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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un 14. 2020

처음처럼

처음이 주는 짧은 감동


제목이 술 이름이라 애주가 께서 들어오셨다면 휘리릭 바로 퇴장하시면 된다.

오늘은 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처음"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해외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은 그곳에 사는 가족 때문 이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 때문일지 모른다. 아니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조금 오래 살아보기를 원했다는 것이 옳은 말일 것 같다.  일상을 벗어나면 나를 포위하고 때론 보좌하던 빠른 인터넷과 그곳에 접신하던 노트북과 휴대폰의 문명을 포기하고, 무것도 없는 새로 만날 지루한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분명 중요한 숙제였다. 하지만 나는 낯선 그것을 선택했다. 혹자는 배가 불러 여행이나 다니는 한량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 여행은 산적한 문제를 그대로 짊어진 채 떠나는 출장과 같았다. 휴가는 최소한 머리를 식힐만한 여유가 생길 때 떠나는 것이니 말이 여행이지 업무의 연장이었다.


이번엔 사진 찍기나 쇼핑하는 일보다 낯선 곳의 자연과 최대한 동행하며 일생에 한번 일지 모를 낯선 삶을 극대화시키는 일에 포커스 focus를 맞추어 준비하였다.  또한 이 여행은 각자 떨어져 살던 가족이 객지에서 오랜만에 공동체를 이루는 삶의 처음 기록이기도 했고 서로 다른 생활 습성을 가진 우리들이 한 공간을 다시 셰어 share 하는 서툰 경험이기도 했다. 그렇다, 적어도 나에게 여행은 이젠 다른 시각과 다른 차원으로 구상하고 꿈꿀만한 나이가 되었다. 더불어 문제를 안고도 여전히 삶을 즐기며 헤쳐갈 수 있는 인생 실험 이기도 하였다. 삶을 즐기는 것은 행복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즐겨야 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여행은 시작되었고 기대한 대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아슬아슬한 인간관계의 고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운명의 신은 그 고비를 도와주었다. 문제가 생길 때 작은 변수들이 스스로 작동하며 갈등이 봉합되고 시간은 낯선 환경에서 낯설게 대립하는 인간의 허약함을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발견한 새삼스러운 진리가 바로 처음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처음 것은 그 처음을 지나는 순간 그 매력과 호기심이 다 증발해 버린다. 두 번째부터 처음의 환상과 감동은 다시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딱 한 번분인 처음의 경험은 잘 기억하고 간직해야 한다는 생각을 얻었다.  


나는 어릴 때 맞벌이를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어머님은 의상실을 경영하셨고 제법 규모가 있는 덕분에 우리 집에는 일을 배우려는 누나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집에 들어오면 기술자 외엔 시다로 일을 시작했다. 시다는 수습공을 뜻하는 일본어, 보조원(下張り)에서 유래된 속어다.  그때 시다로 들어온 누나가 있었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지인의 소개로 기술 배우러 온 어린 여자였다.  그때 어머니는 일에 치이고 나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결핍되어 있었다. 시다 누나는 아들만 둘인 우리 집에 친누나 같은 귀한 존재였다. 그땐 내가 일곱 살 때쯤이었다. 누나는 밥을 해서 먹여주고 장 보러 가는 길에 어김없이 내 동생은 목마 태우고 함께 손을 잡고 시장을 돌았다. 누나는 너무 예뻐서 지나가는 동네 총각들이 그녀에게 한 마디씩 던졌다. 추파를 던지면 누나는 멋지고 당당하게 대꾸하며 남자들을 물리쳤다. 어리지만 누나는 그렇게 기백이 있었다. 누나는 여름에  늘씬한 몸매가 드러나는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었다. 아마 누나를 다시 찾으면 그녀의 실제 모습은 내 어린 기억과 무척 다를 것이 틀림없지만 내 삶에 처음 들어온 누나는 내게 아름다운 여성의 인상과 기억을 남겼다.  하늘하늘한 원피스 입은 여성은 아름답고 강인할지 모른다는 선입견을 가질 만큼.


 처음 것의 성질을 이해하면 같은 것을 두 번째 만났을 때 식상함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처음처럼 살느끼려고 노력한다. 익숙해진 일상, 낡아버린 현실에 여전히 나를 생기 있게 살도록 하는 동력 가운데 하나는 처음을 간직하고 사는 것 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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