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노아 Jan 28. 2020

아주 특별한 여행

"명절에 우리 집에 와서 지내요, 오빠 "


동생은 시댁 식구들과 구정 여행으로 가족 모두 떠난 빈집을 내게 선물했다.


아주 특별한 제안이었다. 어차피 혼자 지낼 연휴라 작은 오피스텔에 답답하게 있기보다  여유로운 공간 선물이 훨씬 나았다.게다가 동생 집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햇볕이 잘 들어 일출과 일몰을 즐길 수 있다.

반면 내 숙소는 아침 잠깐 빛을 토해내고 밤이 올 때까지 해는 제 몸을 감춘다.그런 나는 도시 한가운데 어둠의 자식이다.


" 그래, 그렇게 일정을 만들어 볼게"


동생의 제안이 싫지 않았다. 3박 4일 휴가처럼 생각을 속이고  여행 계획을 짰다.


휴가지까지 여행시간 60분.

교통비 1250원

숙박비 무료.

 3 베드룸 화장실 두 개.  호화 저택을 얻었다. 에어 비 앤비 Airbnb에서  집을 구한 것 같았다.


이렇게 아주 특별한 여행이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여행은 3박 4일 정도  베트남 여행과 다를 바 없었다.

노트북과 책 한 권, 간단한 속옷과 물건을 챙기니 기내 가방 한 개와 백팩 하나면 충분했다.


비행기를 안 타 다행이었다. 비행기는 빠르지만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시간, 보안 수속, 또 연착 가능성이 많아 늘 긴장을 함께 지고 다닌다.


지난번 귀국 때는 1 stop 한국행을 탄 적이 있었는데  미국 국내선이 지연돼  서부에서 갈아타는 사람들이 초조하게 조종사를 기다렸었다. 참 솔직한 안내데스크는 "조종사가 늦잠을 자서 공항에 이제야 오고 있다" 방송을 하고 조종사가 입장할 때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한국 같으면 상상 안 되는 순진한 미국인들의 인내심이 대단하게 느껴지던 그날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겨우 도착해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 후론 무슨 일이 있어도 논스톱 Nonstop  비행기를 탄다.


이번 여행은 1분도 연착하지 않는 우수한 한국의 지하철이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정말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명절의 지하철은 듬성듬성 빈자리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보였다. 내 바로 옆자리에 외국인은 다리를 쩍 벌리고 잠에 빠져있다. 연휴기간 동안 보너스 조금 받아 가족에게 송금하고 삼겹살에 소주 벗 삼아 어젯밤 과음하고 곯아떨어졌는지 모른다. 너나 나나 이방인의 타향살이는 고달프기 매 한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삐릭삐릭"


현관문을 열고 휴가지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오빠 환영해요" 벽에 큰 글씨라도 붙여놓은걸 상상하면 오산이다.


서둘러 여행을 떠난 것 같았다.   떠난 자의 어지러운 상흔을 남겨 놓았다.

지저분하다.  " 동생은 빚쟁이를 피해 야반도주 한 건지 몰라" 후후.


문자를 보냈다. " 이봐 집주인, 숙박비 대신 청소로 때우라는 건가?"


" 호호, 쏴리, 급하게 가느라, 우리 오빠 '정리 강' 믿고 갔어요^^" (내가 강 씨다)


동생은 나랑 엄마는 같은데 성격이 다르다. 내 아들 둘이 성격이 정반대이듯 내 동생은 몸이 너~무 약해서 정리정돈에 취약하다. 개판 오 분 전 집을 인수하고도 이 작은 여행에  " 오, 계획이 다 있었다" 


"독서, 음악 엄청 크게 틀고 막춤 추기, 대형 스크린 영화감상. 회사 업무 한 개 , 요리하기"


휴대폰 할 일 칸에 이렇게 메모해 놓았다. 요리는 녹두 빈대떡과 잡채에 도전~   




저런 계획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요리부터 망하기 시작했다. 잡채는 불어 터지고 녹두 빈대떡에 찹쌀을 너무 많이 넣어 부침개처럼 돼 버렸다. 동생이 남겨놓은 왕만두와 소고기 육수가 없었으면 첫날밤부터 굶을 판이었다.


" 아 미쳐, 진짜" 자신에게 짜증 한번 내고 첫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지? 예쁜 조카 침대에서 스멀스멀 이상한 냄새가 난다. 

코를 대고 킁킁 맡아보니, 개 냄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로이 냄새다. 이 냄새는 녀석이 우리 집에 가끔 오면 내 침대에 올라가 몸을 비비며 냄새를 묻히고 여긴 내 거야 하던 개 냄새다.  로이 냄새가 코 끝에 걸려 새벽에 결국 이불장을 뒤져 용을 쓰며 이불 커버를 갈았다. 결국 첫날 잠도 실패다.



아침은 해와 함께 따뜻하게 찾아왔다. 전화도 함께 다정하게 왔다.


" 오빠, 어때?  좋지?  내 말대로 휴가라고 생각하고 지내면 거기도 천국이야"


" 더러운 천국?  로이 냄새 나서 이불 바꿨어" " 그래?  엊그제 교체한 거라  놔뒀는데 미안해"    


휴가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청소부터. 

"아침이 가고 저녁이 되니 둘째 날이라" 초 정밀 청소에 하루를 다 쓰고 말았다.




정리정돈에는 내게 스승이 계시다. 이민으로 혼자 먼저 미국 갔을 때 미국 남자와 결혼한 누나뻘 지인이 있었다. 살 집을 둘러보고 계약하기 전까지 나는 그 집에 머물렀다. 누나의 남편 아론 Aaron은 미 공군 조종사로 전역하여  유나이티드 United 항공에서 일했다. 미 공사 출신에 성격이 워낙 깔끔해서 그들 집은 먼지 하나 있을 곳이 없었다. 그가 집에 있을 때는 세탁기도 돌리고 건조해 빨래를 각지게 개는데 심지어 내 팬티까지 손수 정성껏 개는 것을 보고 무척 당황했었다.


설거지는 더 심하다.  프라이팬을 닦다가 마음에 안 들면 나사를 풀고 분해해서 세척을 한다. 내가 한 청소하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올챙이였다. 그때 이후로 나의 청소가 더욱 정교해진 것 같다.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구나, 더 열심히 해야 해" 뭐든지 최고가 되고 싶었다.


사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수고로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 그것이 청소와 정리정돈의 이유다.




3박 4일 동안 나는 책 한 권을 겨우 읽었다. 그리고 청소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이불 빨래하고 마지막 밤을 맞았다. 연휴 마지막 날, 내일 내 집으로 간다.


소라게의 소라 집만큼 작지만 이젠 내 집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큰 집에서 보낸 아주 특별한 휴가는 아주 특별한 가사도우미로 막을 내렸다. 


 

   

 

   

작가의 이전글 글에 보이는 얼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