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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Nov 08. 2018

함께 먹는 시간

  늦은 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불은 다 끄고 스탠드만 켠 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어떤 나이 든 이의 삶을 담은 영상을 보았는데 괜히 내가 서글펐다. 영상 속 삶의 주인은 행복하다 하는데 내가 괜히 허했다. 과한 감정이입이었다. 밖은 어둡고, 달은 구름에 가려 희미한 밤이라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서 그랬던 거라 생각했는데, 밤이 지나가도 여전히 난 노년에 접어든 인생의 얼굴들을 보면 슬픔이 느껴진다.


  왜 무르익고, 오랜 시간을 먹은 만물들은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나를 눈물짓게 할까. 나보다 훨씬 빨리 시간을 먹기 시작한 삶의 얼굴들은 대개 슬픈 마음을 불러냈다. 저들도 나와 비슷한 청춘을 지나왔겠지, 어쩌면 나보다 고생스러운 삶이었겠지,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까 하는 백만 평쯤 되는 오지랖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내 곁을 지켜주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겨울이 온 장면과 이미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삶을 떠올린다.


  늙은 삶의 얼굴들엔 구석구석 주름이 자리 잡고 있다. 볼과 관자놀이쯤엔 청춘의 주근깨처럼 잔잔하지만 검은 세월의 흔적들이 나타나 있다. 손마디마다 새겨진 잔주름과 서리가 내려앉은 짧은 머리카락들. 모든 변화들이 온몸으로 세월을 받아낸 흔적인 것 같기도 하고 남들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고생한 세월이 이제는 더 이상 품속에 숨기지 못해서 몸 밖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 슬프다. 인생의 겨울쯤이면 살아간 시간만큼 숱한 이별을 겪은 삶이겠구나 싶어 또 마음이 저릿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초겨울의 날씨 속에서 길을 걷다 보면 또다시 겨울의 사람들이 보인다. 이슬이 어는 새벽에 파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과 공원에 홀연히 앉아 공터를 뛰노는 아이를 바라만 보는 노인과 서늘한 계절도 모른 채 얄팍한 옷만 한 벌 걸친 노인. 그들이 젊음을 건너 노년으로 도달한 과정들이 눈에 보이지 않아 괜히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네들이 파랗던 시절에 강했던 그렇지 않았던 상관없이 지금의 모습에 내 마음이 엷어진다.


  이제 막 옷깃 한 번 스친 삶에게서도 이토록 아픔을 느끼는데, 나는 이제 나의 나이 듦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나이 듦은 어떻게 감당할까 걱정이다. 쓰리도록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그네들의 삶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걱정이다. 부디 주름은 늘더라도 약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여유롭고 강하게. 소나무 같지는 않더라도 고생한 만큼, 슬펐던 만큼 행복으로 꾸려진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 함께 사이좋게 시간을 나눠먹으며 아름다운 어른으로 나이 들고, 두텁한 인생이 얇은 시간들에 거르고 걸러져 결국엔 웃음만 남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왕이면 두고두고 꺼내볼 강렬한 추억을 꼭 품고 있었으면 좋겠다. 없다면 지금이라도 열심히 만들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현재를 살고 미래를 바라보지만 결국 과거의 추억을 먹고 사니까, 미래의 과거가 될 현재를 한 아름쯤 차곡차곡 보관해 두었으면 좋겠다. 한 명도 빠지지 말고 시간을 나누어 먹으며 함께 겨울을 맞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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