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사무치도록 싫었을 때가 있었다.
찬바람이 귓구멍 사이로 후 하고 들어와 고막을 날려버리면, 두개골까지 전해지는 찡한 차가움이 내 머리를 지나 빠르게 발끝까지 퍼졌다.
겨울 바람이 가진 차가움은 내 골머리를 차갑게 만들다 못해, 내 상황의 척박함을 알려주는 신호탄 같았다.
그래서 매년 찾아오는 겨울만 되면, 입버릇처럼 “아, 내가 싫어하는 계절이 찾아오고야 말았어” 하면서 탄식을 하곤 했다.
그랬던 겨울이, 현재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나서는 제법 좋아졌다. 까진 아니더라도, 버틸 만한 계절이 되었다.
겨울이 싫었던 건지, 공허하게만 만드는 상황이 싫었던 건지 늘 헷갈렸지만,
현재의 남자친구 덕분에 나는 겨울이 싫었던 게 아님을 다시 느끼고 있다.
부모의 그늘이 내 그늘이 되지 않기를 벗어나려고 노력해도, 항상 발밑에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끌고 오도록 했다.
고무줄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관성의 법칙처럼.
나는 내 부모의 탄식이 나의 탄식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짐을 대신 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채우지 못한 애정은 부족하게만 남아, 내 것을 나누는 버릇이 길들여졌다.
흔히 말하는 가스라이팅에 익숙해져, 그들의 비난과 나를 찾는 부름에 나는 곧잘 달려가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 울적함이 계절을 미워하게 만들었다.
현재의 남자친구를 만나, 그들이 가진 그늘이 그에게 전파되지 않도록 나를 다잡고 나서야,
그들의 부름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겼는데, 그에게 내가 가진 그늘을 나누고 싶지도, 나누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알았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싫어했던 겨울이, 이제는 그저 싫지만은 않은 계절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