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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25. 2020

반말 하지마!

한국이 많이 변했다.


잠깐 여행으로 와서 못 보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자 하나씩 더 보이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과거보다 더 잘 생기고, 더 똑똑하고, 더 예의 바른 것 같고 공무원들은 이전보다 친절하고 경찰도 시민 곁으로 조금 다가온 느낌이다 (물론 이들의 세대교체가 원인이겠지만) 또한 건강한 노인이 많아진 것도 특징이다. 이런 여러 가지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거문화의 변화다. 과거에 비해 주거공간이 공원등 녹지와 연계되어 크게 돋보인다.


그래서 나는 동생집에 가는 것을 즐긴다. 도시에서 좀 벗어난 그곳은 아파트뿐 아니라 공원 또한 청결하다.  아파트는 분리수거하는 곳부터 관리하는 직원, 입주민까지 예의 바르고 깨끗하다. 그곳은 참 좋다. 또 동생집에 가면 애견이 있어 좋다. 코카스파니엘 이 녀석은 집에서 "개 상전"이다. 나는 강형욱 훈련사 발음을 흉내 내며 훈련시킨다. 그리고 녀석을 "개무시"한다. 그러나 우리 둘은 서로 많이 좋아한다.


녀석과 산책은 늘 즐겁고 난 자주 노래 부른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로이가 눈 비비고 일어나 냄새 맡아보다가, 똥만 싸고 가지요 ~ " ( 때마다 가사가 달라진다. 물론 작게 조용히 부른다. ) 그러면 우리 강아지는 나를 한번 쓱 보고 눈짓한다 노래 바꾸라고, 훗 그리곤 꼬리를 살랄 살랑 흔들다 똥을 누신다. 한마디로 이 녀석이 내 노래 실력을 알아본다. 똥싸는 신호음으로.


아름다운 산책길에 정말 못된 것이 하나 있다.  배달 오토바이다. 우리 개는 움직이는 물체에 예민하다. 원래 새를 물어오던 사냥개라 자기도 왜 그러는지 모른다. 오토바이 소리가 나면 사납게 짖으며 달려들고 자전거도 빠르면 그렇게 한다. 아이가 뛰어도 그런다. 그래서 산책마다 긴장을 달고 산다. 하루는 아파트에 "오토바이 지상 출입금지 "라는 현수막과 안내가 붙어 있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고속으로 아파트 안을 달린다.  위험했다. (배달 오토바이 사고를 몇 번 보고 이 나라는 저 문제 해결 안 하면 피차 많이 죽겠구나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야! 아파트에서 달리지 말라고!!" 그가 내 악다구니를 본 것인지 되돌아온다. 사과하려는가 보다, 생각하는 순간 걔가 헬멧을 벗고 건방지게 말했다. " 아저씨! 근데 왜 반말이야?" (순간 속으로 "저 미쿡 살람이라 존댓말 몰라요" 하려다 개그 같아서 참았다) 그다음 내 대사가 " 그러는 너는 왜 반말하는데"인데 내 대사를 놓쳤다.  그는 예상과 달리 30대 후반, 40대 초쯤? 돼 보였다. 아무리 비교해도 내가 좀 더 들어 보이는데 선글라스에 골프 모자 써서 나를 제 또래로 보고 화가 난 듯했다.(나이나 반말이 아니라 위험한 위반이 문제인데 그 사실은 없어지고) " 그럼 애한테 말 놓지 존대하나?" 하고 내가 유치하게 상대했다. 나는 가끔 내가 한심할 때가 있다. 흥분하면 싸움을 잘 못하는, 그래서 누구와도 싸우면 안 된다.


미국에서 내 별명은 쌈닭이다. 우리 애들이 이 별명을 붙여준 것은 내가 미국 애들이랑 자주 싸우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 그런다 훗) 하루는 애들이 한참 어릴 때 가족들과 아침을 즐기러 미국 식당에 갔다. 난 근사한 아침식사를 무척 좋아한다.  기분 좋은 아침에 웬걸, 백인 종업원은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인사도 없이 거칠게 "쿵" 하며 물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뭐 먹을래?" (종업원 답지 않은 태도와 어조로)
"좀 기다려, 메뉴 줘봐, 정하고 부를게" (기분 나쁜 표정과 Please 뺀 불편한 어조로 )


조금 뒤에 다시 불러 주문을 마쳤다. 커피를 먼저 가져다주는데도 탁자에 "쿵"이다. 아내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쟤, 우리 무시하는 거 아냐?" (동양인은 무례에 민감하다) 매니저를 불렀다. 나이 지긋한 중년 백인이 다가왔다.  "어쩌꾸 저저꾸 이차 삼차 합이 오차고. 그래서 쟤 좀 바꿔줘 나 쟤한테 서빙받고 싶지 않아" 특이한 요청에 매니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괜찮다면 자기가 대신해도 되겠냐고 했다. 허 참, 그것도 미안하긴 한데 이왕 폭탄 터뜨렸으니 그러라고 했다.




나이 지긋한 중년 백인 매니저는 식사 내내 하얀 수건을 왼손에 두르고 우리 옆에 서 있었다.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면서...... 지금 생각하니 그 행동은 내 발칙한 웨이터 교체 요구에 조용히 저항하는 의있어 보였다. 뭐 그러나 말거나 나는 그때 흐뭇하게 미국 남부에서 식사 때 대기하는 흑인 노예 둔 기분으로 영화처럼 식사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용~하다. 원래 우리 애들은 밥 먹으면 기분이 업 up 돼서 노래도 부르고 말도 무지 많아지는데 그날은 아니다. 매니저는 식사 마칠 때까지 부동자세로 우리 곁에 서 있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작은애가 소곤거린다. " 아빠, 불편해" 나도 속삭인다 " 우짜니 이미 벌어진 일인걸"


한참 동안 식사를 마치고 평소보다 팁을 두둑이 놓고 식당을 나왔다. 밥을 먹은 건지 침묵을 먹은 건지 뭔가 먹었는데 망한 것 같다. 차에 오르자 드디어 아이들이 촛불을 들었다.


 "아, 미쳐. 아빠 때문에 숨도 못 쉬고 밥 먹었잖아?" "내가 뭐 잘못했는데" "그냥, 가만 내버려 두지 그걸 못 참아?" " 아니 버르장머리 없는 놈 행동에, 왜 내 돈 내고 그걸 참아?" " 아빠는 쌈닭이야!" "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니? " "한국 친구가 가르쳐줬어 걔 엄마도 쌈닭이래"

"......"


불의를 못 참는 나는 그날부터 쌈닭이 되었다. 솔직히 싸움은 잘 안 한다 귀찮아서.(그 대신 한번 붙으면 끝장 볼 때까지 목숨 걸고 붙는 편이다. 선배는 나보고 일제시대 태어났으면 폭탄 던지고 제일 먼저 죽을놈이라고, 좋은 건지 욕인지 )  아내와도 전운이 감돌면 말 딱 끊고 조용해진다. 그 순간 그녀는 내가 참는 걸 안다. 한국에 와서 사람들과 몇 번 부딪혀 한바탕 해보니 전투용 한국말이 많이 딸린다. (행패 부리는 취객 응징하다, 경찰서에도 다녀왔었다 아~) 그래서 자주 참고 그저 반려견과 산책할 때 노래 부르며 인격을 수양한다.

그런데 개를 위협하는 오토바이가 등장한 거다.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 상황이었다.


오토바이, 걔가 물었다. " 아저씨, 내 나이가 몇 개로 보여?" 갑자기 어리둥절 해졌다. 나이가 몇 개?  나 없는 사이 한국어가 개정됐나? "아, 몇 살로 보여" 곧 이해되었다. 대답을 해야 한다.  "몇 갠데?"......


내가 두고두고 웃는 장면이 하나 있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출연하는 배우 배성우다. 그는 영화에서 목욕탕 알바로 나오는데 잃어버린 돈가방 사건의 핵심인물이다. 분실된 돈가방을 훔쳐 목욕탕을 그만두고 나오면서 주인과 돈가방으로 실랑이 벌이는 씬에서 빵 터졌다.  "아이 씨,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나이도 어린놈(주인)이 왜 반말이야~" 좀  모자라 보이고 억센, 실제 모습 같아서 한참 웃었다.


오토바이 걔한테 내 말투는 배성우 같았다. 웡웡 짖는 우리 개와 물러서지 않는 배성우 같은 호기에 한번 쳐다보더니  "에이 씨" 하고 돌아선다.  상황 종료가 되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이건 뭐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고 내 행동은 교양 없고, 저 사람 브런치 구독자면 어떡하지? 별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한 번은 미국에서 타주로 이사할 때 불필요한 물건을 처분하려고 한국인 웹 사이트에 트레드밀 Treadmill(한국에서 러닝머신이라는)을 올렸다.  한국인 노년 신사 한분이 물건을 가지러 왔다. 초면인 그가 물건을 보더니 깎아 달라고 했다. 순간 기분이 상했다. 미국에서 에누리 라니? " 안 사실 거면 그냥 가세요" 내가 차갑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 아들이 한번 깎아보라고 해서 그런 겁니다. 그냥 가져 갈게요"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 들어와 물건을 옮기던 중 벽에 걸린 강연하는 내 사진을 보더니 " 제가 어디서 뵌 분 같았는데 000 선생님 맞죠? 그때 강연 잘 들었습니다."

아, 망했다. 나는 갑자기 냉담한 태도를 바꿔 " 네, 네 맞습니다. 아, 그러세요?" 친절에 굽신을 보태 얼굴에 미소까지 띠고 아양을 떨고 있었다. " 물건 잘 쓰시고 건강하세요~" 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간사한 놈.




걔랑 말다툼하고 며칠 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우리 개는 내가 잘 뛰어주니까 항상 신이 나서 달린다. 공원을 한참 달리는데 앞에 노인들이 지나간다. 우리 개는 달리는 물체가 아니면 얌전해서 노인을 지나쳐 뛰는데 마지막 노인 옆에서 갑자기 왈왈 두 번 짖었다. 뛰는 중이라 그대로 지나쳤는데 뒤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 야! 조심해! 아이고, 심장 벌렁거려 정말!" 죄송하다고 할걸 그랬나 생각하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오토바이 걔가 생각났다. "내 나이가 몇 갠데!"  확 뒤돌아서서 " 아줌마, 내 나이가 몇 갠데 반말이야?" 하려다 참았다.


엊그제 오토바이 걔한테 내가 소리 지를 때 그의 기분이 이렇겠구나. 나는 애들이 많고 위험해서 소리 지른 건데 아니 의롭다고 그가 틀렸다고 소리 질렀는데 그때 얼마나 기분 나빴을까? 깊이 생각했다.  내 나이가 어쩌고 논쟁의 핵심은 나이나 반말이 아니라 불쾌한 태도에 있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초고, 교정, 퇴고의 순서를 거친다.

퇴고推敲 [퇴고/퉤고]:명사,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음. 또는 그런 일.

인생도 말과 행동을 퇴고하듯 돌아보면 허점 투성이다. 지성인 이란 이런 자신의 지난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여 고치고 다듬는 사람은 아닐까.




건장한 청소년 몇이 오피스텔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게다가 내가 지나치는 순간 코로나 비말이 가득해 보이는 침을 뱉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저기, 학생! 여기서 이렇게 담배 피우면 안 되죠? 침을 여기다 뱉으면 사람들이 불편하고. 개학 안 했나 봐요~" 아, 무슨 부산사람이 서울말 흉내 내는 기분이다.  


" 오빠, 사람들과 다툴 일 있을 때 영어로 말해!  머리가 커서 쭝쿡살람 인 줄 알걸?"
" 너, 이리 와봐 오늘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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