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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Dec 07. 2018

엄마, 엄마.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몇 개월 전부터 감명 깊게 읽고 있는 수필이 있다. 올해부터 연재를 시작해서 독립출판까지 이룩해낸 이슬아 작가의 글이다. 각종 팟캐스트, 출판사 등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그녀는 나를 에세이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사실 브런치에 연재할 장르를 에세이로 정한 것도 그녀의 덕이 컸다.


  하루하루 읽으면서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우와, 어떻게 이런 걸 이렇게 느꼈을까. 그녀의 수필은 보는 내내 그저 감탄의 연속이었다. 내가 모든 예술 분야에 있어서 쉽게 감상에 젖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이 수필집은 '나는 왜 그녀와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많은 이야기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그녀의 엄마인 복희의 이야기와 하마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수필에서 그녀의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복희'로 등장한다. 여기서 난 또 감명받았다. 나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엄마가 아닌 한 사람 자체로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감동이었다. 나에게 엄마는 너무도 당연히 엄마였기 때문에.


  수필집을 읽는 와중에 티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마마무의 화사가 아버지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서 정말 그런 가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관련 게시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 그런 가정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옥수라 부르는 걸 어떻게 생각할까? 엄마는 꽤 오랫동안 옥수가 아닌 아름이 엄마로 반평생을 살아와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어색할 테고, 나는 엄마의 삶 속에선 아름이보단 큰딸, 큰 강아지로 살아왔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에게는 옥수와 아름이로 나란히 서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현실에서 불가능하니까 상상에서나 우리 둘을 나란히 세워보았다. 옥수는 어떤 사람이고, 아름이는 어떤 사람이며 옥수와 아름이가 만난 뒤로는 서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둘의 주변엔 현규도 있었고 연지도 있고 명희와 덕열이와 정영이와 진희도 있다. 그 가지들을 따라 더 많은 이들이 둘을 에워싸고 있으나 거기까지 생각하기엔 밤이 짧아 나는 옥수와 아름이만 두고 생각했다.


  옥수와 아름이는 닮은 점이 참 많다. 가장 가까운 핏줄이라 그럴 만도 하지만 형제 중 첫째라는 점과 애살스럽지 못한 점이 특히 많이 닮았다. 간질간질한 로맨스를 좋아하는 부분과 꽤 고달픈 삶의 어떤 부분에서 애써 초연하려는 부분도 그렇다. 꾹꾹 눌러 참다가 한 번에 속수무책으로 이기지도 못할 만큼 눈물을 흘리는 부분도 그렇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점은 또 운명적으로 닮았다.


  다른 점도 닮은 점 만큼 존재한다. 첫째의 삶을 당연하게 살아온 옥수는 아름이에게도 은연중에 아름이도 본인 같은 첫째로 크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첫째인 게 싫은 아름이는 서운한 점이 많았다. 둘은 지표에 드러나는 것만 보아도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의 인생을 서로 터놓으면서 아름이는 옥수를 이해했고 옥수는 아름이를 보듬었다. 모녀지간의 자리를 바꾸어 앉아도 우리는 그렇게 합을 맞출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엄마와 혹은 아빠와 얼마나 닮아 있을까. 일간 이슬아를 읽으며 나는 꽤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모녀관계로만 한정지 었던 관계를 사람 대 사람으로 볼 수 있었던 시선을 선물 받았고, 나는 여전히 그녀와 친구가 되어 그녀의 글을 가까이서 보는 상상을 한다. 그녀가 선물한 시선으로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제는 예쁜 할머니가 꿈이라는 엄마의 삶을 내가 조금 더 잘 다듬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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