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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Dec 27. 2018

자면서 울고 웃기

   나는 평소에도 종종 마음이 조급 해지는 유형의 사람이다. 끊임없이 이너 피스를 외치고 마인드 컨트롤이며 호흡법까지 총동원해서 가능한 차분하려고 노력한다. 허둥대는 내 모습이 나는 퍽 우습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차분한 게 본모습이 아닌지라 수십 개의 방법을 동원해 진정하다가도 어느 한 곳에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면 눈감고 하던 일도 벌벌 떨어가며 한다.


   그리고 때로는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난 학창 시절에 공부는 정말 젬병이었다. 마음이 급하고 외웠던 것은 또 까먹을 것 같으니 이 과목 저 과목 진득하게 해내질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약간 그렇다. 아침에 상사가 시켰던 일과 오늘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써야 할 글을 수도 없이 오가며 찔끔찔끔하기도 한다. 다행히 나이를 아주 허투루 먹은 건 아닌지 회사에서는 곧잘 다시 방향을 잡고 있다.


   급한 성격 탓에 이것저것 기웃대는 나는 자면서도 아주 바쁘다. 주원인은 감정선이 격한 꿈을 꾸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한 때 아주 빈번하게 자면서 울거나 웃었다. 아주 많은 울다가 혹은 웃다가 잠에서 깼던 날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날들이 있다. 하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며 깼을 때, 하나는 소리 내어 웃다가 깼을 때다.


   누군가 꿈에서 죽는 꿈은 많이 꾸었다. 워낙 많이 꾸는 꿈이라 슬프다는 마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눈물이 날만큼 마음이 아픈 적은 없었다. 당연했다. 꿈이니까. 그냥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아이고 우리 할머니 혹은 엄마 혹은 이모 오래 살겠네 하고 좋게 해석하고 넘겼다. 꿈이니까.


   그날은 꿈같지 않았다. 정말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 같았다. 배경은 아주 익숙한 우리 집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이제 엄마가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는 것. 장례식 장면도 없었고 엄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을 느꼈던 나는 집 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는 '엄마?'하고 불렀다. 그리고는 '아, 엄마 없지. 이제 안 오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심장은 찬 공기를 그대로 받아낸 것처럼 시렸다. 정말 사실인 양 마음이 미어지고 찢어지고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그 장면에 멈춰 서서 나는 꿈속에서 한참을 울었다.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다리도 못 가눈 채 울기만 했다. 그리고 너무 슬퍼서, 정말 감당할 수 없어서 잠에서 깼다.


   눈물이 눈가에 그득했고 나는 꿈과 현실 중간쯤에 있는 듯이 아직 입은 흐느끼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꿈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누구를 잃는다는 느낌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던 그 꿈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크게 울었던 꿈이다.


   가장 크게 웃으며 꾸었던 꿈은 사실 별 것 없었다. 한창 애들이 많이 탔던 트램펄린(지역마다 이름이 달랐다-방방, 봉봉, 퐁퐁 등)을 탔던 것 같은 데 누구와 놀고 있었는지, 어느 지역이었는지도 기억나질 않는다. 어쨌든 아주 별거 없는 꿈이었는데 너무 즐거웠다. 너무 웃겨서 꺄르륵 웃는데 그 웃음이 꿈꾸는 내 입 밖으로 삐져나가 버렸었다. 몸이 당황했는지 나는 황급히 누가 깨운 것처럼 꿈에서 깨어났다.


   울면서 잠에서 깼던 것처럼 '흐흐흐' 하고 웃으며 잠에서 깼다. 울었던 날과 다른 게 있다면 엄마와 동생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둘이 같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내가 눈을 뜨자 둘의 눈과 바로 마주쳤다. 

  "뭐가 그렇게 좋아?"

엄마가 깔깔 웃으며 물었다. 그맘때 일어난 일중에 가장 부끄러웠다. 동시에 꿈에서 그렇게 즐거웠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누가 꿈밖에 있는 자신이 웃을 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꿈을 자주 꾸겠어.


   나는 그렇지 않아도 눈물과 웃음이 헤펐는데 꿈에서까지 그러니 나는 어쩔 수 없는 팔푼이였다. 내가 손쓸 수 없는 스트레스가 지금보다 더 끊임없던 때라 몸이 일종의 부작용을 겪었던 것 같지만 꽤 즐거운 기억이다. 엄마와 동생은 그걸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꿈은 꿔도 울면서 혹은 웃으면서 깰 정도의 감정선이 뚜렷한 꿈은 잘 꾸지 않는다. 아, 간혹 인상을 쓰면서 일어날 때는 있는 것 같다. 어디선가 악몽은 내 몸을 깨우기 위한 몸의 신호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인상을 쓸 만한 꿈을 꾸는 것은 내가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야 할 때라서 몸이 나를 깨우는 신호인 듯하다. 쓸모없는 것 같지만 쓸데 있는 인체의 신비다.


   꿈은 흔하지만 때론 귀하다. 재밌는 꿈을 많이 꾸던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고 아무런 꿈도 없이 푹 자고 일어나던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다. 조만간 재밌는 꿈을 하나 꾸면 좋겠다. 이왕이면 푹 자도 되는 주말 아침에, 내가 한 번 더 '헤헤'하고 웃으면서 깰 만한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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