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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Feb 28. 2020

고치고 또 고치면  나아질까?

사람과 글

오늘은 기분이 매우 나쁘다.

작은 일로 가족들과 다투고 날씨도 회색이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가택연금으로 가두었다.


나는 기분이 우울하면 집중할 일을 찾는다.

그날그날 집중할 대상은 다르다.

오늘은 우연히 그 일을  발견했다.  


브런치다.


청소 안 한 방처럼, 그동안 발행한 글들은 남 보여주기 무서운 흉가처럼 방치되어 있다.

쓸 때는 나름 심혈 기울여 썼는데 다시 읽어보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청소도구 Delete걸레와 Mouse 빗자루 들고 사정없이 쓸고 지우기를 시작했다.


너무 못쓸 것 같은 글은 발행 취소 빈방에 쑤셔 박아 버렸다.


"이러니 구독자가 없지"


사실 구독자를 바라고 글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브런치 묘하다.  구독자 수 를 기대하게 된다.

뭐랄까?  익명의 독자들 그것도 함께 글 쓰는 사람들이 읽어주고 격려받는 곳?


혼자 작업하는 내 공간 "워드"에 들어가면  글이 막힌다.

그런데 브런치, 여기서는 대상이 선명하니 글쓰기가 수월하다.


이런 인상을 받았다.

카톡 길게 쓰는 느낌?  


 한 줄만 쓰는 친구들은 답을 안 한다.  

그들은 길게 쓸 줄도 모르고 읽지 못하기 때문에 독해 작문 가능한 친구들만 봐주고 말한다.


나는 타인의 글을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닿으면 "좋아요"를 누른다.

정말 좋으면 댓글을 남긴다.

나와  다른 관점에서 쓴 글을 좋아하고 쉬운 글도 좋아한다.


너무 짧은 글은 성의 없어 보여 별로다.    


아무튼 나 지금 화가 많이 나서  브런치 방을 뒤집고 청소하는 중이다.


글을 고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치고 또 고치면 언젠가  안 고쳐도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올까? "



요즈음 훌륭한 저자들을 많이 읽다 보니 내 것이 없어져 버렸다.

글을 쓰다 보면 아까 읽은 저자 흉내 내고

 다음날 다른 책  읽으면 이번엔 그 사람 흉내다.

독서가 모방을 위한 건지 차별을 찾기 위한 것인지 모호한 혼돈으로 가득 찼다.


가끔은 정말 부러워서 조회수 가득에 댓글 와글한 글을 아무도 모르게 훔쳐보았다.  

 아무도 모르는데 몰래 보는 것 걸릴까 봐 고개 숙이고 조심스럽게 보았다.


이런, 글이 너무 벌거 벘었다.  

사생활을 저렇게 자세히 써도 될까?

요즈음은 방송도 연예인 사생활로 도배하여 찍고, 말하고, 쓴다.


아마 조금 지나면 아파트마다 카메라 설치하고 구청장이 " 아, 거기 305호 부부싸움이 지나칩니다, 주의하세요"

대통령이 10시에 나와 " 전국 소등~" 그러면 도지사가 " 경기도 소등 완료!" " 충청도 미완료"

뭐 이런 날이 올지 모른다.


그냥 나 읽어주는 몇 안 되는 구독자님 바라보며 글쓰기로 했다.

내 기쁨은, 글 발행하고 몇 초 동안  최신 글에 등장하는 것과 내 글에 최초로"좋아요"눌러주는 사람

얼굴 한 번 보고 꾸벅하는 것 말고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브런치 청소하다 내가 고쳐야 할 많은 것을 발견했다.


 보조사를 남발하고 적재적소에 꽃지 못하는 것이다.

 보조사는

"체언, 부사, 활용 어미 따위에 붙어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더해주는 조사 은, 는, 도, 만, 까지, 마저 조차 따위"

오늘도 이전 글에서 찾아보니 한 움큼 보조사 쓰레기가 걸러져 나온다.


좀 한심하기도 하고, 생각이 먼저  보조사 남용으로 시작되어 생각을 따라 손가락으로 가는 것인지,

생각은 논리 정연한데 손으로 오는 과정에 잠시 틈이 생겨  보조사 끼리 충돌이 일어나는 것인지

살펴봐야 했다.


나는 자판을 빠르게 치는 편이다.

그런데 처음 배울 때  훈련이 부족해 손가락이  

습관 적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기자회견 때 앞을 보고 치는 기자 수준은 아니다.


자판을 보고 치면서 확인해야 한다.

노트북이 미국 것이라 한글 스티커를 붙이고 작업한다.  

고치고 또 고치면 언젠가 좋은 글도 나올 것이고  생각도 고치고 또 고치면 삶도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나는 원래 한 번 보고 결정하는 스타일이다.


땅꼬마 때부터 그랬다.

이모가 여름이 시작될 무렵 신상으로 값나가는 반팔 티셔츠를 사주었다.

예쁜 종업원 누나가 어떤 색을 추천해 주었다.   그 누나가 추천해서 좋은 줄 알고 골랐는데 집에 와서 다시 입어보니 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 이모가 " 얘, 우리 이거 바꾸자? 여기서 보니 별로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좋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맘에 안 들었다,  그런데 그 예쁜 종업원 누나가 바꾸면  손해 볼까 봐 걱정돼서

그냥 맘에 든다고 거짓말했다.


그 버릇은 어른이 돼서도 변하지 않았다.

한번  결정하면 끝까지 간다.  만약  중간에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든다고 나를 세뇌시킨다.

그래서 처음 판단에 대해 좀 신중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본 것은  시간이 가면 정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보면 또 다른 관점이 보이고 또 다시 보면  마음에 안 든다.


그런 맥락에서 글쓰기는  좋다.  

계속 고칠 수 있으니.

그러나 책이 되면 곤란하다.  모든 책을 따라다니며 고칠 수 없으니 말이다.

책이 얼마나 신중한 작업인지  책이 되는 글은 조심 스러워  진도가 더디다.

한자리에서 맴맴 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순간을 넘지 못하면 아무것도

탄생하지 않는다는 것.


남자들은 누구나  군대를 통해 역경 통과 체험을 했다고 본다.  

그래서 아마 이 말이 선명하게 들릴 것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군대 시절 밤새 얼차려  받으 듣던 말이다.

정말 밤새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이겨내 언젠가 지나가고 이겨내더라는 것이다.

조금 순하게 요즘 말로 "이 또한 지나가리"인데 사실 원조는 닭 모가지도~다.


브런치 정리해서 조금 기쁘다.


함께 글을 쓰며 삶을 살아가는 브런치 작가들이 색다른 시선으로 흑백 같은 세상에 색을 덧 칠하면 좋겠다.

요즈음 세상은 검정 옷에 하얀 마스크로 흑백 뿐이다.   


기분전환을 위해 미용실로 향했다.

상냥한 미용사와 귀에 걸린  클래식 음악이 감정을 다스려준다.


거울에 비친 새로운 나를 보고 나의 생각을 교정하고 퇴고한다.


고치고 또 고쳐보니  분노가 절제되지 못한 내 행동에도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회를 보아 사과해야지

사약은 아니고 벌금형이면 좋겠다.

밥 한번 사고 웃으며 지나가.


다음 생은 여자로 태어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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