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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ul 01. 2020

Going Home

집으로 가는 길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서울에서 시카고로 집에서 집으로 떠나는 여정의 준비는 생각보다 녹녹지 않았다.  오랫동안 키우던 화초 산이와 구피 어항은 동생집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 더부살이를 시작했고 더 작은 화초,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고 키우던 화초 아무개는 자기가 버려질까 봐 영양도 없는 한 줌 작은 흙더미 속에 잎을 세 개씩이나 더 만들었다.


"이 녀석 분갈이하면 더 자랄 것 같아. 버리지 마, 얘도 내가 맡아줄게 " 동생 말 한마디에 이 아이는 생명으로 살아남을 막차를 탔다. 이미 집안의 모든 집기와 가구들은 "당근"이란 앱을 통해 당근 팔려나가고 침대며 서랍장은 "숨고"라는 앱에서 이사 고수들을 찾아 용달을 예약해 놓았다 (숨고는 "숨은 고수"를 찾아 무엇이든 연결해주는 앱이고 당근은 잘 아시듯이 중고장터다. 한국에서 유용해서 홍보 아닌 정보를 드린다)  내 손때 묻은 물건 몇 가지는 그대로 미국에 같이 간다. 놀랍게도 내가 선택한 물건 중에는 가벼운 나무로 만든 주방 도마와 등 긁는 효자손, 설거지 동반자 주방 수세미가 간택되었다.(이런 물건 챙기다, "아, 내가 한국에서 밥해먹고 설거지하고 등긁다 가는구나" 하고 혼자 웃었다)


 책은 중고서점 알라딘에 다 처분하고 대여섯 권만 남겼다. 그 아이들은 내 품을 떠나 또다시 누군가의 책이 되어 긴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정리해서 여행가방 두 개로 짐을 싸다 보니 누구 말처럼 짐가방 두 개가 전재산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이렇게 떠나기를 반복하다 언젠가 내 몸 하나 누일 작은 나무관에 가족이 생각한 가장 소중해 보이는 내 물건 한두 개( 주방 나무도마, 효자손?) 넣고 지구에서 떠날 뜨거운 우주선에 탑승시킬 것은 자명하다.   


상념도 가방에 욱여넣기를 반복하다 우연히 자우림, 김윤아의 노래 Going home을 듣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기고 나는 너의 일을 떠올리며 수많은 생각에 슬퍼진다.

우리는 단지 내일의 일도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 그저 너의 등을 감싸 안으며 다 잘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이제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 나는 간절하게 소원해 본다.

이 세상은 너와 나에게도 잔인하고 두려운 곳이니까 언제라도 여기로 돌아와, 집이 있잖아, 내가 있잖아.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우리를 기다려 주기를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를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 이뤄지기를 난 기도 해 본다.


가수 김윤아 동생이 힘든 일 당했을 때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보다 노래에 마음을 담아 들려주려 만든 노래라고 알려졌다. 역시 그녀는 그녀답게 담담히 아픔을 절제하며 표현한다. 그녀의 절제로 인해 듣는 이들은 침착하지 못한 자기 슬픔을 상당 부분 차분하게 치료받는다.


한국인의 인사 "건강하세요" 나 양화대교 자이언티의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나  건강이 삶의 목적처럼 들리는 말들이 문득 가슴 시리게 와 닿는 까닭은 우리 몸과 마음이 아프게 살고 있어서 그것만은 피하라는 자기 방어적 외침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예쁘고 어린아이들이 트로트를 부르고 온 국민이 열광할 때 시큰둥하다. 저러다 얼마 못가 돈 버는 제작자들은 또 다른 볼거리 한번 더 터뜨리고 다른 테마 열면 트로트에 진출한 아이들은 또다시 아프고 불행할 것이 뻔하니까.




인간은 동물에서 인지 혁명을 거치며 호모 사피엔스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는데 그 중심에 언어의 사용과 "허구"라는 이야기의 발전을 통해- 즉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고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방송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수다를 떨며 대중의 관심을 원한다. 돈 때문에.


우리는 수렵 일 그만두고 백종원 요리 흉내 내며 살찐 개그맨들 먹방 따라먹다 한 달에 10킬로 감량하는 프로그램으로 채널 돌려 살 빼라는 의사님과 살 뺐다고 간증하는 방청객들 사이를 오가며 산다.  내 뱃살 만져보다 피트니스에 등록한 뒤 한 달 감량 후 요요님을 만나 반복하는 시대도 살아간다. 우리의 고독이나 위로가 필요한 아픔들은 성공한 자들에게 외면받고 한국인이 사랑하는 단어 "더 The"외치며 조금만 더더더 뛰자고 위로를 보류한다.  아무튼 김윤아 노래를 듣다 짐 싸고 버리기를 잠시 멈추고 난 "짐을 벗고 행복해 지길" 가사에서 엉뚱하게 위로를 선물 받았다.




아주 어릴 때 나는 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인제에 살았다. 고향이 서울시 마포구인 나에게 그 시절은 유일하고 희미하게 남은 고향의 추억이다. 지금도 시골이 집이라 설날 고향 가는 사람이 제일 부럽고 동네 어르신들이 아무개 왔냐 하는 풍경이 다시 태어나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그래, 나는 고향이 없다.


그저 어두운 회색 도시에 집비둘기처럼 태어나 그들처럼 후루룩 자라 지식을 배우고 사고팔며 호모 사피엔스 두뇌로 도시에서 빌어먹고 살았다. 손에 피나게 삽질해본 적도 없고 누구 밑에 노동의 대가로 먹고살아본 적도 없으니 내 팔자는 책상머리에 앉아 창작하든 손톱을 피나게 물어뜯든 돈 버는 일은 책상에서 해야 겨우 살아남을 팔자를 가지고 태어난 셈이다.


그나마 어린 시절 메뚜기 잡고 논두렁에서 붕어 잡고 하던 낭만 시절은 있었다. 해가 지도록 뛰어놀다 이집저집 아궁이 밥 짓는 냄새 올라올 무렵 하나둘 이름 불러주는 제 어미 소리에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들, 고즈넉이 사라지던 석양은 나에게 집으로 가는 풍경이었다. 어른이 되자 집은 아파트의 좁은 시멘트 칸이 되었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옆집 부부의 싸우는 이유까지 금방 알아차릴 도시의 시멘트 칸막이 집에 살았던 것 같다.


미국에 이민 가서 보니 집은 전부 나무로 지은 판잣집(자연 친화적이라)이었다. 다행히 내가 살던 미국은 도시가 아니어서 집과 집 사이에 거리가 있었고 적어도 옆집 소음은 주말 빼면 들리지 않았고 매주 잔디 깎고 집 관리하는 일만 내 골치 아픈 숙제였다.

이사를 많이 하다 보니 이사의 달인이 되었고 세월이 갈수록 몸집이 커진 짐을 유홀U Haul 트럭에 직접 싣고 나르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 가방 두 개로 태평양을 건너 다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역마살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집은 내 것일 필요 없고 짐은 적을수록 좋고 가족은 꼭 함께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있는 곳이 집이고 가족과 떨어져 살아도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공간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 대신 서울살이 하는 동안 나는 마음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 마음의 집은 현실세계에도 곧 이루어질 집이다.


내 마음 집에는 아내와 우리 강아지가 미국 시골집에서 산다.(지금은 도시에 살지만) 아이들은 일 년에 두세 번만(훗, 그 이상은 좀 불편할 것 같다 ) 방문한다. 기회가 되면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녀석들 생일에는 가족 모두 함께 모이길 원한다. 나는 가족이 모이면 김동률의 동반자를 외워서 부를 것이고 탱고를 연습해 아내와 연미복을 입고 보여줄 작정이다. 웃음소리 가득, 어린아이들은 개와 뛰놀고 때에 따라 이웃들도 함께 모일 것이다.


 와인은 지하창고에서 올라와 첫선을 보이고 나는 내 나무 도마에 슬라이스 한 스테이크를 얹어 돌릴 것이다. 며칠 후 그들이 떠나면  내 집의 아침은 쇼팡과 갓 내린 진한 에스프레소로 시작한다. 어젯밤 읽다만 책을 조금 들춰보고 오늘 계획한 분량의 글을 쓴다. 나는 글 속에 들어가 내가 만든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움직여 그들의 집을 짓게 한다. 그들이 만든 집을 줌파 라히리처럼 상세히 묘사해 카펫의 색부터 벽의 질감까지 독자들이 그 집에 들어간 것처럼 몽환적으로 그릴 것이다.  글에서 나와 아침을 먹고 나면 화상통화와 인터넷을 통해 회사 업무를 점검하고 약속을 계획한다.


그래 난 남은 인생 시간 동안 놀면서 일할 계획을 다 정해 놓았다. 꿈꾸지 마시라 하면 꿈도 하나 없이 살지 마시라고 반박할 거다. (그래도 현실적인 것만 적어본 거다. 사실 더 많다.)




악천후에 항공기가 제시간에 착륙 못하면 조종사는 항공사와 여러 가지 난처한 일이 많이 생긴다. 안전에 무리가 없는 한 조종사는 제시간 착륙에 성공해야 한다. 우리를 실어 나르는 민항기 조종사들은 평생 죽을뻔한 On time 착륙을 수십 번 경험하며 살아남았다. 그들이 '휴, 죽을 뻔했네' 하고 마음 쓸어내리는 착륙을 우리 승객만 모를 뿐 사실은  황천길을 오락가락 한 셈이다. 어쩌면 인생은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목숨 건 착륙을 계속 반복하는 것 일지 모른다. 본향으로 마지막 Going Home 할 때까지......

다시 집으로 가는 길, 대한항공 B777-300er 맨 뒷좌석 꼬리에 좌석을 예약했다.


 https://youtu.be/gR4_uoJdO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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