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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07. 2020

좋아한다, 싫어한다

나는 토트넘의 전 감독 포치를 좋아하고 현 감독 무리뉴는 싫어한다.


무리뉴가 싫은 이유는 포치가 갑자기 경질되고 나타난 것, 맨유 시절 선수들과의 불화하는 모습, 경기 운영방식, 불평불만하는 태도, 비호감 얼굴 등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다지 결정적인 이유는 없다. 대통령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유도 깊이 따져보면 자신의 취향에서 비롯된다.  



오늘 번리전 기자회견에서 무리뉴는 선수 시절 게으르고 불평이 많았다는 동료 브리토 감독의 귀여운 폭로에, "내가 선수로 게을렀다고?"  " 맞다, 솔직히 완벽하게 맞다"  


감독 무리뉴가 선수 무리뉴를 만난다면 어떻게 대할 거냐?  " 선수 무리뉴는 안 쓸 거다 절대 안 쓴다"

선수 무리뉴를 팔 것이냐?  "걔한테 제안이 온다고?  얼른 데려가라고 해라, FA로 내줄 수도 있다"


그 말에 기자회견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려울 때 침착하게 언론과 팬을 대하기는 무척 어렵다.  무리뉴의 인터뷰 내용에 그가 조금 좋아졌다. 실패하고 있지만 당당하고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은 아직 그가 내공이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의 근본에는 대단히 원시적인 마음 구조가 있다.


우리는 처음 경험한 것 혹은 처음 든 생각을 기준으로 사물과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한다. "어머니 음식은 맛있다"라고 착각하는 것도 이런 원리다. 어릴 때 고향에서 먹던 그 맛은 딱히 수준 높은 맛이 아니었다.  "옛날 짜장"처럼 단순하고 순진한 맛이다. 그럼에도 그 맛을 추억하는 이유는 처음 경험한 좋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좋아하는 원시적 마음 구조에는 선입견과 편견이 작동한다.


간호사관학교 졸업생이 임관과 동시에 대구 경북으로 달려갔다는 기사를 보고 대견한 대한의 딸들이 자랑스러웠다.  그 기사로 인해 여자뿐 이던 그 학교에  2012년에 첫 남자 생도 8명이 입교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간호사관학교 남자 생도라.  나는 간호사는 여자가 낫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호스피스 일을 하고 있을 때  당직근무 중 사망자가 발생했다.

갑자기 사망해 시신이 안치된 지하실에서 망자와 가족들을 만났다.  그때 키가 크고 잘 생긴 백인 의사가 복도에 있었다.  그는 초록색 수술복 같은 것을 입고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었다.  남자를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잘생겼다고 하지) 그는 친절하고 특히 눈이 참 아름다웠다.  가족들과 망자를 확인하고 기본적인 업무가 끝난 뒤, 그 멋진 백인 의사에게(친구 하고 싶어서)  "너 처음 보는데, 어디 근무하는 의사냐"라고 물었다.   그가 두건을 벗자 짧은 금발머리도 드러났다.  


" 아, 난 의사가 아니고, 여기 담당하는 간호사야 "  

"오 리얼리 Oh, really" 그 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처음 보는 남자 간호사라서 그런지 모른다.  지금은 남자 간호사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 하지만 아직 조금은 어색하다.(너무 세게 혈관에 바늘을 찌를 것 같은 느낌?)이처럼 내 안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이에는 명확한 근거도 없고 논리도 타당하지 않은 기준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친구를 좋아한다.

친구 사무실은 14층에 있다. 절친이라 한국에 오면 그를 제일 먼저 만난다. 그는 항상 운동삼아 자기 사무실에 걸어 올라간다. 내가 가면 밖에서 밥을 먹고 사무실이 편해 그곳으로 간다. " 엘리베이터 타고 가자" 내가 헉헉 거리며 말하면 그는 빙긋이 웃는다. "힘들어? 난 늘 걸어 올라가서"그는 실실거리고 나는 인상을 찡그린다.


한 번은 나 혼자 엘리베이터 타고 갈 테니 넌 평소처럼 걸어오라 하고 따로 올라갔다. 내가 먼저 가고 그가 후에 도착했다.  그날 왠지 둘이 서먹해졌다.  


나는 계단 오르기가 싫다. 등산과 애견 산책은 좋아하는데 엘리베이터 있는 계단에 일부러 오르기 싫다.

컴컴해서 싫고 또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싫다. 방송에 나온 의사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는 것도 싫다. 내가 계단을 오르고 싶을 때 오를 거다.





나는 오래된 구안와사 후유증을 가지고 있다.  그 병을 만난 지 벌써 6년이나 되었다.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갑자기 햄버거를 물었는데 순간 입이 이상했다. 그날부터 내 인생은 입이 비뚤어 진채 다른 길을 걸어야 했다.

그때 같이 일을 준비하던 팀에 젊은 한의사가 있었다.  그는 스트레스와 과도한 냉방이 원인 같다고 했다.

그는 초기 치료에 나를 고치지 못했다. 일반병원 가정의를 찾아갔다.  여러 방법이 있지만 시기를 놓친 것 같다고 했다. 한방치료를 이어가기로 했다.  


하루는 한의원에서 침술에 능한 그의 스승을 초대해 특별진료를 받으러 갔다. 그는 나에게  태핑 Tapping치료( 몇 가지 맥을 두드리는 것)를 권하고 혹시 과거에 상처 받은 일이 없냐고 물었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고 하자 눈을 감고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억지로 생각을 쥐어짰다.  마누라? 동업자? 아들? 선배?  아, 아버지다.

엄한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를 싫어한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아버지를 용서하면서 태핑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마음의 짐을 벗어 버리라고 했다.


난 아버지가 죽도록 미운 것은 아닌데 마음으로 용서한다 용서한다 하면서 태핑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불쌍해졌다.  눈물을 쏟았다. 용서해서가 아니라 그냥 불쌍한 아버지 생각이 난 것이다.  한참 울고 침을 맞고 다음날 일어났다.


얼굴은 그대로였다.  괜히 울었다.  


싫어하던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나이에 접근하면서 였다.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으며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아들들에게 혹독함은 "공부 잘하기"와 "최고되기"를 강요하 "생존 가르침"이었다. 매를 든 것은 모든 아버지들이 하던 일이었고 그도 그런 식으로 체벌을 받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아버지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난 주도적인 사람을 싫어한다.  내가 주도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왕, 공주 꽈 는 비추다.  그런데 내 여자는 여왕이고 나는 노비다. 처음엔 내가 제왕이었다.  시간이 가며 권력구조가 바뀌었다. 호르몬 때문이었다.  

그녀 에겐 용맹한 남성 호르몬이, 나에겐 연약한 여성호르몬이 강림했다. 난 영화를 좋아하는데 요새 자꾸 눈물이 흐른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이젠 전쟁 영화를 보다가도 운다.


엊그제 올린 글 " 삶의 둔감함"을 쓰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글에 인용하고 영화를 다시 봤다. 내용을 이미 외우고 있는 영화인데도 울었다.  영화 마지막에 노인이 된 라이언 일병이 죽은 존 밀러 대위 (톰 행크스 분) 묘지에서 경례를 할 때 오열했다.  이 눈물이 전부 여성 호르몬이 시켜서 한 짓 같다.  뭐 그리 싫지 않다.  남성 호르몬이 가득할 때 모르던 여성의 섬세한 감정으로 한번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내는 선덕여왕이고 나는 이제 내시다. 그녀는 그동안 내 주도가 싫지만 참고 살았을 것이고 이제 내가 싫지만 반대로 살아가는 일이 생겼다.


선배 중에 결혼 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는 몇 안 되는 남자들은 자기 부인  앞에 말이 없다. 그의 아내는 내 앞에서 말이 많고 즐겁게 함께 수다를 떤다. 그때 선배가 이렇게 말한다. "동생은 너무 말이 많아"


재미있게 놀아놓고 자기는 귀만 열고 웃으며 자기 아내의 보기 드문 웃음만 감상했다. 그 형이 말이 적어진 이유는 부인이 무서운 거다. (자꾸 지니까... 속으로는 져 준다 하고) 호르몬 때문이다.


경남 사천에 농부가 된 전 통합  진보당 대표 강기갑 의원이 기사에 등장했다. 이 양반 좀 특이한 분이다 생각만 했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농부가 된 모습이 보기 좋았다.

  


 "미생물을 연구하면서 정말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연구하다 보니 미생물도 절대로 한쪽만 있어서는 안 되더라. 완전히 다른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진화를 못 한다. 몸 안에서 나쁜 미생물만 싹 제거하면, 좋은 미생물이 진화를 못 하고 약해지게 되고 숙주(宿主·기생할 대상으로 삼는 동식물)를 지킬 수가 없다. 보수와 진보도 마찬가지다. 진보가 좋고 보수가 나쁘다고 여기는데, 결코 보수가 나쁜 게 아니다. 우리 마음 안에도 보수와 진보가 같이 있다. 내가 내 기득권을 지니고 가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진보를 위해 보수를 다 버릴 수는 없다. 오늘 조선일보와 하는 인터뷰도 과거 같으면 불가능했겠지만,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하는 거다. 이 인터뷰로 불편해하는 내 지인이 꽤 있을 거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6/2020030601962.html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자주 바뀐다.


생각이 바뀌는 것은 반대편 저항이 심해서 내가 바꾸지 않고 생존할 수 없거나,

패배하면서 얻은 새로운 경험이 좋아서 그렇다.


그래서 인간은 자주 저항에 고꾸라지는 "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지고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언젠가 토트넘 포치 감독보다 지고 있는 무리뉴를 좋아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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