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무대를 찾아서 (과거 이야기)

by Noa


안내데스크 일을 시작하기 전, 나는 해낼 수 있는 현 상태에서 나름의 무대를 찾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기업 도슨트 업무에 지원했었다. 면접을 보러 간 날, 면접관이 내게 물었다.

“그동안 배우 활동, 프리랜서 도슨트 이력이 화려하신데 정규직 경험은 없으시네요? 정규직 삶에 적응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네, 자신 있습니다.” 나는 호기롭게 대답했다.


“혹시 토익 점수는 있으실까요? 아무래도 기업 도슨트이다 보니 외국 귀빈이 오실 때가 있어요. 통역이 붙기 때문에 전부 영어로 도슨트를 진행할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해야 하거든요.”


나는 영어와 관련된 어떤 자격증도 점수도 보유하지 않았다. 연기 생활에서는 필요하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본으로 준비한다는 토익조차도 나는 접해본 적이 없었다. 배우의 기준으로만 살아온 나에게, 사회는 또 다른 기본 조건을 요구했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현재 영어 자격증이 없습니다...”


면접관은 내게 말했다.

“그렇다면 토익 점수 650점 이상, 3개월 이내에 따실 수 있으시겠어요? 저희가 수습 기간 3개월 동안 그 시간을 드릴게요. 650점, 그거 별거 아니거든요~ 3개월이면 금방 딸 수 있어요. 하실 수 있으시죠?”


그 질문에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저는... 사실 토익 시험 자체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650점이라는 기준이 어떤 수준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3개월 이내에 딸 수 있다고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입사하게 된다면 저는 그에 부합하는 점수를 따기 위해 저의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드리고 싶습니다.”


면접관의 표정은 잠시 곤란해 보였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는 도슨트 업무를 수행할 수는 있었지만, 그 외의 사회적 자격 조건은 없었다. 도슨트 업무는 가르치면 되는 일이었기에, 나처럼 조건이 없는 사람을 채용하려면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영어 점수 이야기가 끝나고, 그전과는 다른 형식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더 나눈 뒤 면접이 종료되었다.

사옥 밖으로 나가 멍하니 회사 건물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저기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간절했다.


그 순간, 나는 핸드폰을 꺼내 면접을 봤던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왜 이 일을 지원했는지, 영어 점수를 따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이 회사에 꼭 들어오고 싶다는 진심을 담아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한 달 후, 입사 가능 여부에 대한 연락이 왔다. 연기를 그만두고 처음으로, 새로운 영역에서 성취감을 맛본 순간이었다.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입사 후, 회사에서 요구한 영어 점수를 요구한 기간보다 빠르게 취득했고( 토익에서 토익스피킹 또는 오픽으로 대체해 주셨다.) 처음 해보는 사무 업무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낭만은 현실과 달랐다. 나는 ‘내가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열심히만 한다면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들어간 그곳은,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한 곳이었다.


끊임없는 인격 모독과 업무적 괴롭힘은 결국 내 업무 수행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선임 근무자는 나에게 신체적으로 터치를 가할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실수를 유도해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 실수를 지켜보며 동료들과 함께 비웃었고, 그것이 반복되었다. 식사 시간조차 불편했고, 퇴근 후에도 지옥 같은 단체 대화방이 이어졌다. 그곳에서는 나의 말투, 표정, 사소한 행동까지 조롱거리로 만들며 정신적으로 압박해 왔다.


파트장님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여러 차례 SOS를 보냈지만, 그 내용은 만연하게 퍼져 추가적인 조롱거리가 될 뿐이었다. 결국 나는 정규직 계약서를 앞두고 퇴사를 결심했다.

참고로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 역시 같은 이유로 떠났고, 내가 회사를 퇴사한 이후에도 기존 직원 네 명이 추가로 퇴사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심지어 해당 부서에서는 이미 직장 내 괴롭힘으로 경고 조치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 이 정도면, 내가 겪은 상황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첫 도전과 열정은 그렇게,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처음으로 도전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현실에 조금씩 나 스스로 압도당하고 있었다. 나는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는 상태였다. 배우 외의 직업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기에, 아무런 정보도, 지도도 없이 낯선 여행지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주머니엔 돈도 없고, 목적지도 없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상황에 적응하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연기 무대가 아니더라도, 나만의 무대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위기가 오면 방법은 단순하다는 것.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면 된다. 시간은 결국 흐른다. 지금의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불안한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종종 미래의 나를 떠올린다. 그러다 무심코 내뱉는다. “빨리 내년이 왔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미래의 나는 현재의 불운한 상황 속에서 지금 보다 나아져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다음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그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위한 나의 행동이다. 복권이 당첨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복권부터 사면된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그 위기를 이겨내면 된다. 책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면, 다음 장을 넘기면 된다. 결국 내가 움직여야 그 상황의 끝을 만날 수 있다.


내 노력의 결과물이 초라하더라도, 두렵고 무섭고 힘들더라도, 다음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 우리 모두,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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