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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Feb 06. 2020

일월화수목금토

제목이 야하다.

여색을 말하려는 게 아닌데. 쓰고 보니 "색"이란 단어의 색이 야하다.


날 day에도 색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토요일은 연두색이고 일요일은 짙은 초록색이다. 어떤 기다림에 설레는 금요일은 "불타는 빨강"이 아니라 "열정의 붉음"이다. 나에게 월요일은 파랗게 질려서 파란색이다. 이 날은 일도 시작하기 전에 한주의 근심과 걱정을 제일 많이 한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연한 베이지색이다. 연한 바탕에는 가장 많은 것을 그리거나 써넣어야 하는 중압감도 든다.  


이처럼 각각의 날들이 색으로 인식되니 하루가 항상  다르게 그려진다.날이 가진 색에 따라 삶의 내용도 달라진다. 어떤 날 바쁘고 분주하게 일을 처리하다  나만의 하루 색은 검정으로 변한다.

그런날은 검정 볼펜의 메모가 많아지고 상념으로 가득 채워진 노트처럼 분별없는 혼란들만 가득하다.


렇게  하루를 마치면 바이러스 가득한 세상을 씻지 못한 채 소파에 쓰러져 잠에 빠진 것 같다.




공군에 있을 때 군 교회에서 주관하는 야간 초소 방문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자원자 중심으로 남녀교인이 조를 짜  기지 외곽을 경비하는 사병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과 빵을 나누어 주는 행사였다.  


추운 겨울 길고 긴 밤을 몇 시간 동안 홀로 외곽초소에 근무하는 병사들은 그곳이 DMZ든 도심의 활주로 외곽이든 고달프다.


나와 한 조가 된 여성 두 분과 함께 커피 보온병과 단팥빵을 가슴에 꼭 안고 초소를 방문하자, 초병은 우렁찬 "필승"구호와 함께 어스름한 불빛보다 밝은 미소로 맞아 준다.


" 춥지?"


" 아닙니다!"


아니긴 머가 아닐까, 영하의 추운 날씨에 꽁꽁 얼어 있는 그들 몸은 두툼한 장갑과 방한복만으로는 힘들어 보였다.


고향이 어디냐? 전역하려면 얼마 남았냐? 근무 중에 무슨 생각을 많이 하냐? 그저 그런 질문과 짧은 대답이 오갔지만, 그의 가장 핫 hot 한 관심은 따뜻한 차 한잔과 그 차를 따라주는 어머니,  이모 같은 여인들이다.

여자 , 차 한잔의 냄새는 그 초소에서 맡기 힘든 최고의 향수였으리라.


적막한 초소에서  

그들과 함께

그들의 밤을 보았다.


새벽 1시쯤, 세상은 침묵하고 초병들의 하늘은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하늘은 검정 바탕에 구멍을 송송 뚫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 "천문"에서 장영실(최민식 역)이 비가 오는 밤,  별을 보고 싶다는 왕의 말에,문 창호지를 먹으로 까맣게 칠하고 구멍을 냈다. 반대편에 불을 밝히고 하늘의 별처럼 만들자,


왕, 한석규는 " 허 허 허"


초소 방문 때 보던 그것과 닮아 혼자 속으로 한석규처럼 웃었다.


검정 바탕에 하얀 점

검정 하늘에 하얀 별

그 색은 기억에 오래오래 간직되었다.


초소에서 밤을 지새우며 근무하던 청년들을 그때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는 남자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고 멋있다.


초소 방문을 마치고 보람으로 가득 찬 그 날 하루의 색은 가까운 곳에서 빛나는 별빛, 

주황색이었다. 붉은 백열등 색.





며칠 뒤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기지 경비대대 병사 하나가 자살했다는.


내가 만난 해맑은 친구는 아니겠지만 누군가 우리가 방문했던 청년 중 한 분인 것을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많이 많이 아팠다.


별 없는 밤하늘 같았다.


소속 부대장은 평소 가정사로 고민이 많던 친구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 후로 행사가 없어도 그들을 자주 만났다.

 





중국발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자 검정 옷과 하얀색 마스크로 흑백 세상이 되었다. 작금의 반응이 좀 심한 거 아니냐고 외국인 친구들이 비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네들은 그들의 국가에서 단체로 살아가는 경험이 전무해서 그렇다.


미국은 사실 민주주의 국가지만 독재국가와 비슷하다,무력을 사용하는 경찰의 모습이 전근대적이고 시민을 지배하는 태도도 그렇다. 그 나라에서는 모두가 꼼짝도 못 한다. 벌금이 얼마나 쎈지, 교통법규 위반부터 경범죄까지 돈과 무력이 무서워 법과 질서에 순종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나라는 참 자유로운 국가다.


할 말 다하고, 덤빌 거 다 덤비고 뭉치면 권력을 뒤 흔들기도 한다. 아무튼 깡다구 민족 근성이 강대국 속에 전쟁도 이겨낸 근성이라 생각한다. 물론 장단점은 있지만.





신은 우리에게 무지개를 선물했다.  우리는 그처럼 세상에 많은 색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 날의 색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눈은 날을 색으로 본다. 언젠가 검은색 교복에서 해방되는 나라가 되고 흑백보다 무지개처럼 여러 색을 가진 나라가 되면 좋겠다.


매일이 다르듯 매일은 다른 색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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