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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11. 2020

우리 재혼할까요? III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나이브 naive 하다고 하는데 정확히 틀린 말이다.


조금 모자라 보이는 것. 그것은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이다. 전처에겐 그것이 멍청한 놈으로 각인됐지만 그건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실책이었다. 사실 똑똑한 나를 잘 알아봐 주는 여자를 만났더라면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인정받으며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다. 


후배에게 2억을 사기당하고 나의 창업의지는 완전히 꺾였다. 대기업 근무할 때 나의 기획능력은 최고여서 이대로 자영업으로 가기엔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따지고 보면 대기업 퇴직이나 창업 사기도 운명이라 생각 들었다. 지난 시간들은 지나간 시간에게 영향을 주고 다가올 시간은 순환하며 시간의 알고리즘에 의해 무한 반복되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론 인생이 꿈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다른 차원 어딘가 에서 하얀 침대에 잠들어 있고 지구에서 살아가는 꿈을 꾸고 있는 것 말이다. 뭐 상상은 자유니까. 


그렇게 사기사건을 기점으로 이혼당하고 함께 살게 된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 일부를 내게 지원해 주었다. 전처는 아이들 양육비로 일정액을 매달 송금했다. 이전처럼 넉넉하지 않지만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다시 창업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기대가 촉망되는 바이오 쪽 일이었다. 그쪽 연구실적이 좋은 친구 아이템이 핵심이었다.  나는 투자유치와 기획을 맡았고 이것이 성공하면 단번에 재기에 성공할 것 같았다. 




 그렇게 일에 매달려 살다, 사무실 근처에 백반 잘하는 집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음식이 좀 옛날식이라 기름진 것과 배달 음식에 젖은 아이들이 잘 적응하지 못했다. 나는 집밥이지만 좀 정갈하고 요리 같은 느낌의 한식을 좋아한다. 이 집이 바로 그런 집이었다.  식탁이 한 여섯 개쯤, 규모는 작았지만 메뉴는 알찼다. 특히 순두부찌개 정식과 청국장은 일품이었다. 그밖에 다른 백반 메뉴와 고기 요리들이 있었지만 나는 항상 청국장을 먹었다. 더군다나 여기 올 때마다 가장 마음을 끄는 것은 내 또래 같아 보이는 홀 서빙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키가 작고 얼굴도 작고 눈은 아주 크고 주문받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관심 없는 척하며 수시로 틈만 나면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다. 이런 데서 일할 여자 같지 않아 보이는데 남편이 실직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엄해 보이고 머리를 빡빡 민 주인아저씨는 카운터에 있고 부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주방을 지켰다. 그녀는 홀 서빙을 주로 하며 들락거렸고 주인아주머니와도 친해 보였다.  나는 손님 때문에 소란한 틈을 타 계산하다 말고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청국장이 너무 맛있어요, 누가 이런 요리를 만든데요?"  


주인아저씨는 갑작스러운 음식 칭찬에 썩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닥여 저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분 솜씨야, 아줌마가 반찬가게 주인이니까 필요하면 거기 연락처도 줄게" 


착한 정보를 얻었다. 그녀는 식당 안주인과 언니 동생 하는 사이로, 음식 레시피를 전수해 주려고 파트타임에 요리도 도와준다 했다. 그녀의 신상 정보를 얻게 된 그날, 왠지 기분이 마구 좋았다. 보물섬 지도를 얻은 기분이랄까? 이런 나의 모습 보면 내가 진짜 나이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있다. 이 비상시국에 여자에게 관심을 갖다니, 게다가 이혼한 지 몇 년 됐다고? 아, 몰라 이혼한 지 몇 년이 중요한가? 이혼하고 내일 재혼하든 혼자 살든 다 내 인생 아닌가? 




그녀와 말을 섞은 것은 업무가 많아 2시 넘어 늦은 점심을 하러 간 날이었다.  그날은 주인아저씨가 안 계셔서 그녀가 계산대를 지켰다.


 "반찬가게 하신다면서요?"


 "네?"


그녀가 놀라는 눈치로 나를 쳐다보았다. 


" 아 네, 청국장 맛있다고 하니까 아저씨가 알려주셨어요"


그녀가 부끄럽게 미소를 띠고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이런, 아름답다. 그녀 눈동자에 내 심장 박동이 살짝 빨라지는 느낌을  혼자 알고 있었다.


 "반찬가게 전화번호 주시면, 한번 찾아 갈게요" 




 반찬가게는 사무실에서 버스 타고 한참 가는 거리에 있었다. 

"어서 오세요" 젊은 학생이 나를 맞았다. " 저기 주인아주머니는?" 앳된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 엄마!  손님이 찾아요" 


조금 뒤 그녀가 주방에서 나왔다. 베이지 블라우스에 감색 바지, 집에서 주부들이 좋아하는 노란 바탕에 작은 기마병 무늬가 담긴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식당에서 볼 때보다 우아하고 품위 있다. 거기서 종업원, 여기서 사장이라 그런가? 앞치마 때문인가? 아니면 뭐......


그날 이후 그 먼 거리 반찬가게를 자주 들락거렸다. 핑계는 반찬과 청국장 재료 사는 것이지만 그녀를 보는 것이 솔직한 목적이었다. 식당과 반찬가게를 합치면 일주일에 네 번가량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라보는 것이었다.


냉장고에 반찬이 가득 차기 시작하자 어머니가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내 음식이 입에 안 맞니?" 




낯이 익어 서로에게 어색한 느낌이 사라질 무렵 오래된 방식으로 다시 용기를 냈다. 


"커피 정말 잘하는 집 아는데, 혹시 커피 좋아하시면 같이 가실래요?"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 저 커피 정말 좋아하는 데 어떻게 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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