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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Feb 29. 2020

베스트셀러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는 앉으면 글이 저절로 써질까?

편집자들은 투고 원고가 "깜"이 되는지 순식간에 아는데, 그들이 찾은 글은 베스트셀러가 될까?

작가며 감독인 봉준호의 모든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매년 받을 수 있을까?

작가 줌파 라히리는 인도, 이태리 이야기 말고 다른 글은 왜 없을까?

작가 스티븐 킹은 만화 같은 기괴한 상상력 말고 없을까?  



몇 주째  갱지 노트 앞에서 제자리를 맴돈다.  읽기도 쓰기도 과부하가 걸렸다.

최근에 겨우 발견한 팁 Tip 하나는 읽기와 쓰기를 분리해서 하는 것이다. 읽기하며 배우기 배낭을 메고 다니니 넝마주이가 따로 없다. 읽음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냥 읽어야 했다. 영화를 수첩 들고 비평하려 보지 않는다.


글이 집 짓기와 같다면 기초부터 제대로 작업해야,  만들고 허무는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

시간도 문제다.  1년 동안 집만 지을 수는 없다.  그 집은 완성해도 팔릴 보장이 없다.


브런치의 공짜 글은 집이라기보다 인테리어 공사 같다. 어떤 글은 주방에 대해 잘 그려 놓았다.  

어떤 글은 집의 전체 구조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건축학 개론이다.

하지만 가장 훌륭한 글은 역시 독자가 살기 좋은 집이다.  안락하고 행복하며 여유로워 생각하게 하는 집이다.

어쩌면 글짓기는 내가 삼킨 어휘와 진실한 생각들로 되새김질 해 만든 진흙집 같다.  

나를 위한 집 짓기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공사다.  타인을 돕다 내가 행복해지는 것과 같다.




내 어머니는 시설 좋은 요양병원에 계시며 "감옥 같다"라고 말한다. 평생 감옥은 한 번도 갔다 온 적 없는 어머니가 감옥을 운운하는 것은 막연한 간접경험이다. 어머니는 몸이 안 좋아서 한 번도 미국에 오지 못했다.

국제 전화할 때 나는 어머니 영상이 있고 어머니는 나의 음성만 있다.


팬텀기가 한국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 군은 홍보를 위해 선별된 젊은이를 팬텀기 후방석에 태워주었다.  

착륙하고 짧은 비행을 마친 그 청년에게 기자가 물었다.


"비행을 하고 난 소감이 어떤가요?"


" 로켓을 탄 것 같았어요"


우리 어머니의 "감옥 같다"는 말과 같다.


어머니는 병실에서 하루 종일 손으로 글을 쓴다. 코로나가 어머니를 못 보게 해 영양제와 간식을 보내며 노트 한 권도 보냈다. 예전에 그녀 글을 보았다.  손으로 휘갈긴 글에도 깊은 감성과 삶의 애잔함이 녹아 있었다.

어머니가 브런치 작가라면 구독자 100명은 거뜬히 모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문학소녀였고 돌아가신 삼촌은 작가였다. 동생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니 집안이 온통 문학도 집안인 셈이다.

 

나도 처음에 내가 글쓰기 달인인 줄 알았다. 앉으면 글이 슬슬 풀리고 계시받은 성경 저자처럼 마술같이 줄줄 글을 써댔다. 여기저기 작은 상도 많이 받았다.


내가 원래 가진 직업보다 작가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무렴 핏줄은 못 속이지.


착각이었다.


자기 집이나 짓지 집을 지어서 팔 능력이 안 되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내가 어머니보다 배운 것도 많고 무진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어머니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어머니의 유전적 글쓰기 능력에 내가 "1"을 더 가진 것뿐이었다.

나의 "1"은 그나마 문장 고치기 정도였다. (아직도 허술하기는 여전하지만)


어머니가 술술 글이 풀리는 노트를 가진 것처럼 나는 술술 글이 풀리는 노트북을 가졌다.

술술 풀리던 글에 급제동이 걸린 것은 한국에서의 고독 시간 때문이었다.


생애 처음 고독 레슨을 받았다.


혼자서 무엇이든 잘하는 편이라 요리도, 수리도, 규칙적인 생활도 문제없어 보였다. 웬걸, 혼자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한국 세상과 오랜 세월 연을 끊고 살았으니 인간관계도 시들하다.


화성에 혼자 사는 영화 마션 The Martian의 주인공 맷 데이먼 같았다.

이왕 마음먹은 일이니 뚝딱 글짓기 집 채 완성하고 싶은데 정신적 생존이 집짓기 몰두를 어렵게 한다.

이쯤 돼서 현명하게 베스트셀러 작가는 접어야 한다. 훌륭한 예비 작가들도 많고 이미 서가에 좋은 자리 차지한 그들의 아름다운 집도 팔리지 않으니.


어떤 편집자가 로또 맞을 작품을 기다린다는 글에 픽 웃음이 나왔다. 편집자는 사감 선생 같은 모습을 연상했는데 간절히 작품을 기다린다니 산부인과 수술실의 간호사 같았다. 구구절절 책에 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옳았다.


출판을 이해하자 아직도 무식한 데 내가 세련된 것 같았다. 하지만 무식이 용감일 때  술술 나가던 글이 조금 유식해지자 급브레이크가 자주 걸린다. 한 줄 쓰고 "다다다닥" 백 스페이스 Backspace 질이다.


문장 브레이크가 뇌에서 작동하니 사이드 브레이크 걸고 운전하는 기분이다. 밟아도 마음대로 달리지 못하는 자신이 이상하기만 하다.


좋은 책은 목적지와 여행 방법이 분명하고 남들 가지 않는 길이면 팔린다. 집도 남들이 짓지 않는 곳에 남들과 다른 콘셉트 concept으로 지으면 팔린다. 이런 여행과 저런 집을 어떻게 만들란 건지.


방법은 있다.

쓰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다. 코로나에 최선 다해 걸려 확진받아 입원한다.

사업 말아먹고 노숙하다 분기탱천해서 일어나 성공한다. 아니, 죽었다가 부활한다.




글은 삶의 생김새다. 얼굴 생김새 말고 인생 말이다.


작가 이승우를 보면 그의 작품은 진지하고 깊은 유머를 담았다.

그의 실물과 삶의 생김새가 비슷하다.


시인 고형렬의 산문을 보면 그의 철학적 깊이가 글 곳곳에 피처럼 묻어있다.

그를 따라 가면 항상 깊은 산속에 암자가 나온다.


작가 김영하는 동네 아저씨 같다.

자유분방하나 힘 빼고 예리한 생김새가 글에 뚜렷이 새겨져 있다.


저명한 작가들은 저마다 자기 얼굴을 가지고 있다.


초보 작가는 얼굴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아 어머니 속 아기 같다. 깊은 고독에 오랜 시간 담긴 기다림 후에야 얼굴이 생긴다. 좋은 작가들은 골방에서 기다림을 참으며 세포처럼 자기 분열했다. 난자에 도달한 정자 1등이 수정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그룹에서 수정된다. 그렇게 씨가 되면 심장을 만들고 제일 먼저 뛴다. 영상을 보라 감격에 소름이 돋는다.


모태에서 열 달 동안 자기를 만들고 세상에 처음 자기를 보여준다. 움직이는 담금에 실패했다면 아이는 이름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도 아기처럼 움직이며 분열하여
이겨내고
글에 삶의 얼굴을 심기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브런치에 프로필 사진을 우주에서 찍은 지구를 넣었다.  지구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글 좋은 브런치 작가 한분이 내가 보낸  댓글에 "강노아 님은 달을 사랑하시나 봐요. 상현달 "하며 답장을 주셨다. 순간, 달?  나는 지구를 걸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뿔싸 달이다.  

     

 "네, 미국이나 한국에서 같은 자리에 변신하며 있어주는 귀한 별이라서요."


이 말은 사실이다.  나는 미국에서 향수병에 걸렸을 때 달만 쳐다보고 살았다.  여기서도 미국이 그리울 때는  달을 본다. 서둘러 내 브런치 대문에서 달을 내 보내고 지구를 모셔왔다.


우스운 착각.

나는 대문에 걸린 달 사진을 여태 지구로 믿고 살다 타인의 눈에 비친 " 달이구나, 너 달 좋아하니?" 하는 말에 나 자신을 제대로 보았다.


나는 내 글이 태양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성 지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글은 달이었다.  

소리도 색도 물도 없는, 생명 없이 맴도는 작은 위성.


그래도 매일 지구가 보여서 좋다. 언젠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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