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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Dec 06. 2018

나의 이름은

  나는 내 이름을 지독하게도 싫어할 때가 있었다. '아름'이라는 이름은 내 나이 또래에선 조금 흔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흔하게 묻어갈 수 있었는데 하필 성씨가 강이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탯줄과 함께 달고나 오기라도 한 듯 내 별명은 꽤 오랫동안 강아지였다. 뭐, 드물게 '강강술래'라던지 '강시'같은 별명도 있었지만 '강아지'만큼 자극적이지 않아서 아이들은 대부분 나를 '강아지', '아지'하고 불렀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별명이 거의 애칭쯤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날은 초등학교 5학년 가을운동회였다. 웬 축하공연을 한다며 조련사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셰퍼드를 데리고 나와 운동장을 빙빙 돌고 셰퍼드가 재주를 넘도록 지휘했다. 나는 신나게 박수까지 치며 셰퍼드가 아저씨 씨의 말에 따라 장애물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밉상 맞은 남자애 하나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야! 네 친구네!"

 "뭐?"

 "강아지, 네 친구잖아! 인사해줘야지!"


  그 말에 친구들은 까르르 웃었다. 부끄러웠다. 구두를 신고 왔다가 학부모 계주에 출전해 달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내 운동화를 어설프게 신고 출발선으로 달려 나가던 엄마를 보고 '우리 엄마 달리기 못하는데'하고 생각하며 부끄러웠던 마음보다 더 참혹했다. 내가 강아지라고?


  아마 나는 그때 속으로 뜻을 알지도 못하는 욕을 씨부렸던 것 같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런 기분과 상관없이 나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별명이 강아지였다.


  중학생쯤 되자 강아지라 부르는 애들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난 내 이름이 싫었다. 나를 왜 아름이라는 이름으로 지은 거야? 이름 때문에 애들이 나는 아름답지 않다는 걸 너무 알아버리잖아! 왜 또 하필 성씨는 강인 거야? 강감찬의 후손이 다 무슨 소용이람? 내가 장군도 아닌데. 애들은 강 씨 집안에 강감찬이 얼마큼 영향력 있는 조상님인지 요만큼의 관심도 없다고. 그렇게 격정적으로 사이가 나빴던 내 이름과 나는 만난 지 19년쯤은 되어서야 조금 친해졌다.


  큰 계기는 없었다. 일방적인 미움에 지쳤던 건지도. 그러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불리고, 그 마음들을 느끼면서 난 내 이름이 좋아졌다. 얄밉게 내 이름을 멋대로 바꿔 불러도 내 이름이 동글동글해 보였고, 내 성만 불러도 석 자를 모두 부른 것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어릴 때 좋아했던 장나라의 노래 'sweet dream'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너무 흔해서 나조차도 싫어했었던 내 이름도 
  왠지 그대가 불러주면 예쁘게만 느껴지네요 


  초등학생 때 정말 자주 듣던 노래였는데, 나는 저게 무슨 기분인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짝사랑하던 남자애가 내 이름을 불러도 내 이름이 예쁘게 느껴진 적은 없었는데. 스물을 넘어서야 강아름은 저 노랫말이 가진 분위기와 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새삼 내 이름을 곱씹으며 느꼈다. 내 이름은 아름다운 강이라는 뜻을 가진 것 같기도 하고, 아름드리나무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내 존재 자체를 빛내는 단어 같기도 하다는 걸.


  올해 한글날에는 한글 이름으로 할인을 받아 영화를 보기도 했다. 내가 지은 이름도 아니지만 괜스레 뿌듯했다. 요즘 내 이름 석자는 쓸 때도 왠지 기분이 좋다. 기역에서 모음 ㅏ로 넘어가는 느낌과 이응 받침으로 한 글자를 완성하고 다시 이응을 쓰는 느낌, 리을 다음에 모음 ㅡ를 쓴 뒤 미음으로 마무리 짓는 느낌도 좋아한다.


  어디에 또 내 이름 석자를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난 되도록이면 최선을 다해 예쁘게 써 볼 테고, 누가 또 내 이름 석자를 혹은 두자를 어떻게 불러줄지 모르겠지만 난 되도록이면 그 부름에 예쁘게 웃어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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