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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27. 2020

강자는 약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아내는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결론이 뭐냐고 묻는다. 이건 내가 젊을 때 그녀에게 쓰던 수법이다. 내 결론은 "그것"을 사고 싶다는 것이 아내는 "그것"을 사지 말라고 한다. 때가 어느 땐데 그런 사치와 낭비를 계획하는지 답답하다고 말한다.  우리 집의 강자는 아내고 나는 약자다.


귀담아듣다 : 동사/ 주의하여 잘 듣다.  표준국어대사전


강자가 되면 약자들이 경청한다.  시시한 이야기도, 안 웃기는 농담에도 반응한다. 나는 오랜 세월 강자로 살아오다 요즘 약자로 산다. 이제 부하는 마누라 한 명인데 겉으로 그녀가 부하 같지만 남들 앞에서나 그런 행세 하고 집에서 사실 내가 부하다. 커피를 만들어 허리를 굽히고 신하처럼 해보았다. 그녀가 소리 내어 웃는다. 왕권을 회복한 여왕의 미소에 개도 같이 웃는다. 그 개도 내가 섬길 대상이다. 그 개는 소파에서 물 달라고 입을 날름거리면 시원한 물을 컵에 가지고 가야 한다.  "야, 네가 와서 먹어!" 이 말 떨어지기 무섭게 " 애가 좀 달라면 갖다 주면 안 돼?" 강자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집은 개판이다. 그래서 나는 미국 집에 잘 안 간다. 내 한국 연구실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연인이나 가족 중에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 같다.


나는 평등을 외치는 편인데, 미국이 좋은 이유는 평등에 기초한 사회라서 그렇다.  인종차별, 빈부격차, 계급사회, 힘의 논리에 의한 서열은 그곳도 강하게 존재 하지만 강대국의 다양함과 개인주의가 균형을 이룬 것 같다. 트럼프가 그 사회를 부수고 깨 부셔도 국가가 생존하는 이유는 건강한 시민 정신과 평등한 시대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남아 있어서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죽었다.


 청천벽력에 마음이 처절하게 찢어졌다. 집에서 6시간 운전해서 그에게 가야 했다. 정신도 없고 준비도 없이 검정 정장 한 벌과 가방 한 개 급하게 싣고 하이웨이를 미친 듯이 달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운전이 힘들었다. 그날은 나도 죽고 싶어 속도나 주변 차량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나의 베스트 프랜드였다. 아니  내 마음에 들어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죽음은 믿을 수도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해맑은 미소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였다. 무고한 젊은이를 죽도록 방치한 신의 죄에 대해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친구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 911이 응급실에 실어갔지만 뇌사상태였고 며칠 뒤 생명 장치를 제거하자 바로 사망했다.


친구가 죽기 전 내가 살던 동네 지인 한분도 돌아가셨다. 그는  죽기 전날 나와 차를 마시며 담소했었다. 다음날 부인과 가게 물건 하러 타주로 가다 차에 문제가 생겨 한적한 갓길에 차를 세워 손보던 중, 뒤에서 달려온 트럭에게 부딪혀 현장에서 남편은 즉사하고 차 안에 있던 부인은 온몸이 심하게 부서져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 분의 장례 때문에 마침 죽음에 분노하던 참이었다. 그분은 성실한 기독교 신자로 성품도 온화하고 이웃에게 칭찬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죽은 내 친구는 목사였다. 집안 대대로 목사 집안이었고 친구도 성실하고 사람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하던 친구였다. 게다가 친구 나이는 40대였다.


친구에게 달려가길 1시간쯤, 어두워진 도로에서 요란한 경광등이 번쩍거렸다.

 

 미국 경찰은 엄청 강자다. 사람에게 총도 쏠 수 있고 티켓 한 장 던지면 벌금 아니라 귀찮은 법원에도 가야 한다. 변호사 사서 돈 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몇 번 과속으로 재판도 받아보고 벌점 없애려 지루한 교육도 받아봐서 경찰 앞에선 설설 긴다. 몸을 낮추고 약자 코스프레를 해야 행운이 따르면 싼 티켓으로 받아낼 수 있다.


" Sir! 과속이야, 면허증 and 등록증 Please"


 "Sorry, 친구가 방금 죽었어, 정신없이 가느라......"


그는 내 면허증을 받아 형식적으로 보더니 작은 플래시로 내 차 안을 비춰 살펴보았다. 차 뒤에 검은색 정장.  옷을 잠깐 보더니 면허증을 돌려주며 진중하게 말했다.


"유감이다. 조심해 운전하고 장례식 잘 마치고 와"


그 말을 하고 갑자기 차렷 자세로 아주 느리게 손을 올려 나에게 경례를 했다.


 나는 그를 보며 울컥했다.  


목례로 인사를 받았다. 그가 떠나고 나는 오랫동안 그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경찰이 애도해 주자 참았던 마음이 북받쳐  갓길에서 한참 소리 내어 울었다.


 경관은 나의 말(친구가 죽었어)을 믿고 경청하고 위로해 주었다.

 그 감동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았다.



강자는 약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강자는 약자를 강자로 상대한다."
당신이 만약 자신을 약자라 생각하면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고
당신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강자가 주위에 있다면
그는 사실 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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