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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11. 2020

우리 재혼할까요? IV

 내 이혼 소식을 듣게 된 친구들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 어머, 너 같은 현모양처가 말이 되니 얘 "


나는 현모양처였다. 대부분 남자들과 헤어지는 원인이 돈문제 아니면 여자 문제다.

전 남편은 실직하거나 사기당해 가족을 부양 못할 돈문제도 없었고, 일에 빠져 여자 문제는 더더욱 없었다.

솔직히 그는 자기 닮은 여자, 자기 딸을 제일 좋아했다. (불행스럽게 그 딸은 아빠를 제일 싫어하고)

돈문제 여자 문제없는데 이혼하는 것은 그  두 가지 문제가 없는데도 문제인 것이 제일 큰 문제라서 그렇다.


내가 반찬가게 차린 것은 전업주부로 살면서 경력단절 때문에 취직 엄두를 못 내는 것도 있지만 전남편에 대한 복수심도 있다. 그것은 청국장이다. 건강에 좋고 맛도 좋고 냄새만 조금 참으면 가장 좋은 토종음식 청국장을 증오한 남편에게 맛 좀 보여주고 싶었다. 청국장 팔아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


게다가 착한 반찬 만들어 팔면 음식이 서툰 젊은 주부들이 가족들에게 맛난 음식 먹일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아 시작했다. 가게 이름도 "청국장처럼"이라 지었다.  딸은 청국장 가게 같다고 싫어 했지만 반찬가게 인걸 사람들이 알면 그럴 리 없다고 고집하며 지었다. 전 남편의 반찬 타령을 고스란히 반찬가게로 갚아주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 지가 박사 학위, 교수 자리를 거저 얻은 것인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박사가 무슨 벼슬인가?

대학생 선생 이면서 장관처럼 행세했다. 일찍이 몰랐던 남편의 욕망을 살면서 알게 되었고 또 불편했다.

일중독 너머의 남자들 욕망이 가정에 심긴 사랑보다  더 큰 욕구라는 것도 살면서 알았다.


 그가 유학할 동안 내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송금했는지 그는 모른다. 아니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는 에버랜드 사파리 사자처럼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했지 나중에 은혜 갚는다는사무적인 말 말고 "애쓰고 수고했다"는 감성적 표현은 절대 하지 읺았다. 그때 따뜻하게 "수고했어, 고마워 "라고 만 해주었어도 난 울었을게다. 그는 끝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사학위 받을 때는  조커처럼, 미친놈 처럼 목젖을 보이며 활활  웃었다.


나는 남자와 다시 새 출발할 계획은 아주 없었다.


남자 사람에게 질린 것도 있지만 결혼이라는 인간 굴레가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 그렇다.

아마 다시 태어 나서 선택하라면 남자로 태어나거나 미혼으로 살지 모른다.




 이 남자는 조금  달랐다.

꼭 재혼 상대가 아니라 남자 사람이지만 오랜 친구 같았다. 수줍어하는 모습, 겸손한 태도로 내 말을 경청하는 것도 전남편과 너무 달랐다. 그는 커피를 미끼로 날 만나고 싶어 했지만 사실 나도 그가 궁금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가 정말 좋아서 나에게 데이트 신청할 때 커피 먹자고 한 게 좋았다. 만약 "우리 술 한잔 하실래요" 했다면 "노우"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는 싱글대디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두 아들이 있고 지금 창업 중이라고 가감 없이 자기를 소개했다. 그냥 첫인상이 솔직하고 깨끗했다. 물론 저런 훈남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 전 남편은 무슨 용사처럼 생겨서 울퉁불퉁 몸매가 거칠어 보였는데 이 사람은 되게 여성스럽다. 아니 젠틀하다가 맞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약간 어수룩해 보이는 것이다.


 그와 커피숍에서 오래도록 이야기하면 정말 많이 웃었다. 웃겨서가 아니라 좋아서 웃었다. 사람이 좋은 감정으로 함께 있을 때 많이 웃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도 딸이랑 깐돌이도 많이 웃지 않는가?

교감과 공감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구나 하면서 그가 말하는 입을 쳐다보았다. 자기가 평소보다 말이 많은 것 같다고 하지만 그가 하는 많은 말이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간 그 커피집은 커피가 정말 맛있었다. 적당히 로스팅된 커피의 깊이와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잘 배합된 랜딩의 조화가 돋보였다. 나는 커피전문점에 가면 커피 만드는 것을 유심히 쳐다본다.  커피를 얼마나 넣는지 탬핑을 어떤 힘으로 하는지 나오는 시간을 잘 세팅했는지 바라본다. 그리고 아메리카노 맛보고 맛이 좋으면 반드시 에스프레소를 한잔 더 시켜 이번엔 향을 맡고 조금씩 음미한다. 그래서 나는 커피 한잔이 아니고 커피 두 잔을 한다. 이 남자 맛을 아는 사람이다. 여기는 에스프레소 시킬만한 수준이라 좋았다. 미안한데 이 시점에 왜 전남편이 생각나는지 모르지만 그는 커피를 못 마셨다. 그 쓴 음료를 왜 마시냐고 했다. 그는 그 대신 그 쓴 술을 좋아했다.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 보면 참 안 돼 보인다. 앞으로 커피 열매 멸종의 시대가 오기 전에 커피는 죽도록 마실 작정이다.


 그렇게 그와 데이트처럼, 옛 친구 만난 것처럼,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 일주일에 한 번은 제가 커피 사도록 허락해 주실 거죠?"


내가 많이 웃었더니 그는 자신감이 꽉 차서 내가 마치 허락할 것 같은 태도로 말했다.


"아니요..."


" 다음엔 제가 살게요" 놀란 그가 많이 웃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정해서 만났다. 만나면 걷고 커피 마시고 웃었다.  서로 많이 웃었다.

딸은 지금 우리 만남을 모른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이혼한 것도 아직 모른다. 어쩌면 돌아가실 때까지 말 안 하고 지나갈지 모른다. 사실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힘들게 해드리고 싶지 않다.


 대화를 많이 하면서 알았다. 일에 유능하고 삶에 무능한 사람은 말이 없다는 것을.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하거나 달변가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 공감해 주는 말을 한다는 것을 이 사람 보고 알았다. 그는 전처 하고는 말하면 싸웠다고 했다. 그래서 이처럼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스스로 신기하다고 한다. 그의 말인즉 내가 잘 들어주니까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난 재미있고 유익해서 듣고 그는 내 관심에 반응해서 말을 많이 한다.


그는 또 박식했다. 전남편은 자기 전공만 알지 인생철학이나 가치관 이런 거 없었다. 이 사람은 인생관이 분명하다. 대충 흘려 넘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배우는 것이 살면서 제일 좋다고 했다. 그에게 배움이란 성공이든 실패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 모험이 재미있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혼을 실패라고 말하지만 자기는 아픈 배움이었다고 고백했다.


주말마다 그를 만나는 것이 즐거워졌다.  요즘 그를 만날 때마다 화장을 정성껏 하기 시작했다.

(어머 얘가 미쳤나 보다.)

   

객관적인 안목을 위해 우리 딸에게 그를 보여주고 싶었다. 청국장에서 건진 엄마 친구라고.


얘가 그 말을 알아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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