안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내 애를 낳으면 너무 나처럼 클까 봐 무서워. 그렇다고 너무 나처럼 크지 않으면 그건 그거대로 무섭고."

 "너처럼만 크면 잘 키운 거야."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너처럼만 크면 잘 큰 거지. 좋은 사람인 거야."

 "엄마도 어디 가면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에요'할 사람이네."

 "그렇지, 내 딸은 그럴 애가 아니니까."

 나는 또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엄마의 말에 자랑스러웠고, 또 부끄러웠다.


  엄마는 나의 일부분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나 내가 독립한 후로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대학교 안에서 어떤 사람인지, 내가 매일 울면서 다녔던 학원에서는 어떤 선생님이었는지, 내가 다른 회사에 와서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고 연인을 만날 때는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토록 단호하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어도 내가 엄마에게만큼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엄마가 나에 대해 모르는 부분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최대한 투명하게 나를 알았으면 했다.


  마치 '이래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묻는 것처럼 엄마에게 끊임없이 자기소개를 한다. 종종 내 신상정보나 이력에 새로운 소식이 등록되면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하거나 만났을 때 쏟아놓는다. 나는 이미 엄마의 딸로 채용이 된 상태인데도 그렇다. 아마도 내가 가장 신임받고 싶어하는 사람이고, 나를 가장 믿어주는 사람이라 그런 걸 지도 모른다. 이런 못난 것도 다 괜찮다고 해 줄 사람이라서.


  다행히 엄마는 말 많은 나를 외면하지 않았고 과한 정보도 흘려듣지 않았다. 아, 그렇다고 들은 모든 것을 오래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또 얘기하면 되니까.


  예상했겠지만 난 지인에 한정되지만 내 정보를 흘리는 일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건 포근한 집이 있는 기분이다. 적어도 나만큼 나를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언제든 긴 서두 필요 없이 나의 상태를 알려줄 수 있다.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풀어내면서 상대에게 바라는 대답은 사실 한 가지다. 답은 정해져 있고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그걸 말하면 되는 일방적 구조다.


  "그래도 너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야."


  목적도 하나다. 내가 이렇게 못났는데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야? 하고 묻고 싶은 것이다. 난 이 사심 가득한 목표 달성을 위해 부끄러운 생각이라 드러내진 않지만 내뱉고 싶을 때, 내가 뭔가를 이루어내고는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어 죽겠을 때, 내 못난 점이 너무 싫을 때는 엄마나 동생이나 이모나 숙모에게 아니면 내가 아끼고 아끼는 친구에게 찾아간다. 그들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준다. 그래서 더 좋아한다. 착각이래도 좋다. 나는 그들을 등에 업고서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키우며 산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날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주니까, 나는 아주는 아니라도 꽤 괜찮은 사람일 거라 믿고 있다.


  부족하고 못난 점이 덕지덕지 묻은 나지만 그래도 나를 보는 타인은 내가 보석이라고 이야기해 주길 바라고 있다. 이런 욕심 가득한 부분도 내 못난 점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조금 솔직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매번 지인에게만 하던 자기소개 일부를 주절주절 써보았는데, 이 글을 올려두고는 언젠가 불현듯 떠올라 이불을 빵빵 차다가 결국 이 글을 삭제할까 고민하는 나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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