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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10. 2020

우리 재혼할까요? II

엄마는 사귀는 남자가 있다고 소녀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외동딸인 내가 아빠 없이 혼자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모습이 싫다고도 했다.

그 사실  하나 만은 아닌 듯싶고 사랑하는 딸에게 좋아하는 사람을 소개하고 싶은 것일 게다.


엄마가 아빠랑 이혼한 지는 2년이 지났다.  


아빠는 성격대로 정확히 둘의 재산과 지나온 시간들을 반으로 갈랐다. 물론 엄마가 아빠를 먹여 키워서 지금의 아빠로 만든 것은 계산에서 빠졌다. 하마터면 이혼 법정으로 갈 이혼의 조건들은 엄마의 양보로 합의되어 협의 이혼으로 두 분의 동행은 막을 내렸다. 


나는 부모님이 이혼한 다음 해 대학에 들어갔다. 엄마와 나는 조그만 아파트를 전세 얻어 부부처럼 알콩달콩 살았다. 아빠가 사라진 우리들 동거는 무척 행복했다. 엄마는 원래부터 성품이 조용하고 사려 깊은 타입이었다. 

어려서부터 그 성품으로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의 일손을 도우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에 나와 2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누구를 돕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다.


엄마는 그렇게 일찍부터 직장생활을 하다 아빠를 만났고 아빠는 열정과 야망을 가진 청년이었다.

아빠가 군대를 제대하고 엄마 다니는 회사에 임시직으로 잠깐 근무할 때 둘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엄마의 사려 깊은 모습에 감동받아 사귀기 시작했다고 하나 둘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다. 속된 말로 엄마는 아빠를 업어 키웠다. 아빠는 우리나라 최고학부에서 화학생명공학을 전공했다. 학부를 마친 후 오사카 대학에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일찍부터 아빠의 꿈은 대학교수였고 미래에 뜨는 유망직종을 예상해 자기 관심 끄는 일 보다 오래가는 직업을 선택했다.


아빠의 일본 유학 동안 엄마는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며 뒷바라지했다. 아빠 집안은 도시 평민이었고 엄마는 빈농의 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야망 가득 찬 아빠의 등장이 좋았지만 아빠 전공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박사학위 수여식 사진을 보여줄 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아빠는 학위를 받자마자 엄마와 결혼했다. 그동안 뒷바라지 해준 엄마를 존중했다. 하지만 그들이 결혼 전에 만난 시간은 신혼 초 몇 달보다 적은 시간이었다. 어쩌면 엄마는 아빠의 야망을 좋아했고 아빠는 엄마의 경제적 후원을 좋아했다. 둘의 결혼은 서로의 보상을 계약으로 묶어놓는 적법한 절차였다.


아빠는 출신 대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워낙 연구실적이 좋아 학교는 아빠를 모셔갔다. 아빠는 그것을 자주 자랑스럽게 어릴 때부터 나에게 들려주었다. 공부 잘하면 착한 세상이 너를 착하게 대우한다는 말이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를 몰입하게 하는 과목만 잘했다. 내 성적은 들쑥날쑥했다. 선생님은 상담 할 때마다 자주 "느그 아부지 좀 닮아라"라고 자주 말했다.  


완벽한 조합 같은 부모님 결혼이 난파선을 타게 된 것은 아빠의 주도적인 성격과 일중독에서 시작되었다.

아빠는 생명을 연구하지만 가정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유치원 시절 아빠는 그 흔한 작은 공연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 잘난 우리 아빠는 그 시간 학교에서 생명을 연구하고 계셨다. 작은 생명, 나는 그동안 엄마품에서 엄마 밥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고 엄마 밥은 항상 맛있었다. 

아빠는 정교수가 되더니 더 큰 야망을 품었다.  더 큰 야망은 "남들처럼" 혹은 "남들보다 나은" 삶을 의미했다. 


" 당신도 요리 학원 좀 다녀, 알지?  민 교수 와이프 tv 방송도 하잖아?"   


아빠는 민 교수 댁에서 성대하게 차려진 가든파티를 회상하며 엄마의 청국장을 타박하고 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아빠는 규모 있는 파티에 엄마를 데리고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일개미 지 파티 개미는 아니었다. 엄마는 키가 작고 얼굴만 예쁘다. 나이가 들어 어떻게 차려입어도 짧은 것은 커버가 안됐다.

엄마는 파티에서 간드러지게 "호호호, 그러게요" 도 못한다. 교수들의 지적인 대화에도 끼지 못했다. 


" 요즘 우리 사회에 작동하는 엔진이 문제예요, 여자로서 홍여사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아빠 논문 지도 교수였던 원로교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엄마는 당황했고 할아버지처럼 모르는 것이 많은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훗날 엄마는 우리 둘이 아주 행복할 때 이 사건을 들려주며 울었다)  무거운 침묵이 몇 초간 흐르고 엄마의 무식을 들키기 싫은 아빠는 " 선거를 잘하면 엔진 문제가 해결되겠죠" 하고 얼버무렸다. 그날 집에 돌아온 아빠는 적당히 술에 취해 불쾌한 기색을 나에게 표현했다. " 아빠 목마르다, 물 좀 가져와!"  그날 엄마는 기가 죽어 있었다.


아빠는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유능한 삶이라고 착각했다. 그런 점에서 아빠는 교수라는 직업의 가면이 자신이라고 착각했다. 아빠는 현금 인출기에서 출금도 할 줄 모르고 인터넷으로 계좌이체도 못한다. 가족이 모여 대화하는 법은 모르고 연속극 보는 엄마를 경멸한다. 집밥보다 요리를 좋아하고 언제부터 부자 행세를 배웠는지  값싼 소주를 제일 좋아하면서 비싼 와인을 찾는다.   아빠는 일에 유능하고 삶에 무능했다. 


아빠가 사라진 집이 평화를 되찾았다. 엄마의 청국장은 더 높은 소리를 내며 끓고 우리 집 새 식구 코카스파니엘 깐돌이는 식탁에 앉아 자기 먹을 것을 함께 기다린다. 교통이 좀 버겁지만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세심하게 배려한 우리 모녀의 모험으로 한강이 내려 보이는 덕소에 전망 좋은 아파트를 구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그곳에서 다시 만들어갔다. 소중하게 간직 못한 시간의 아쉬움을 털어내고 우리는 일상을 기억하기로 했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밍밍한 것들이 오개닉 organic 자연의 맛이듯 건강한 삶에 억지스러운 인공이 첨가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일상을 즐기기 시작했다.


효험이 제법 있었다. 마음 상처는 놀랍게 치료되기 시작했고 다소 무료할 것 같은 일상은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엄마는 혈색이 밝아지고 난 키가 좀 더 자랐다. 엄마의 만성적인 신경성 위염도 말끔히 나았다.


우리와 깐돌이는 웃는 시간이 많아졌다.  깐돌이는 유기견이다. 그가 우리를 가족으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 틈에 사는 생명은 사랑을 먹고 건강한 생명으로 금방 자랐다.  


그렇게 단란한 시간이 흐르다 엄마가 소개한 그 남자 이야기는 정말 놀랍고 특별했다.


남자는 두 아들을 데리고 사는 싱글대디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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