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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Feb 26. 2020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

교포의 시선으로

나는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다.  


두 나라를 번갈아 오가며 살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미국인이고 실제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나는 어디서나 이방인이다.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은 코로나로 나라가 몸살을 앓는 것에 마음 아프고, 현장에서 분투하는 관계자들이 안쓰럽고, 감염된 분들이 걱정스럽고, 생업에 치명적 고통을 받는 동포에게 가슴이 먹먹한 것을 보니 그렇다.




나는 헬조선의 부정적인 마음으로 조국을 떠났다.


나는 한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공부하고 적당한 사회적 지위를 가졌음에도 이 나라가 싫었다.

그 이유 중에 으뜸은 사람들이었다.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고 기회주의자처럼 여기저기 붙어 한 사람 죽이는 일쯤은 눈 하나 깜짝 않는 힘 있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래서 유학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자 했다. 이민 가기 전 유학을 갔을 때도 내 조국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 내 나라에서 대접을 더 받게 되었다. 우월한 지위는 더 많은 적을 만들고 "아주 잘나야 하는데 적당히 잘나면" 곧 제거된다는 친구 말처럼 좌충우돌하다가 결국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민을 떠나며 다짐했다.  


"다시 이 나라에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야"




인생은 계획처럼 되지 않았다. 그 다짐을 넘어설 이유들이 생겼다. 

미국에서 오래 함께 하던 친한 언론인 선배가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선배, 난 미국이 더 좋아" 그러던 내가 그보다 먼저 한국땅을 밟았다.

하지만 나는 이방인이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내 삶의 방식이 다르구나" 안 것은, 한국의 생활이 불편하다고 느끼면서부터 였다.

도착하자마자 남양주에 사는 어머니를 만나러 인천공항 좌석버스를 처음 탔을 때,

버스기사가 승차를 거부하며 불편한 현실은 시작되었다.


" 저기요, 왜 버스를 안 태워줍니까?'


"다음 차 타세요!"  


그는 입국 손님들 짐을 다 정리해서 싣고 떠나려던 참에 등장한 나를 거절했다. 말다툼이 이어지고 나는 분기탱천한 노기를 터트리고 말았다. 

"내가 우리나라에 얼마 만에 온 건데, 당신이 이따위로 첫 기분을 망치는 거야!  어?"

기사는 자기보다 어려 보이는 당찬 승객에게 눈을 부라리며 반말로 말한다.


" 반말하지 말고!"


보다 못한 승객들이 단체로 내편 되어 주었다. " 이봐요, 기사 아저씨!  이 손님 태우고 가면 되지, 우리가 기다릴 테니 도와주세요" 대중의 응원(여론)으로 겨우 좌석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이 나라에 오면 안 되는 거였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대중교통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환승이 뭔지, 환생인지) 그때마다 어리숙한 나에게 눈총과 거친 말투로 응대하는 기사들이 정말 싫었다. 택시 탈 때도 그랬다. 습관이 무서운 것인지 나는 미국식으로 손가락을 위로 하고 안쪽으로 흔들어 택시를 잡았다. 


기사는 " 손님, 택시를 잡을 때는 공손히 손을 들어 표시해야  됩니다."


"? , 제가 뭘 잘못했나요?"  


" 아까처럼 손가락을 까딱 까닥하며 오라 하면 보기 안 좋지요"


"......"



지하철은 무슨 냄새가 난다. 어떤 이는 큰소리로 길게 전화하고, 누구는 아주 크게 침 튀며 "에 엣취~"

옆자리 들어올 때는 몸을 세게 비비며 어깨를 밀어 넣는다. 내 어깨가 그의 어깨 속에 갇힌다.


'예수 천당, 불신지옥'도 지나간다.


동생 가족은 나의 <한국 불만 민원실>이었다. " 곧 익숙해질 거야,  옛날에도 그렇게 살았잖아?"


"무슨 나라가 하나도 좋아진 게 없니?"





횡단보도를 건너다 누군가 어깨를 세게 툭치고 지나간다.


" 에이 씨 " 혼잣말로 중얼댔다.


" 뭐라고 했어?"


또 나이 많은 아저씨다. 바로 반말로 눈 부라리고 덤벼든다. 여기 와서 참 많이 싸웠다.  

미국 말 쓰고 사느라 머릿속이 온통 복잡한 과부하였는데, 여기오니 그 흔한 한국말도 적당한 순간에 떠오르지 않는다. 영어도 못하고 한국말도 못 한다. " 그만합시다" 이것이 분쟁을 끝내는 내 방법이었다.



한국의 많은 시간이 지났다.


" 너 원래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그랬잖아?"


오래된 친구는 다 커서 이민 간 놈이 뭐 그리 적응이 오래 걸리냐는 말투다. 이 친구는 미국 우리 집에 놀러 와 내가 몇 주 동안 영어 한마디 안 하게 재워주고, 먹여주고, 안내하고, 챙겨주던 친군데 밥 한번 먹고는  "다음에 밥 한번 또 먹자"하더니  연락두절이다. 밥 한번 먹자는 소리가 그냥 인사치레인 것도 그만 알고 말았다.


나는 서서히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어리숙해 보이지 않으려고 말수가 적어졌다. 나라가 키 좀 크더니 이제 교포는 웃픈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미국 오면 아무것도 못할 거면서 찾아온 나에게는 "뭐 그것도 못하냐"라고 핀잔주기 일수다.

가만 보자, 밥 좀 먹고사는 것 같은데 졸부다.  앉으면  얘기만 한다.

도전을 위해 앙뜨레 프레너 Entrepreneur가 되어 창업한 베이비부머 Baby boomer 온라인과 오프라인 통합회사 S. Neighbors Korea는 아직도 투자자를 못 찾아 창립이사들만 고생하고 있다. 투자자는"의미" 안 찾고  "수익"만 물어본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갔다.


나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가족과 지인들이 지쳐갈 무렵 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아빠, 한국이 난리 난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 아직 감염되지는 않았다.  외출 자제하고 조심 중이야"


"아빠, 필요한 것 있으면 연락 주세요"


" 마스크"


"?"




이번 위기에 생각해보니 그동안 대한민국을 오해할뻔했다.


레이반 Ray ban 끼고 "한국 바라보기"하던 것을 멈추었다. 선글라스를 벗자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촛불 혁명을 비폭력으로 이끈 위대한 시민. 그나마 정확한 코로나 감염 숫자를 공개하는 정직한 국가.

(아마도 전염병은 해외 여러 나라에 상상 이상으로 퍼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만큼 검사 진행할 인력과 기술이 없어서 자기 나라의 감염자 숫자를 사실은 모른다)

점포 월세를 미루거나 탕감해주는 주인. 전염병과 싸우는 의료인들의 수고. etc.


이 정도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가?


마스크 없다고 폭동 일으키고 식료품 사재기도 하지 않는다. 이 만한 지역 감염이면 폭동과 혼란이 야기될 국가는 많다.


우리나라는 위기가 "탁" 치면 "어쭈" 하고 단결하는 특별한 민족이다.


불평은 많아도 결국 알아서 다 함께 힘을 모은다. 일제 탄압을, 한국전쟁을 목숨으로 지키고 나라를 만들었다. 군사정권의 고문과 학살도 시민의 힘으로, 국가 암세포도 촛불로, 이만큼 나라 만들었다. 나라 사랑하는 일에 좌, 우가 방법이 좀 다른 것뿐이다. 김연아, 박태환, 손흥민, 류현진, BTS, 조성진, 클라라 주미 강, 손열음, 봉준호 이런 영재들이 한 번씩 국격 높이고 예체능만 잘하는 것 같지만 문학계도 좋은 작가들이 많고 해외에서 한국인 기상 드 높이는 위인들도 생각보다 많다. 국. 영. 수. 과학. 예체능, 전과목에서 우리처럼 인류 역사에 매우 뛰어난 민족은 드물다.


아시는가?


대한의 아들들이  미국 고등학교 졸업할 때 우수 학생 메달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 한국에서 평생 시험만 치던 영어 초짜 유학생들은 얼마나 성적이 좋은지. 걸출한 외국 기업 안에 Korean American이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위대한 나라 대한 국민이라 그렇다.


참되게 이기는 법을 조금만 수정하면 한국의 아이들은 여기서도 해외서도 인류를 이끌어갈 미래들이다.

이처럼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런 역병의 어려움은 분명 이길 것이다.


우리의 성숙한 새로운 모습을 이제 많이 느낀다.


지도자를 응원하고,

실무자를 격려하고,

덕담 찾아 기사 쓰고,

희망 여론 조성하고,

불평, 원망 말고 용기와 칭찬으로

우리 안 낙천성 회복하면

코로나 아니라 고질라 라도 이기고 넉넉할 것이다.

 

나는 요즘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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