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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un 15. 2020

어려움이 던져주는 축복

"어렵다"는 것은 문제를 풀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 가장 가까운 것 같다.


대학시절 아주 중요한 물리학 시험이 있었다.  나는 밤새워 공부했고 시험문제를 만났을 때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예상문제를 외우고 연습해서 준비한 대로 문제가 나오면 B학점 이상은 기대할만한 시험이었다. 문제는 열 문제가 주관식으로 나왔는데 그날 나는 문제 앞에서 머리가 하얘지는 이상한 일을 경험하였다.  일 번부터 모르는 문제로 시작하여 어떤 것도 풀 수가 없었다. 연필을 놓고 머리를 감싸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숨소리마저 사라진 적막한 교실 여기저기 가끔 터져 나오는 한숨소리로 보아 예상 못한 문제에 동료들도 애를 먹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몇 분간 이 어려움을 극복하려 애를 쓰다 묘수를 생각해 냈다. 열개의 문제를 다 지우고 내가 공부한 예상문제 열개로 시험문제를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내가 아는 문제들로 답을 채워 나갔다. 불안한 시험을 마치고 며칠 뒤 교수님의 호출이 있었다. 근엄하고 자상한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내 이름을 한번 불렀다. " 뭐가 잘못된 것인 줄은 알지?"  "네, 밤새워 공부하다가 시험 때 머리가 하얘져서 그랬습니다"


교수님은 학생들이 예상하지 못한 시험문제를 일부러 출제해 학생들의 실력을 점검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대부분 60점 이하를 받았는데 너같이 특별한 경우를 지나칠 수 없어 불렀다고 했다.  "과락은 안 줄 테지만, 앞으로 이런 식은 용납 안된다, 알았지? " 나는 경고만 받고 시험을 넘겼다. (형평성의 문제 등 여러 말이 생각나겠지만 옛날에는 교실에도 낭만이 있었다. 교수 맘대로다)


평생 시험만 보고 살아온 것 같다. 그 시험들이 나를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시킨 걸까? 아니다. 나는 시험을 볼 때마다 시험에 들었다. 다행히도 내가 싫어하는 이공계 학부를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원부터 에세이를 쓰거나 인터뷰를 통해 시험을 보는 과목으로 바꾸었다. 한결 시험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인생이라는 무겁고 복잡한 시험문제를 매일 앞에 두고 어려움에 자주 빠진다.


인생을 처음으로 되돌려 뭐가 되면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생각해보니 하고 싶은 일이 두세 가지 떠오른다. 머리를 되감기 하여 어디부터 고쳐나갈까 생각해 보니 대학 전공 선택부터 잘못된 것이 생각난다. 그러다가 더 더 돌려보니 태어난 것부터 잘못이다. 부모를 잘못 선택한 것 같다. 훗 결론은 내 삶이 이렇게 오게끔 되어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 우리 강아지와 식물원 같은 곳에서 미로정원에 들어섰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강아지님은 줄에 묶여도 달리신다. 미로에 들어서자 우리 강아지는 역시 달렸다. 뱅글뱅글, 빙글빙글 뒤따라 가는데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녀석은 길은 모르고 보이는 곳으로 만 달린다. 몇 바퀴 돌다 보니 나는 미로의 원리와 출구를 알았는데 녀석은 계속 빙빙 돈다. 아무렴 개보다 원숭이가 낫고 원숭이보다 좀 나은 시져 ceaser(영화 혹성탈출에 나오는 대장 원숭이)가 나 정도니 나는 미로 문제는 금방 해결하는데 우리 개는 지능이 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난 녀석에게 말했다. " 야, 빙빙 돌아봤자, 길 없어 넌 개망신이야, 가자"


우리가 인생의 미로를 개척하고 헤쳐 가는 어려운 일에 개보다 나을까?   
나의 노력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얼마나 효과적일까?
지금 하는 노력은 내 삶에 어떤 가치로 작동할까?


나는 우연히 헨리라는 청년을 방송으로 알았다. 아주 오래전 군대에서 찍은 프로그램을 잠깐 보았는데 하도 오두방정이라 참 비호감이었던 청년이다. 그런데 최근에 그가 참여한 음악프로그램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다가 아 저 녀석이 음악 천재였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검색해 보았다. 중국계 캐나다 출신 가수. 흠 흥미롭군.  난 헨리에게 흠뻑 매료되어 그의 지난 음악을 다 감상하였다. 이 친구 물건이다. 그의 특징은 거침없는 자유로움이다. 한국에서는 "오두방정"이고 서양에서는 "개성이 강하다"는 평을 받을 젊은이다. 부러웠다. 서양에서 교육받은 연예인들의 특징은 자유롭다. 요즘은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자유롭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무언가에 갇혀 지낸다. 그것은 사회가 주는 암묵적 틀이다. 어려움은 자유로운 몸과 마음으로 힘을 빼고 접근하면 풀기 쉽다. 마치 야구선수가 안타를 치고 말 거야 하면 삼진아웃이고 힘 빼고 툭치면 안타제조기가 되는 것처럼, 인생도 힘 빼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힘 빼는 데는 어려움이 보약이다. 인생의 "어려움 수업"은 바로 "벼랑 끝에 몰리는 경험"이다.  간절히 준비하던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직장에서 해고되었을 때, 이혼을 마치고 법정을 나올 때, 감옥에 들어갈 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목도할 때, 생활고에 시달려 죽고 싶을 때, 외국에 이민 갔는데 직장을 찾지 못할 때, 부부 싸움하고 만취해 있을 때, 자살하려고 유서 쓸 때, 나열하면 끝이 없지만 인생이란 과목은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학교 공부가 무슨 소용이람? 종교? 인문학? 위로와 용기를 주는 책? 이 지점에서는 다 소용없다. 술, 담배, 마약도 몇 분 정도 어려운 문제를 가려주지만 어려움은 깨면 눈앞에 남아 있다.


트럼프로 태어나면 행복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그 사람 지구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중에 하나라고 본다. 김정은으로 태어나면? 이 친구도 히틀러만큼 불행한 사람이다. 종교의 교주가 되어볼까?  재벌은?


우리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 죽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특별한 사람들이 숨을 거둘 땐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하고 반추하는 사람을 자주 보았다. 인생 모두가 자기 생긴 대로 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 사랑하는 민항기 조종사 선배 한분은 전생을 믿는데, 나보고 전생에 고승이나 수도사였다고 말한다. 내 입에서 제법 무게 담긴 소리가 나와서 그러는지, 존경하는 내 선배는 아직도 내게 말을 놓지 않고 나를 최고로 대우해준다. 내 우정 리스트 선두에 적힌 선배처럼 전생을 사용해도 자기 해석이 있는 사람이 나는 좋다. 아무튼 삶의 어려움은 우리 인생에서 힘 빼는데 즉효가 있는 보약이다. 어려울 때 레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세속적으로 성공(인생을 꼭 성공할 필요는 없지만)이란 것을 한 사람들 대부분은 이 어려움 수업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낸 사람들이다.




인생의 어려움은 ' 옛다, 받아라 " 하며 축복을 던져준다. 무상이다.


산타가 선물을 던져주듯 축복의 박스 안에는 무진장한 선물이 담겨 있다. 어려움의 끝은 이 축복을 잘 받아 상자를 열어 보는 경험이 늘어날 때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인생역전은 이럴 때 일어난다. 어려움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어려움 끝에 역전이 안 일어나도 상관없다. 어려움을 풀어가는 시간도 축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처제 남편 여동생 (족보를 잘 모른다)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들어왔다. 우연히 그녀의 약혼자가 우리 동네 살고 있어서 비교적 소상하게 그들의 결혼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유복하게 한국에서 잘 자라고 대학을 마친 그녀는 미국에 대해 1도 몰랐다. 결혼을 앞두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는데 예비신랑의 빚 문제였다. 아무것도 몰랐는데 결혼을 앞두고 알아가다 보니 신랑의 학자금 대출이 문제가 된 것이었다. 신랑은 미국에서 자라 좋은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 가진 한국 남자다. 신부는 학자금 대출을 문제가 있는 빚이라고 오해한 것 같다.  미국 아이들 거의 전부 학자금 대출 빚 가지고 세상으로 나온다. 그것을 이해시키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결혼에 성공했다. 문제는 결혼식 끝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젊고 건강하고 잘생긴 신랑이 회사에서 갑자기 원인모를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신혼인데 사망한 것이다. 남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집무실에 계셨는가 관저에 계신 건가 도마에 오른다. 아무튼 결혼식 얼마 안 가 우리는 그 가족의 장례식을 지켜봐야 했다. 교회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젊은 미국 청년들로 가득했다.  장례식은 눈물바다였다. 난 그때 참 젊을 때였는데 나 죽으면 장례식장서 틀어줄 비디오 하나는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한 것 같다. "여기 오신 하객 여러분, 지금쯤 제가 죽어 없겠지요. 저는 가고 없지만 너무 슬퍼 마시기 바랍니다. 이게 결국 삶의 일부니까요." 내 말을 듣자 가족들이 발칙하다며 내 아이디어를 거부했지만 나는 아직도 이것을 만들어 볼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신랑은 죽고 신부는 시름에 잠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서부로 떠났고 생활고와 잠깐 결혼 생활이지만 죽음의 상실감으로 고통받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끝난 것 같던 소식은 몇 년 지나 드라마 같은 다른 소식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서부에서 부유한 청년을 만나 재혼에 성공했다는 소식. 웃음을 되찾고 너무 잘 살아간다는.  해피엔딩 지만 왠지 씁쓸했다. 


현대인에게 결혼의 성공 여부 결국 돈이라는 것, 결혼 계약은 항상 서로의 조건을 달고 있다는 사실 . 그래 그렇지 뭐, 다 돈이야 돈이면 뭐든 다 되는 게 인생이지, 그런데 돈 많이 가진 사람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돈이면 다인 줄 알아? 참 어쩌라는 건지 돈 가진 놈은 돈 아니라 하고 돈 없는 놈은 돈이면 다라고 한다.


문제 참 어렵다.


돈은 인생 의미가 아니다. 어려움처럼 우리를 성숙하게 하지도 못한다. 굳이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면 돈은 뱃속 깊은 장속의 나쁜 세균에 해당한다. 장속에 좋은 세균과 나쁜 세균이 싸우는 것처럼 없어도 안 되는 필요악이지만 돈에게 삶에 반쪽 자리 정도를 내주기도 해야 한다.  


어려움이 던져주는 축복은 어려움의 맛이다. 모든 삶의 질료에는 나름 맛이 다 들어있다. 어차피 단 한번 우주에서 한순간 살다 갈 거면 가능한 맛을 다 보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절망 중에 계신가?

살기 싫은가?

삐라로 트집 잡아 북쪽이 저러는데 전쟁이라도 나면 속 시원할까?


아니, 아니 당신이 지금 어려운 문제 앞에 앉아 그렇고 포기하지 않으면 그 문제는 풀린다.

이 어려움의 시간을 통과하며 몸이 녹아 얻어진 수액으로 너의 몸이 변하기 시작하며 그때 너는 다른이들과 다른 너만의 독특한 너를 만나게 된다. 세상사람이 말하는 고수, 달인 이런말로 설명이 부족한 특별한 존재가 된다.  그 존재는 진정성으로 가득찬 삶의 거장meister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어려움은 꼭꼭 씹어 드시라. 단맛 나올 때까지. 나도 계속 씹고 있다. 우걱우걱.

  

헨리 애교 보시고 피식 웃다 기분이 좋아지시길.

 https://youtu.be/EfboY4G2l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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