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노아 Aug 15. 2020

내가 만든 세상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새로운 곳에선 새로운 일상과 낯선 삶의 재료로 세상을 다시 꾸민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말투, 발음까지 관광객 아닌 미국 시민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미국에 온 지 벌써 한 달이나 되었다. 삶에게 다소곳이 시간을 주자, 몸이 알아서 시차에 척척 적응하고 뇌는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착착 살아간다.  


지루한 삶을 재미있게 살아갈 구체적 주변장치를 먼저 꾸미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은 이전보다 몇 단계 직급이 올라가, 그만 일과 사랑에 빠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윗사람에게 인정받고 더 오르는 것이 지금 그의 목표다. 저렇게 오르는 인생이 전부가 아님을 녀석은 언젠가 알게 되겠지. 그래도 다행이다. 자본주의 천조국 미국에서 일자리 안 잃고 살아남아 인생이 무엇일까 생각할 시간 없이 자고 일하기를 반복하니 몇십 년은 더 버티겠지. 녀석이 대학시절 우울증에 걸려 학교 기숙사에 잠적했을 때 나에게 머리 끄덩이 잡혀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연락 두절된 아들의 학교 기숙사 방 꼬락서니 하고, 나는 들어서자마자 녀석의 우울한 정신을 힘주어 표현하던 우울한 방을 말없이 치우느라 반나절이나 보냈다. 집에 돌아오자 녀석은 한 학기 휴학하고 컴컴한 자기 방에 홀로 앉아 먹고, 자고, 숨어 지내기를 반복했다. 잔디라도 깎으며 몸을 움직여 마음잡아 보라고 했지만 정신을 못 차려, 언성 높여 딱 한번 꾸짖었는데 아직도 녀석은 그것을 아프게 기억한다. 그래서 지금, 먹고 자고 일만 하는 그의 모습이 마음 다친 그때 삶보다 훨씬 나아 일이 인생의 전부라 해도 기다릴 수밖에.




호모 사피엔스가 뇌를 키워 그렇게 최후의 인류가 된 것처럼, 나도 뇌로 먹고 살 생각이다.

아직 운영 가능한 뇌와 인터넷을 설득해 정제되지 않은 지식을 정리하면 의미 있는 삶을 찾는 사람들을 더 찾을 수 있다. 창업한 우리 한국 멤버들은 좀 더 버텨줄 것이다. 그래서 책상 위의 내 세상은 컴퓨터 장치들로 항공기 조종석처럼 만들었다. 여기서 일을 해야 한다. 내 세상이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 이 세상 동네의 지형도 파악해 걸어갈 데와 차 타고 갈데, 관공서와 도서관등을 구글 지도에 별표 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살지 검토 중이다. 이런 것들을 이민 초기에는 잘하지 못했다. 영어 좀 한다고 했는데 미국에 들어오니 내가 배운, 아는 단어들이 이들과 소통하지 못함을 알고 저으기 당황했었다. 정신 차리자, 저들을 흉내 내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가 많이 아끼는  인도계 영어권 작가 줌파 라히리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녀가 이탈리아 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글을 쓰기까지, 남다른 그녀의 여정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다.


요즘 새로 창조한 세상은 내가 주연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적 사회의 못된 것만 보고 자라 지금 세대가 꿈꾸는 가족의 온기는 잘 몰라서 내가 만든 새로운 세상은 무조건 아들이 주연배우 되도록 서열을 재배치했다.


 사실 며칠 전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가 장희원의 단편 "우리畜舍들의 환대" (한자 표현은 동물을 기르는 축사)를 읽다가 충격을 좀 먹었다.


호주에 유학 간 아들을 만나러 떠난 부부가 호주에서 아들과 하우스메이트로 흑인 노인, 문신을 한 나이 어린 여자, 너저분한 집안꼴, 가족 아닌 그들이 가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의 신선한 시선에 자극을 받고, 아주 오랫동안 그녀 글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 어쩌면 이 시대의 가족이란 혈연 아닌 맘 편한 게 식구라는 사실. 여자는 더 이상 주방 시다바리 아니고, 자녀는 조폭 막내 아닌, 대등하고 고귀한 존재들 임을 가족의 보스(돈 벌어 오는 사람)가 깨닫고 살아야 할 시대가 오고 말았다. 그래서 새로 만든 내 세상의 주권은 아들에게 맡기고 연장자인 내가 이젠 더부살이한다. 나머지 가족들이 다시 합치는 날까지 불완전 하지만 세상의 여백과 쉼표를 찍으며 지내야 한다.


한국에서 단단해진 것인지 그럴만한 때가 된 것인지, 새로 세상을 창조하는 내 마음은 더 차분하고 더 늠름하다. 내가 나를 지켜보아도 그렇다. 내 마음의 순환과 피드백은 빠르기도 좋고 서두르지 않아 두 번 생각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참으로 만족스럽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미국집은 신선한 냉기가 집안 전체에 흐른다. 실내 공간이 밖의 온도와 상관없이 너무너무 좋다. 화씨 74도 (섭씨 23도 정도) 맞추고 살면 24시간 쾌적하다. 그리고 동네는 조용하다. 한국에서 너무 자주 들리던 여러 확성기 소리가 없다. 적정 온도와 무소음 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이렇게 없어지고 여유가 생기는지 전엔 몰랐다. 뉴스는 우리나라처럼 코로나와 자연재해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 각자 알아서 살아간다. 국민은 국가보다 자신을 위해 산다. 어설퍼 보이지만 단결하지 않는 제국이 가진 단점이자 장점처럼 보인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두 세상-내 세상과 이 세상-은
공항에서 헤어질 때처럼 언젠가는 떠나겠지.    


내가 사는 이 세상은 항상 내가 만든 내 세상보다 작다.

    


출국: 크러쉬, 하림

https://youtu.be/i85O-XQafTI





    

작가의 이전글 자기 목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