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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ul 24. 2020

삶, 그놈

jet lag, 사회 적응기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시차 적응 jet lag에 완전히 실패하고 자조 섞인 혼잣말로 지껄이고 있다. 고향 방문하며 매번 오가던 비행 13시간, 내가 사는 미국과 시차도 14시간, 타임머신 타고 오가는 이런 일에 이미 이력이 나 있었지만 솔직히 이번처럼 완벽하게 시차 적응에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팁시 tipsy 올 때까지 위스키 마셔, 그리고 자면 끝이야, 팁 tip하나 더, 그래도 안되면 다음날 혼자 골프장 나가, 카트 타지 말고 아무나 조인 join 해서 18홀을 걸어 그리고 그날은 생각 없이 쿨쿨 자, 그러면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선배는 그렇게 항상 시차 적응에 성공한 무용담을 반복해서 자랑하곤 했다. 하지만 시차 적응에 완벽하게 실패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 진출하려던 창업 때문이다. 회사가 만들어진 중반부터 악재들과 함께 표류하다 코로나 한방 카운터 펀치 맞으니 후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마음고생이 가장 컸다. 더더욱 솔직히 말하자면 전열을 재정비해 즉시 도전하고픈 욕망과 침착하게 시간을 갖고 추스르자는 생각이 비행기 안에서 충돌했다. 자그마치 2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사업을 조언해 주던 동기에게 공항에서 마지막 인사를 날리자 "시간만 낭비했네, 그려" 답신이 왔다. "시간낭비?" 허 참,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삶이란 그놈, 알면 알수록 모호한 놈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낸 낯선 시간이 결코 낭비가 아니라 좀 더 지켜봐야 할 일로 생각했다. 다만 자본가 들은 돈 되는 일은 구입하고 의미 있는 일은 사지 않는 신기한 경험만 했을 뿐이다. 솔직히 사업의 디테일detail을 조목조목 투자자에게 모두 공개하지 않았다. 시건방질지 모르지만, 사업의 기본조차 없어 보이겠지만, 난 적어도 돈 아니라 마음까지 동행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런 사람은 아직 못 만났다.(친구이자 사업 멘토는 나의 꿈 말아먹는 소리를 자주 지적했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다 하니까" 그 고루한 투자유치 방법은 솔직히 싫었다) 부자가 된 친구부터 이전의 인맥까지 동원해 그룹 회장까지 만나보았지만, 벽은 높았다. 그들은 참모들에게 둘러싸여 자기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지난번 글의 고백처럼 "나는 한국에서 정체성과 자존감의 손상"만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만큼 나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당당하게 한국인을 상대했다. 세계화된 삶의 가치와 창의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체성과 자존감의 상처를 확인하고 한국을 떠나 다시 전열을 가다듬을 필요를 느낀 것은 원래 나를 나답게 회복하기 위한 본능적 생존전략일지 모른다.




무료한 비행을 이어가다 녹화된 골프 중계를 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프로골퍼 닉 팔도 생각이 났다.

내 기억에 그는 큰 시합에서 공이 잘 안 맞자 골프의 기본 중의 기본인 헤드업 head up을 시합중에 교정했다. 그 모습이 매우 인상 적이었다. 여자 캐디(남자들만 캐디백 메던 그 시절)에게 자기 머리를 잡게 하고 스윙의 기본을 점검하던 그 장면. 삶의 기본기, 사는 것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은 무엇일까? 를 생각하게 하는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지금 마음속으로 나 자신과 기본기 문제로 고민하며 자신과 다투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성경에도 자신과 다투던 야곱이 등장한다. 그는 20년간 이민생활을 마치고 모든 재산, 가족과 함께 귀향한다.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가로채 고향을 도망쳐 인생역전에 성공했지만 귀향은, 그에게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그의 형 에서가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환영인지 복수인지 알 수 없는 정보를 접하자 그는 가족과 양 떼, 뇌물만 먼저 강 건너 보낸 뒤 혼자 남는다. 삶이란 그놈은, 이처럼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항상 혼자 만난다. 꿈에 등장한 신은 그와 밤새 씨름한다. 이 이야기는 삶의 본질과 마주한 인간, 실존의 내면을 설명하는 메타포 metaphor다. 싸움에 지친 신은 그의 이름을 알면서 다시 묻는다. 야곱 " 속이는 자, 경쟁하는 자, 발꿈치를 잡는 자",  마지막에 신은 이스라엘로 그의 이름을 개명시켜 기존 삶의 정체성을 혁신시키고 정정해 준다. 그에게 그토록 필요한 삶의 기본기는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완강하게 붙잡고 살던 자기 자신이 신의 한 수, 환도뼈(허리 아래 넓적다리) 공격을 받고 얍복 나루 이전에 성하고 자신만만하던 그가 밤을 보내고 나자 절름발이가 된다. 그는 한쪽 다리를 절며 육체 잃고 새로운 정신은 얻어 본격적인 삶의 재활을 시작한다.  




비행기는 얍복 나루를 건너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앵커리지 앞바다를 가리킬 때 우연히 맨 뒷좌석 창문을 열고 동쪽에서 "이리오너라"를 호령하며 다가오는 장엄한 태양 눈빛과 마주했다.

그 순간 갑자기 알 수 없는 전율에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육지의 일출보다 더한 묘한 감동이 온몸을 감쌌다. 35,000피트 우주에서 맞이한 빛은 나의 삶, 그놈을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우연도 놓치기 싫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눈물 한 방울 터뜨리지 못하던 나의 낡음에 대해 지쳐 갈 무렵 복면가왕에서 "돌덩이"를 가슴 저리게 노래하는 최재림을 보았다. 그때 터진 홍수로 눈물보가 무너진 것도 우연이었고 지금 하늘에서 비슷한 떨림에 눈물이 터지고 있다. 조용히 울었다. 눈물범벅된 여러 상념은 결국 뜬눈으로 시차의 벽을 넘지 못하게 하였다. 그렇게 하다 시카고에 착륙했다. 시차를 넘은 그때는 다시 같은 날, 어제 같은 오늘이었다. 삶, 그놈은 생겨먹은 게 지루해 시간여행처럼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아 늘 사람을 지치게만 한다.


시차 적응 아니라 사회 적응도 문제였다. 

시민권자가 돌아왔는데 플래카드 든 인파는커녕 코로나로 긴장한 공항은 제복 입은 시커먼 사람, 뚱뚱한 사람만 가득했다. 코로나 공포에 질려 10시간 넘게 가냘픈 숨 겨우 붙잡고 살아남아 도착한 공항에서 그들은 여행객을 마구 마구 다구 친다. 전에 받아보지 못한 푸대접이다.  " 난,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미국이야." 대형 항공사 조종사로 평생 근무한 선배는  여러 나라를 두루 입국해본 경험으로 출입국 절차에 건방진 미국 관리들이 정말 싫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


입국심사대 줄 서는 곳에는 제복 입은 히스패닉 아줌마가 히스테리 하게 여기, 저기 서라고 명령한다. 나는 한국인처럼 영리하게,  한편 근심 어린 초행길 방문객과 좀 다르게 더 빨리 나가려고 기다리던 줄을 한 칸 바꿔 섰다. 불호령이 떨어졌다.


" 헤이, 너 다시 원래 위치로 가" 그녀가 눈을 부라리며 거칠게 말했다." 내 앞에 심사관이 갑자기 사라져 이리 왔는데?"(미드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가라면 가! "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알았다.(저게 드디어 미쳤구나) 그녀가 몇 푼 안 되는 가벼운 권위를 뽐내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 미국 돌아왔구나." 호통치는 영어, 그동안 잊고 있던 어휘들, 나도 모르게 다시 전투 모드로 전환한다. 그렇게 나는 도착하자마자 미국 사회 부적응자였다. 어찌 된 일인지 이전처럼 편하지 않다.


나라가 어수선하고 좀비가 거리에서 막 뛰쳐나올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귀국은 왜 지금 하고 난리야?, 좀 안정되면 그때 돌아가지, 하여간 고집하고는" 가족들은 이번 귀국 일정을 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면 꼭 그대로 실천하는 나의 못난 성격 때문에 코로나로 칭칭 휘감긴 낯선 도시로 무식해서 용감하게 상륙하고 말았다.  




코로나 격리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귀국 일주일째 잠을 못 자고 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미국 시민으로 다시 살아갈 행정업무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은행 체킹 어카운트 checking account부터 새로운 휴대폰 구입까지, 우체국 주소이전, 트럼프가 주기로 한 코로나 지원금, 심지어 반드시 선거로 정의 구현하려는 유권자 등록까지 마쳤다. 시카고에 폭동은 이제 없어 보인다. 다운타운 Downtown에 행인 절반이 없어졌다고 아들은 설명해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심하게 실천하느라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고 그나마 연 곳은 테이블 한 개씩을 사이에 두고 앉는다. 사람 간 거리는 6피트.


대한민국이 참 자유로운 나라임을 왜 여기서 느끼는 거지?


사회를 적응하며 아주 놀라운 사실 하나를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한국에 가있는 동안 내가 한국사람이 되어버린 사실. 한국말에 능하니 영어에 박하다. 주유소에 뭘 사러 들어갔다 흑인 주인이 웅얼거리며 말하는 바람에  못 알아듣고 그냥 나왔다. 의문의 일패다. 휴대폰을 새로 구입했는데 한국 오기 전에 전부 영어로 사용하던 휴대폰 영어가 낯설어 한국말로 전부 바꿔 버렸다. 아니 한국에서 가져온 폰 전체를 새 미국 휴대폰에 그대로 옮겨 버렸다. 한글로 된 미국 휴대폰을 가지고 CBS 레인보우 강석우 배우와 KBS 콩 김미숙 배우의 클래식 음악을 기다린다. 비행기를 좋아해 앱 App으로 한국에서 미국 가는 국적기를 추적하며 미국을 그리워했는데 지금은 인천 가는 비행기를 추적한다. 코로나로 물건이 많이 없어진 월마트 Super walmart 가서는 아담하고 다 있는 다이소를 추억한다. 정말 이상하고 기분 묘하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 " 오자마자 향수병 homesick이야?


나는 그동안 미국인으로 성장했고 오랜 세월 동안 미국에서 "나 다운 것" 이 무엇인지 충분히 배웠고 이해하며 살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아직 변하지 않은 구습들은 속으로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청춘을 전부 불태운 미국에서 다시 나답게 사는 것에 혼란을 느낀다. 나 다운 것은 어디에도 없고 시차 적응과 사회 적응에 실패한 사람 한 명이 덩그러니 광야에 서 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거야"


나는 어려서부터 스케이트 타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그 동네, 태능 근처 서울 변두리에는 겨울이면 저수지를 얼려 스케이트장으로 사용했다. 눈으로 도톰하게 만든 레인을 프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처럼 돌았다. 나는 운동신경이 좋아 금방 익혔고 잘 탔다. 어느 해  새 겨울이 시작되고 아버지를 졸라 새 스케이트를 선물 받은 그해 이번에는 교회 친구들과 오랜만에  저수지 아닌 태능 스케이트장에 함께 놀러 가기로 했다. 그날 나는 관심 있던 그녀에게 내 멋진 스케이팅 폼을 선 보이고 싶었다. 당시 나의 인생훈은 "폼생폼사" 였으니 그 기세가 대단했다. 왜 그거 있잖은가? 오랜만에 스케이트 처음 신을 때 그 낯섦. 분명히 기억하는데 아직 기억이 적응하지 못한 그 상태, 하지만 나는 손을 뒷짐 지고 가볍게 한 바퀴를 느린 속도로 폼나게 돌았다. 바지도 그 당시에 드물게 꼭 끼는 쫄쫄이 바지에  광나는 검정 구두와 날이 번쩍거리는 새 스케이트. 스치는 여학생들에게 가벼운 손짓과 눈인사를 건네며 천천히 사자가 먹이 노리듯 그녀를 주목하며 폼나게 몸을 풀었다. 세 번째 바퀴에 그 멋진 코너링을 천천히 연습해 보았다. 아, 칼날이 부딪히고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속으로 "속도가 붙으면 잘 될 거야"를 믿으며 도는데 바로 그 순간 그녀가 코너링하는 쪽 벤치에 친구들과 나란히 앉는 것이 보였다. 나와의 거리는 약 20미터, "지금이닷" 나는 질주하기 시작했다. 몸을 낮추고 배운 대로, 기억하는 대로 지치며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선수와 비슷한 스케이팅을 했다. 아주 낮은 자세로 몸을 최대한 숙이고 아름답게 코너링을 시작했다. '헛둘, 헛둘" 그녀가 보인다. 이제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을 감아 몇 번만 더 돌면 된다. 속도도 좀 더 폼나게 올리자.


 "쾅! 우지직 @#$$%%^&^^&%"


나 다. 내가 자빠진 거다.

고속으로 넘어져 그녀 다리 밑으로 들어가 벤치를 부수듯 미끄러졌다. 사고였다. 안전요원이 달려오고 그녀는 내 충돌로 인해 저쪽으로 튕겨져 나가고 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의무실로 후송되었다.  그런데 어쩌다 그녀와 나는 나란히 누워 치료받게 되었다.  " 아프지? 왜 그랬어?" 그녀가 씩 웃으며 물었다.  " 니 앞에서 폼 잡고 돌려다, 그만" 그녀와 나는 아프게 키득키득 한참을 웃었다.


다시 돌아온 미국은 지극히 당황스럽고 한국에서 처럼 적응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새로운 겨울에 스케이팅을 기억하듯, 자꾸 넘어지는 나를 다시 믿어야 한다. 몇 번 넘어지다 보면 기억에 남겨진 원래 나답게 폼나는 코너링이 분명히 가능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디 살던지 내 삶의 주인으로 나를 믿고 살아가는 것
가장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삶, 그놈은 내가 삶의 책임 있는 주인으로 있는 한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타인으로 인해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길 뿐이다.

   

                 

  https://youtu.be/-fMPLYPzh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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