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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un 21. 2020

스스로 귀하게 생각하면 빛이 난다

여러 가지를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당분간 한국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많은 미국 교포들의 평생소원이 한국에서 묻히는 것인데  나는 한국에서 한 달 살기가 아니라 몇 년 살기를 했으니 버킷리스트 하나 정도는 지운 셈이다. 그래도 설립한 법인은 그대로 진행하고 브런치도 아마 계속할 것 같다. 브런치 덕분에 좋은 작가들의 글도 많이 읽고 나에게 손톱만큼 남아 있는 글쓰기 호감을 아직 절망하지 않고 남겨놓았으니 나는 한국에서 은근히 많은 삶의 료들을 얻어가는 셈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화두를 항상 마음에 두고 살아서 이렇게 한국을 떠나는 것은 죽음으로 이별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처음 들어와 "조국이 뭐 이래?"로 시작해 " 우리나라 참 좋다"까지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고 떠난다. 막상 떠나려고 마음 정하니 이곳에 남겨둔 추억들이 아쉽고 미련 남는다.


길가다 어디나 보이는 우승 꽝스런 국민운동기구, 훌륭한 버스전용차선, 넓고 시원한 지하철,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휑하니 달려가는 빠르고 무서운 배달 오토바이, 광속 인터넷과 물건으로 가득 찬  월마트말고 홈플, 건물보다 많은 간판 그리고 검정머리 검정옷 동그란안경 나와 똑같은 동양인 무리들이 그리울 것이다. 벌써 시간과 날씨를 시카고에 세팅해 놓고 넓은 하늘과 형형색색의 인종들 틈에 섞여 살 생각과 요즘 시국에 흑인에게 맞거나 경찰에게 죽임 당하지 않으려 미국에서 갈고닦은 경륜 검을 다시 꺼내 내심 걱정스럽게 갈고 있다. 떠날 것을 상상하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교차되어 마음에 다가온다.


"아들!, 요즘 그 동네 분위기는 어때?"


몇 주 전 흑인 사망사건 때문에 일어난 폭동을 아들이 출근하다 찍어 보내주어 나는 더더욱 무섭다. 게다가 가족들이 전에 살던 한적한 중남부에서 시카고로 이사하는 바람에 나는 이제 이민 처음 가는 촌닭 마냥 걱정 투성이다.


" 요즘 대부분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저도 무지 바쁘고"


옛날 살던 동네 한국 선배는 미국이 차분하게 잘 지내는데 한국에서 미국 뉴스를 엄청 심각하게 보도하더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트럼프가 노망난 노인네처럼 나라를 말아먹고 있어서 선배는 이번 선거를 벼르고 있었다.




나는 양쪽을 오가는 경계인이지만 양쪽을 동시에 누리는 특권을 감사한다. 오래전 세인트 루이스에 살 때 젊은 나이에 미군과 결혼해서 오신 교인 한분이 친교실에서 식사 준비하다가 우리 가족이 엊그제 세인트루이스 명물 아취 Arch(타원형 상징물 건물로 다람쥐 통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주 높은 꼭대기에 오르면 전망이 좋다. 메모리얼 데이 같은 날 전투기 편대가 아취 밑을 날기도 하는 서부로 가는 관문의 의미를 가진 관광 명소다)를 보고 왔다고 하니까 퉁명스럽게 "난 여기서 반평생 동안 거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참 빨리도 다녀왔네" 질투인지 비아냥인지 난감한 투정을 들었다.  "아니, 누가 가지 말라고 했나요?"

속으로만 하고  웃어넘겼지만 반평생 살면서 일터와 집만 오갔다는 억울함을 말한 것 같았다. 근면 검소하고 희생하는 것만 미덕이라 여기며 미국에서도 그대로 사는 어른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다행히 나는 그것 너머 살아보는 특권, 경계의 한국 살기는 개인적으로 성공이라 자평한다.


지난번 "나는 한국에서 나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손상 입은 것을 발견했다"라고 적은 글이 있었다. 이것저것 출국 준비 생각하다 그 문장이 다시 떠 올랐다. 그러다  "떠나면서 시원한 것과 섭섭한 것은 무얼까?" 하고 스스로 물었다. 그 아주 중요한 단서 하나를 발견했다.


내 자존감과 정체성 손상 입은 이유가 "사회가 주는 중압감"에서 시작됨을.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어느 정도 위치에 있어야 하고 어느 동네, 어떤 차, 어떤 옷을 입고 남은 여생 어떻게 사는가 생존 키워드가 똑같았다.   마라톤 경기 중반전 넘은 선수들 그룹처럼 떼 지어 계급사회를 암묵적으로 가진 것이 우리나라의 은밀한 특징으로 느껴졌다. (너무 예민한 거 아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회적 성취를 이룬 친구들, 남은 인생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지겨울지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 흑인 조심하고 경찰 피해 다녀야지 하고 한숨 한번 쉬다가 "그래, 거기 가면 자유롭지? 누구를 의식할 필요도 없잖아? 하는 마음이 갑자기 떠올랐다.  가벼움이 훅 다가왔다. (각자 이해가 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누구에게 평가 받거나 잘 보일 필요 없는 자유로운 영혼임을 기억하자.
가벼움은 자유로움이 느끼는 감정이다.

며칠 전 낚시를 주제로 하는 모방송을 우연히 처음 봤다.  많이 놀랐다. 나이 든 연예인들이 낚시하면서 아무 말이나 한 시간이나 하고 있었다. 슬펐다. 남자 셋이 밥해 먹는 프로 볼 때는 기뻤다. 잔잔한 인간이 아름다워서.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참담했다. 이번회는 배를 나누어 타고 고기 잡는, 경쟁 아닌 경쟁을 하는 설정이 되어 있었다. 어디까지 가나 보려고 끝까지 보다가 출연자들이 경쟁하며 잡는 모습에  덩달아 경쟁에 재미를 느끼며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누가 경쟁시킨 것 아닌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경쟁한다. 이기면 오랫동안 그 직업을 유지하고 권력과 명예도 얻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가 무엇인가 집착해서 오랫동안 정착해 안정되려면 그 삶은 당연히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인생 짐은 적을수록 좋고 언제든 떠나기 쉬운 가벼운 것이 편하다. 여기서 벌써 몇 년 지냈더니 한국 물건이 한살림 되고 말았다. 나는 여행가방 두 개에 오피스텔 한 개를 다 압축.zip해서 넣어야 한다.  이제부터 버리는 파티를 시작해야 한다.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 덕에 옷 버리기는 요즘 대세 같은데 마음도 "버리고 정리해 가벼워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마음에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번에 "무엇을 이루려는 욕망'을 정리했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들도 지우개로 지웠다. 한국에서 과거의 장소를 다시 마주 할 때마다 지나간 시간의 실수와 서툰 인생이 스스로 참 한심해 보였다. 이제 그런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어릴 때 해주던 것처럼 빨래를 삶아 본 적이 있다. 우리 어머니는 하얀색 속옷을 삶아 새빨간 태양에 새하얗게 말려 다시 다림질을 해서 입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속옷만큼은 하얀색을 고집한다. 딱 한 군데 골프장 갈 때는 골프클럽 목욕탕 때문에 하얀 빤스가 남사스러워 고급스러운 감색 팬티를 입고 나간다.  하지만 하얀색만 못하다.  더러워진 하얀색을 빨아 깨끗한 하얀색을 입는 것은 행복하다.  


우리가 현대 도시에 살면서 불필요한
계급사회, 경쟁의식, 우월감, 열등감, 신경증이나 정신과 질병에 시달리는 이유는
자신을 삶아 마음에 묻은 오물을 지우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 아닐까?


자기를 삶는 일은 "스스로가 자신을 귀하게 기를  뜨겁게 생각 하는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생각으로 떠날 때가 되자 나는 내 몸에 광채가 느껴진다.


돈을 많이 벌거나 인기나 명예를 얻어 가는 것도 아닌데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어려움만 겪고 가는데 빛을 느끼는 것은 나를 귀하게 생각하려고 결심하고 떠나서 그런지 모른다.

 

그런데,


"의료보험 어쩌지?, 한국 참 좋았는데 "


수지침이나 들고 가야겠다.


https://youtu.be/042rVkrfz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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