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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Dec 14. 2018

존재함의 감각

  요즘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방에 불을 모두 소등한다. 크게 하는 일도 없고 회사 일이 바쁜 것도 아닌데 할 건 왜 그렇게 많은지 눈 깜짝할 새 깊은 밤이 되어버린다. 그리고는 사계절 중에 세 계절은 건조함에 치를 떠는 내 기관지를 위해 가습기에 물을 가득 채운 뒤 머리맡에 스탠드를 켠다.


  대충 정리한 하루를 일기장에 쓰고 머리맡에 손을 뻗어 책을 고른다. 책장이 있는 침대를 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겸사겸사 한다. 살아있으니 이런 침대도 가져보는구나. 책을 들고 책장을 넘기다 보면 방음 따위는 무시하고 겉모양만 건물같이 쌓은, 레고 같은 원룸 한 칸의 사방에서 온갖 소리가 들려온다.


  어제는 위층 사람이 씻으려는지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플라스틱 청소기 헤드가 바닥을 지나가는 거친 소리가 들린다. 소음이 들릴 때면 내 머릿속은 작은 책에서 내가 사는 원룸 건물로 화면을 이동시킨다.

  줌 아웃해서 책을 읽다가 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나를 한 번 보고, 이젠 창밖으로 화면을 옮겨 내 방과 내 윗 방을 한 컷에 잡는다. 위층엔 여자가 사는지 남자가 사는지도 모르지만 누구든 청소기를 들고 열심히 바닥을 훑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 멀리 화면을 옮겨 건물 전체를 한 번 살핀다.


  마치 한 장면의 드라마같이. 날씨가 춥다고 느껴지면 내가 사는 방으로 다시 줌인한다. 심하지 않은 층간소음, 벽간 소음이 나고 나는 바쁘게 머릿속 화면을 빙빙 돌릴 때, 우습게도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세상에서 한국에서 이 동네에서 이 건물에서 내게 주어진 공간과 공기가 있다는 것에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컴퓨터 앞에 앉아 무의미한 웹서핑을 하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두 가지 일을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라 눈으로 컴퓨터 화면 보는 것을 그만두고 엄마와의 대화를 위해 귀만 열어두려고 자연스럽게 침대에 드러누워 전화를 받았다.


  간단한 안부와 주말 계획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 후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고도 나는 한참을 침대에 누워있었다. 마약 같은 침대. 사지가 침대에 붙은 것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서, 가끔 등이 배길 때는 옆으로 돌아누우면서 늘 그랬듯 잡생각에 휘말린 채 시선을 멍하게 풀고 있었다. 시각이 일을 멈추자 다시 청각이 일하기 시작했다. 켜져 있던 컴퓨터 본체의 소리가 들리고 누워있으면 늘 들리는 콩콩콩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감각들이 사소한 것에 반응한다는 게, 그 소리들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게 신기했다. 


  나의 숨소리와 내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열개의 손가락과 발가락들 보다 그런 것들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혹은 갑자기 내리는 가랑비가 내 몸에 닿아 차가움을 느낄 때, 따뜻한 공기 속에 간간이 부는 차가운 바람을 느낄 때. 대단한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은 것도 아니고, 굉장한 업적을 달성한 것이 아니고, 타인이 내는 소리와 내가 존재하는 공간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 주로 그랬다.


    아주 드물지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밤이면 조용한 방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내가 들이쉬는 숨, 내쉬는 숨의 소리를 듣는다. 내 숨소리는 꽤 규칙적이다. 간혹 소화기관이 운동하는 소리가 끼어들었고 꽁꽁 닫아둔 창문을 기어코 넘어오는 바람 소리도 들린다. 내가 키우는 햄스터가 자기 집 바닥에 깔린 얇은 종이들을 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이런 소리들은 내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증거다. 한껏 예민해져서 모가 나 있을 땐 이런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다.


  고로 난 요즘 나의 생존 사실과 안온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으니 편안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슬퍼도 힘들어도 결국 이런 때가 오긴 온다는 것이 신기하다가 또 막상 좋을 때는 좋은 것을 모르니까 그런 모습이 간사하다. 언제 또 시련이 닥칠지는 모르겠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째깍거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도 거슬렸던 나였다. 걱정이 꼬리를 물던 그때는 사실 꿈이었던 것처럼 지금은 고요하다. 그러니까 언제 또 그런 구간이 찾아올지 모르니까 오늘 또 열심히 고요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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