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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un 11. 2020

내가 아니라 그(그녀)가 문제다

핸드폰이 말썽이다. 자기 수명이 2년 뒤면 핸드폰은 서서히 민낯을 드러낸다. 어딘가 문제를 드러내며 "이제 그만 신제품으로 바꾸고, 나는 영면 하마" 주인에게 요청한다.

어제는 아끼던 열대어, 구피 한 마리가 유명을 달리했다. 장기출장으로 지인에게 맡기고 살아남은 두 마리 중 한 마리다. 수놈으로 꼬리가 공작새만큼 아름답던, 자기 친구들이 세상을 떠날 때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나의 미안함을 대언하던 그 녀석이 갑자기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어항 생태계를 회복시키려고 동료들 여섯 마리나 다시 구입해 넣어주니 화려하고 아름다운 군무를 하루 동안 보여주다 떠나 버렸다. 열대어는 예민하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환경에 타격을 받고 쉬이 죽는다. 모든 조건이 잘 갖추어져도 갑자기 죽는 이유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제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열대어 전문가가 알려준 적이 있었다. 인공 부화되는 녀석들은 수명이 짧다고.


핸드폰은 2년 뒤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고 60개월 할부금을 완납한 자동차도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나이가 사십을 넘어도 여기저기 몸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이처럼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어도 우리는 세상 곳곳에서 문제를 만나고 당혹스러운 경험을 시작한다.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사실 이런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문제가 아닌데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취급되는 정신적 경우"를 말하고 싶어서 자판 앞에 앉았다.


우리는 자라면서 은연중 다듬어지고 깎이는 것을 강요받는다.

특히 여기 한국은 좀 더 심한 것 같다. 어른이 되어도 어른 답게를 강요받는 느낌이 강하다. 어른다운 것이 무엇일까? 젊은이보다 좀 더 차분하고 침착하고 지혜로우며 매사에 신중한 사람이 되는 것? 하지만 여기서 내가 아는 주변의 어른은 대체적으로 졸부이거나 치매끼가 있거나 꼰대 거나 고집이 센 사람들로 수두룩하다. 그래서 솔직히 이 나라에서 이나라 어른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 오죽하면 귀국해서 우연히 들었던 노래 하현우가 부른 "돌덩이"를 듣고 울컥 눈물이 돋았을까
그저 정해진 대로 따르라고
그게 현명하게 사는 거라고
쥐 죽은 듯이 살라는 말
같잖은 말 누굴 위한 삶인가
뜨겁게 지져봐
절대 꼼짝 않고 나는 버텨낼 테니까
거세게 때려봐
네 손만 다칠 테니까
나를 봐 이야 이야
끄떡없어 워
쓰러지고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 오를 뿐야
난 말이야 이야
똑똑히 봐 워
깎일수록 깨질수록
더욱 세지고 강해지는 돌덩이
감당할 수 없게 벅찬 이 세상
유독 내게만 더 모진 이 세상
모두가 나를 돌아섰고
비웃었고 아픔이 곧 나였지
시들고 저무는
그런 세상 이치에 날 가두려 하지 마
틀려도 괜찮아
이 삶은 내가 사니까
나를 봐 이야 이야
끄떡없어 워
쓰러지고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 오를 뿐야
난 말이야 이야 이야…


나는 어려서부터 반항아였다. 이 버릇은 미국에 살면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이제는 다아는 사실이지만 미국은 전쟁고아에게 초콜릿을 던지던 따뜻한 아저씨들만 사는 나라는 아니다.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타인에 대해 냉정한 사람과 문화도 공존한다. 우리나라가 개판 오 분 전 같은 사람과 따뜻한 정으로 가득한 사람이 공존하듯. 나는 미국에서 부당하게 대우하는 사람들과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하기사 젊어서 눈에 보이는 게 없어서 무식이 용감이라고 그랬는지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나의 모난 점을 알기 시작 헸다. 쉽게 흥분하고 거칠게 주장하는 한 단면, 세월이 흐르며 잠잠해졌다. 물론 호르몬이 도와주었다. 여성호르몬이 나타나 기를 꺾어 주었다. 하, 이것 참, 기가 꺾이니 이전에 내 기세에 눌려 지내던 이들이 박수를 친다. 많이 얌전해졌다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내가 얌전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상대해 주었더니 숨죽이고 살던 온갖 인간들이 소위 사람을 개무시한다. 요새는 내가 사랑하는 동생네 강아지도 나만 문다. 손가락이 성 할 날이 없다. 피 터지고 아물면 또 물린다. 물려도 다 내 잘못이란다.    문 개가 잘못이지 왜 물린 내가 잘못일까?


우린 때로 아주 큰 오해를 품고 산다.  내가 아니라 그(그녀)가 문제인데 항상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다.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팁은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먼저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계속 말싸움하다 보면 똑같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무례한 사람을 만나면 상대하지 말고 그만하자 하고 자리를 떠야 한다. 아내(남편)나 가족도 무례한 언사나 자기주장을 핏대 높이며 쳐들어오면 받지 말고 피해야 한다.  그 유명한 "똥이 무서워서"를 인용하기 전에 피해야 한다. (똥이 어쩌고 하면 이미 똥 밟은 거다) 그 이유는 내 영혼이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 긴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이 여행에서 얻은 소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내가 한국에 머무 동안 "나의 정체성 identity과 자존감 self esteem이 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한국을 떠나 있으알게 된 셈이다.

 

2003년 2월 1일 저녁, 화면 아래 ‘컬럼비아호 공중분해, 승무원 전원 사망’이라는 긴급 뉴스 자막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주왕복선 사고로는 챌린저호(1986년)에 이어 두 번째 대형 참사였다. 사고가 발생한 STS-107(우주왕복선의 임무 코드) 미션은 우주왕복선 전체로는 백 열세 번째, 컬럼비아호로서는 스물여덟 번째 비행이었다.


컬럼비아호 사고 원인 조사를 담당한 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의 직접 원인이 외부 연료 탱크와 궤도선을 연결하는 지지대 하단의 보온용 폼(Foam, 일종의 압축 스펀지)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발사 때 충격으로 보온용 폼이 떨어져 나와 초속 220m의 고속으로 왼쪽 날개 모서리의 7,8,9번 강화 탄소 패널을 때리면서 미세한 균열이 생겼고, 지구에 재진입할 때 이 틈새로 표면 마찰로 인한 고온 가스가 침투하면서
순식간에 왼쪽 날개가 떨어져 나갔다고 본 것이다.  (출처 : 시사저널)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후반전은 우주왕복선의 지구 귀환처럼 고열을 견디는 삶의 환경에 노출된다.

"올라가는 인생"에서 손상을 입은 작은 부품 하나 라도 섬세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내려가는 인생"에서 폭발하거나 치명적인 정신적 손상을 입고 비참하게 죽게 될 경우가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체성과 자존감의 손상을 발견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적어도 남은 인생 동안 누군가에게 내 정체성과 자존감은 지켜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 말고 상대가 잘못하는 경우의 수는 매우 많다. 물론 자신의 잘못은 반성하고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조정이 반복되다 보면 자기가 문제라는 생각에 젖어 삶의 남은 시간 동안 "자기 정비"만 하다가 시간을 다 까먹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죽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고 격려하면 좋겠다. 내가 나에게 다짐하는 말을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신고도 할 겸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조금 적어보았다.     


돌덩이도 한번 듣고 가시라 하현우도 잘하지만 나는 이 사람 음악이 감동스러웠다.

https://youtu.be/-fMPLYPzh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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