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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Dec 13. 2018

난 거짓말 못해

  나는 거짓말 레벨이 높지 않다. 도덕적이고 양심적이라기보다는 몸이 너무 티를 내는 유형이라 그렇다. 그게 부끄러워서. 어릴 적 무엇에 홀린 듯 도둑질을 한 적이 있다. 감히 합리화하자면 세상에 태어난 아이라면 엄마에게 잔소리와 훈육의 기회를 주어야 하니까 본능적으로 이끌렸던 것 같다.


  엄마 지갑에서 만원을 빼 내 꼬질꼬질한 흰색 바탕에 꽃무늬가 그려진 동전지갑에 넣었다. 엄마는 그걸 알아차렸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엄마가 자는 줄 알고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서 엄마 가방으로 다가갔을 때부터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가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눈치라고는 1도 없는 꼬꼬마라서.


  용감한 꼬꼬마는 첫 도둑질에 양심의 가책과 함께 성공했다는 뿌듯함에 작은 심장이 마구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이미 얼굴은 상기되어있었고 동공 지진은 부가 옵션이었다) 현관에서 신발끈을 동여매고 엄마, 다녀올게! 했다. 엄마는 응~하고 대답하고는 곧바로 아름아. 하고 불렀다. 나는 또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 응?

  엄마가 말했다. 이따가 다녀와서 엄마랑 얘기 좀 하자.

  눈치 없는 꼬꼬마였지만 그래도 또래 중에서는 분위기를 읽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나는 느꼈다. 아, 엄마가 눈치챘다. 망했다. 나는 큰일 났다.


  이후에 나는 엄마가 '너 와서 이야기 좀 하자'는 말을 제일 싫어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시한부를 사는 기분이었다. 어떤 협박보다 무섭고 오금이 저렸다. 차라리 빨리 집에 들어가서 혼나거나 아예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용감한 꼬꼬마는 열심히 놀기 위해 열심히 거짓말을 해댔다. 피아노 학원에 가기 싫어서, 혹은 용돈을 더 받고 싶어서,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거짓말하려고 노력했지만 하는 족족 들통이 났고 심하게 혼났던 적도 있었다.


  결국 나는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노선을 틀어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노력을 쏟았다. 아마 어느 날 거짓말을 했을 때 내 표정과 몸의 변화를 인지했기 때문일 거다. 얼굴은 사과껍질만큼 빨개지고 눈빛은 불안정하게 이곳저곳을 오가고 쓸데없는 부가설명을 마구 붙여댔다. 그 모습을 내 감각으로 느껴보니 부끄러웠다. 그래서 거짓말을 그만두기로 했다.


  교복을 6년 입고, 다시 사복을 입고서 대학생이 된 다음 이젠 캐주얼함의 끝판왕을 달리는 일하는 어른이 되어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조금 더 살다 보니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사회에서 멀쩡한 척을 할 수 없었다. 연인과의 관계도 평화롭게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솔직하기로 했는데 그럼에도 내 솔직함의 정도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서 융통성이 없었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거짓말 레벨은 조금 높아진 것 같긴 하다. 사소한 거짓말 정도는 가능하다. 예를 들면 지나간 애인에게 야식을 먹고 있으면서 이제 자려고 누웠다고 말했던 거짓말 같은 거. 이제 막 옷을 껴입고 있으면서 지금 출발했다고 말하는 거. 그런 건 이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레벨은 된 것 같다. 심지어는 고소한 계란 간장밥 한 숟갈에 무말랭이 하나를 얹고서 한입에 왕 넣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 이제 자려고' 하는데 무의식 중에 나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행히 세상은 그 정도 거짓말은 귀엽게 봐주는 것 같았다. 거짓말은 단발적으로 튀어나오지만 한 번 거짓말에 가지를 치기 시작하면 여간 똑똑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반드시 들키기 마련이다. 나는 학생 신분으로 총 16년을 살았지만 현명하고 똑똑하지 못해서 가지를 엄청 뻗어내는 거짓말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릴 때처럼 못하는 게 아니고 이제는 안 하는 거라고 정확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못'과 '안'의 차이는 꽤 크니까.


  할 줄 아는 거짓말이라고는 야식 먹는 걸 숨긴다던지 아프지 않은데 아파서 학원에 못 간다고 한다던지, 그런 것 밖에 못하는 내가 타인 사이에서 파묻혀있으면서 살아남아있는 게 장하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한 게 내 장점 중에 하나라고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력서에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무리한 생각도 해본다. 다만 과하게 솔직한 것은 좀 자제해야겠다. 하얀 거짓말이라면 그래도 세상은 용서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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