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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15. 2020

새 싹

앞이 안 보인다고?

"어라 이게 뭐지?"


내가 키우는 화초 산이의 화분 가장자리에 못 보던 두 개의 싹이 태어났다. 생김으로 보아 제 어미의 분신인지 집안 어디선가 떠돌던, 아니면 내 옷에 묻어 들어온 씨앗의 발아인지 가늠할 수 없는 20mm 정도의 작은놈이다. 이 녀석이 누군지는 좀 더 커서 얼굴을 보면 알 노릇이다. 한 가지 문제는 그때까지 살아남을까? 하는 의문이다.


화초 산이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함께 하던 친구다. 빛이 부족한 환경 탓에 한해를 넘기지 못하고 앙상한 줄기 하나만 남기고 죽어 가고 있었다. 다 죽을 때까지 폐기를 보류하고 방치했다. 하지만 녀석은 그해 겨울을 그렇게 기괴한 죽음의 외모로 생명을 지켰다.


다음 봄, 죽어가던 앙상한 줄기에서 새싹 한 개가 나왔다. 식물인간으로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의 소생과 똑같았다. 의식을 회복하고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렇게 살아난 산이를 내 집에서 키울 자신이 없었다.


햇빛이 부족해 또 죽을까 봐 겁이 났다.  잘 살라며 동생집에 보내 주었다. 동생집은 햇볕이 많이 들고 모성애가 뛰어난 그녀 덕분에 집에는 생명의 온기가 있었다. 물 주고 빛을 받는 것 말고 관심 주고 사랑하는 마음까지, 식물은 말없이 살아가지만 그녀의 마음도 먹고 자랐다.  얼마 후 산이는 동생 집에서 말 그대로 환생했다.  초록 잎이 한두 개씩 깨어나더니 앙상했던 가지가 좀 더 길어지고 잎은 더 많이, 전보다 더 수려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났다.  이전의 산이가 아니었다.


아픈 산이가 재활에 성공하자  건강한 산이는 동생집 화초 서열에서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집에는 거실에 맞는 비싼 화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거실 맨 앞자리에서 옆으로 다시 옆으로  나중에는 침실 베란다에, 한기마저 이를 악물 곳으로 밀려났다. 그 아이가 밀려난 또 다른 이유는 진드기 때문이었다.   보기 흉하고 당당하게 진드기를 뒤집어쓴 산이 꼴은 또다시 환자, 산이었다.


" 내가 도로 데려갈까?"


그녀는 선뜻 화초가 없던 내 집에 산이를 돌려주었다. 이사 온 지금은 전보다 햇볕이 30% 정도 많아서 약간의 자신감도 있었다. 화초 무식자 지만 산이는 돌아와 내 품에서 자랐다. 진드기는 우유로 제거했다.  우유 막으로 진드기를 질식시켜 제거하는 정보를 찾았다. 산이는 네 개의 아주 큰 잎과 여섯 개의 중간 잎 그리고 자기 발밑 두 곳에 새순이 돋는 깨끗한 자태로 다시 번성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주었다.  너무 과해도 부족해도 안된다고 하는데 전문성이 없어서 외동 식물 산이는 주 1회  살뜨물로 밥을 준다.  몸에 돋아나는 여타의 불손한 생명체들은 매주마다 떼어내고 해가 시작되는 아침이면 방향을 틀어 해를 선물했다.  아침에 작은 어항 구피를 깨우며 블루투스로 쇼팽을 틀어줄 때 산이도 감상하라고 가까이 놓아준다.  마음으로 " 하이, 산",  가끔은 소리 내며.





희망이 싹트는 모습도 새싹처럼 참신하다.



아주 오래전 영주권이 거절되었을 때도 지금과 똑같았다. 샌프란시스코의  늙은 한인 변호사는 내 수속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었지만 이민국 편지에는 분명하게 "Denied거절"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 입국 후 내 직장 경력이 연속성을 갖지 못해 규정에 의해 거절되었다는 것이다.  늙은 변호사는 항소 appeal 하면 될 거라고 했지만 나는 그를 해고했다.  그는 실패를 미안해하며 항소장을 이민국에 보냈다.  이번에는 시카고에서 변호사를 찾았다.


그는 한국인 2세로 영어는 잘하고 한국말 잘 못하는 젊은이였다. 말 잘 듣고 착해 보이는 젊은 변호사,  세상에 내 돈 내고 쩔쩔매며 부탁하는 몇 가지 직업이 싫어서 착해 보이는  그를 택했다.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이민국에서 답신이 왔다.  당신의 항소 이유가 적합하므로 승인 approved 되었다는.


그 기쁨은 막 새싹 돋는 화초 산이의 화분 같았다.


이제 식은 죽 먹기로 시간만 보내면 영주권은 무리 없이 되는 일이었다.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날은 우리 온 가족이 영주권 심사를 받는 날이다. 검은색 정장에 아이들도 단정하게 입히고  새벽잠을 설쳐가며 당도한 세인트 루이스 이민국, 우리 가족사를 부검할 수술실에 들어섰다.  

두근두근 차례가 되어 마주한 직원은


" 너 혼자 영주권 할 거니?"       


" 아니, 가족 전부 하러 왔는데"


"그런데 왜 네 서류만 있지?"


이상하다며 서류를 뒤적이던 그는 영주권 신청이 나 혼자 만 되어 있다고 했다. 가족 각각 따로 내야 하는데 너 변호사 쓴 거냐? 그 친구 변호사 맞냐? 며 연신 물어봤다. 만약 이대로 끝나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그때,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정말 미안한데, 내일 아침까지 가족 서류를 만들어 올 테니 다시 약속 잡아줄 수 있겠니?"


" You Sure?"


그게 가능하냐는 투의 냉소적 반응이 돌아왔다.  그때  마음은 화초 산이가 죽어가던 겨울 같았다.


이민국 직원은 전례 없는 일이지만 한번 해 주겠다고 했다. 그날 밤 집에 온 나, 이민법 무식자는 변호사가 되었다. 내 지원 서류 기준으로 인터넷을 뒤져 참고해 가족 서류 3장을 밤 새 만들었다.




어제와 같은 다음날 아침, 복장만 바뀌고 똑같이 이민국에 도착했다.


"흠~, ( 얘네들 콧소리 비슷하게 이런 소리 잘 낸다) 이걸 네가 혼자 했다고? 놀랍군"


이민국 직원은 법률지식 없는 내가 변호사 대신 만든 서류를 검토했다. (물론 이민 수속 처음부터 혼자 하는 사람도 있다) 오랫동안 방 전체를 무서운 침묵으로 가득 채우고 서류를 검토하던 그는 몇 가지 구두 질문 뒤에,


 "오케이"


젊은 변호사는 가만두지 않았다.  잔인하게 처리했다. " 환불 해"  " 그건 곤란하고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생명을 다한 것 같은 위기는 삶에 자주 찾아온다.  "이제 끝났군" 하는 자조적 느낌도. 그러나 나는 그때를 즐긴다.  이 사건 말고  끝났다가 다시 시작하는 경험을 많이 해 보았기 때문이다. 내 능력이 출중해서? 간절해서?  "Nope"  운도 따르고 최선의 집중력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한 가지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불행한 것 같은 행복한 순간"을 붙잡고 있으면 된다.



화분에 난 새싹이 화초 산이 자식이면 좋겠다. 산이 가르쳐준, 생명은 생각보다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내 안에도 그 만만치 않은 생명들이 모여 산다. 짧은 지식과 상식으로 인생을 다 아는 것처럼 절망하고 지질히 궁상떨면 왠지 그냥 슬프다.



참고 견디면 생명은 스스로 발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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